1. 정치
[2452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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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탐지거리 4828㎞, 한국 레이더의 5배 성능

2013년부터 운용 중인 ‘대만판 사드’에는 침묵하는 중국

▲ 대만 타이베이 인근 신주현 해발 2680m 르산레이더기지에 있는 페이브포즈 레이더. 중국 전역을 샅샅이 훑을 수 있는 군사용 레이더다.
2012년 12월 12일 오전 9시51분, 북한이 장거리로켓 ‘은하 3호’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이를 제일 먼저 포착한 것은 서해상에서 대기하던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이었다. 발사 54초 만에 포착하고 94초 만에 북한 미사일임을 식별했다. 하지만 대만 국방부 역시 “르산(樂山)레이더기지에서 북한 발사체 궤적을 추적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대만에서 은하3호 발사장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까지 거리는 1800㎞다. 대만에서 북한 미사일을 비슷한 시간대에 포착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은하3호가 오키나와 상공을 넘어 필리핀 앞바다에 가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 일본보다도 약 2분 빨랐다. 대만 측은 “로켓 점화 순간부터 낙하 지점까지를 정확히 잡아냈다”고 밝혔다.
   
   대만이 ‘은하 3호’ 발사를 정확히 추적해낸 것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 인근 신주(新竹)현 해발 2680m에 있는 르산기지에 배치한 ‘페이브포즈’(AN/FPS-115) 조기경보 레이더 덕분이다. 페이브포즈는 미국의 레이시온사(社)가 개발한 군사용 조기경보 레이더다. 레이시온사는 한국에 들어오는 사드를 개발한 업체다. 페이브포즈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무려 4828㎞(약 3000마일). 경북 성주의 롯데스카이힐골프장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 800~900㎞의 5배가 넘는다. 상하이와 홍콩은 물론 타이베이에서 1726㎞ 떨어진 베이징까지 탐지사정권에 들어온다. 심지어 중국이 핵(核)실험장으로 삼는, 타이베이에서 3679㎞ 떨어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일어나는 군사활동도 포착 가능하다. 3000㎞ 이내 범위에서는 골프공 크기까지 정확히 식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 2009년 르산레이더기지를 시찰한 마잉주 당시 대만 총통(가운데).

   미국으로부터 구매해 대만 공군이 운용
   
   대만이 페이브포즈 레이더 도입을 추진한 것은 1996년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 때다. 그해 3월 대만의 첫 직선 총통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대만독립파인 리덩후이(李登輝)의 당선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만 남북 앞바다로 동풍(東風)미사일(DF-15)을 연이어 날려보내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중국의 위협은 되레 역풍을 맞았고, 리덩후이가 첫 직선 총통으로 당선됐다.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직면했던 리덩후이 정권은 기존의 500~600㎞에 불과한 조기경보 시스템으로는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못 막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2010년까지 미국으로부터 탐지거리 3000~6000㎞에 달하는 조기경보 레이더를 도입하는 ‘안방계획(安邦計劃)’을 세웠다. 장거리 레이더를 대만 북부 신주와 남부 핑둥(屛東) 두 곳에 배치해 유사시 대륙에서 날아올 탄도미사일을 약 15~20분 앞서 미리 경보하고 요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만의 요청에 따라 미국은 2002년 페이브포즈 레이더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1979년 대만과 단교(斷交)하면서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대만관계법’에 근거한 결정이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재임 중일 때다. 후속조치로 대만 입법원(국회)은 2003년 304억대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하는 페이브포즈 레이더 구매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후 대만 현지 사정에 맞게 설계가 변경되며 비용이 증액돼 총 401억대만달러(약 1조4700억원)가 들었다. 대만 정부는 늘어난 도입 비용으로 인해 인구가 밀집한 타이베이와 가까운 신주현 르산기지 한 곳에만 우선적으로 페이브포즈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후 태풍의 내습 등으로 기지건설에 차질을 빚다가 결국 2013년 페이브포즈가 실전배치됐다. 최초 도입이 결정된 지 10여년 만이다. 페이브포즈가 실전배치된 것은 공교롭게도 ‘삼통(三通, 통상·통항·통우)정책’으로 대변되는 친중(親中)정책을 적극 추진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재임할 때였다. 마잉주 총통은 친중정책을 폈지만 자신의 정적(政敵)이기도 한 천수이볜의 민진당 정권에서 내린 결정을 유지하며 페이브포즈 레이더를 도입했다. 마잉주 총통은 페이브포즈 레이더 도입에 앞선 2009년 중추절 명절 때는 르산기지를 직접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현재 페이브포즈 레이더는 백두산(2744m)과 비슷한 높이의 해발 2680m 르산기지에 설치돼 있다.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과 함께 운용 중이다. 중국에서 대만을 향해 발사된 탄도미사일을 페이브포즈 레이더로 조기경보하고, 미사일이 대만섬에 도달하기 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요격하는 체제다. 페이브포즈 레이더를 운용하면 약 7~10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브포즈 레이더와 병행 운영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거리와 명중률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페이브포즈는 오로지 중국만을 겨냥한 레이더로, 중국 대륙 전역에서 일어나는 미사일 발사와 전투기 발진과 같은 군사활동을 샅샅이 감시 중이다.
   
   대만이 페이브포즈 레이더를 대륙과 마주 보는 르산기지에 실전배치했을 때 중국으로부터 당연히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친중파 마잉주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지금 한국을 대할 때처럼 비이성적인 집요한 대응은 삼갔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과 공산당 시진핑 주석은 2015년 싱가포르에서 국공(國共)정상회담을 열 정도로 찰떡궁합이었다. 다만 중국은 페이브포즈 레이더의 전파를 방해할 수 있는 비슷한 높이의 레이더를 대만섬과 마주한 푸젠성 후이안(惠安)현에 설치하는 정도의 맞대응에 그쳤다. 푸젠성 후이안현은 페이브포즈가 설치된 대만 신주현과 대만해협(海峽)을 사이에 두고 약 200㎞ 떨어져 있다. 중국 언론들은 “페이브포즈의 눈을 멀게 했다”고 평가했다.
   
   페이브포즈와 사드는 물론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페이브포즈의 경우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레이더를 구매한 뒤 대만 공군이 자체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이다. 사드는 한국군이 아닌 주한(駐韓)미군이 자체 방어를 위해 운용한다. 대만에 주둔하던 미군은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대만이 미국과 단교한 1979년 완전 철수했다. 페이브포즈는 전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인 반면, 사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결국 중국이 대만의 페이브포즈는 놔둔 채 탐지거리도 짧을 뿐더러 북한을 겨냥한 한국의 사드 도입에 ‘준 단교’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란 지적이다. 대만의 페이브포즈 도입 과정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대만독립파인 리덩후이 정권에서 추진한 사업을 민진당 천수이볜이 이어받고, 그 정적인 친중파 마잉주가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에서 13억 중국에 맞서는 2400만명 대만의 안보에는 여야(與野)도 좌우(左右)도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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