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이(Chagai)-I. 1998년 5월 28일 파키스탄이 남부 신드주의 주도인 카라치에서 서쪽으로 480㎞ 떨어진 발로치스탄주의 라스코산에서 무려 5개의 핵폭탄을 동시에 터뜨려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의 암호명이다. 파키스탄은 이틀 후인 5월 30일 차가이-II라는 암호명으로 라스코산에서 한 차례 핵실험을 추가 실시했다.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라스코산은 해발 3000m나 된다. 파키스탄은 이곳에 터널을 여러 개 뚫고 다양한 종류의 핵폭탄을 터뜨려 다량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얻은 뒤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이 그동안 핵실험을 실시해온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만탑산은 여러모로 라스코산과 비슷하다. 주성분이 화강암인 만탑산의 높이도 해발 2200m다. 북한은 만탑산 중턱을 수평으로 뚫어 여러 개의 터널을 만들고 지금까지 5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했다.

미국의 민간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실험 장소뿐만 아니라 방사능 계측기와 통신장비가 설치된 벙커와 부속건물 배치, 진입로 위치 등이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북한이 파키스탄의 핵실험 경험과 자료를 지원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핵폭탄 개발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지만 이를 탑재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파키스탄이 찾은 해법은 북한과의 협력이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헨리 소콜스키 박사는 “핵폭탄을 보유한 파키스탄은 북한의 미사일이 필요했지만 자금이 없었고,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은 핵무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북한과 파키스탄 간의 미사일과 핵을 교환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북한은 파키스탄에 노동 미사일의 연료탱크와 로켓엔진 등 8개의 주요 부품을 공급했고, 파키스탄은 이를 바탕으로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전수받았다. 칸 박사의 활동은 파키스탄 정부의 전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칸 박사는 1997년부터 최소 13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은 2006년 발간한 자서전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에서 북한의 핵 기술자들이 파키스탄을 방문, 핵무기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 과정에 필수적인 원심분리기에 대한 기술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또 이 자서전에서 칸 박사가 북한에 P-1 및 P-2 원심분리기 20여개와 유량계, 원심분리기에 쓰이는 특수 기름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과 북한의 核 개발 닮은꼴

미국은 2003년 10월 칸 박사와 북한과의 비밀 거래를 알아채고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칸 박사를 조치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파키스탄 정보국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칸 박사를 체포해 그동안 북한과의 비밀 거래 등 12쪽 분량의 진술서를 받아냈다. 칸 박사는 이 진술서에서 북한은 2002년 3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소량 농축하고 있었으며 농축에 필요한 가스 제조공장도 건설했다고 밝혔다. 칸 박사는 또 1999년 방북했을 때 산악터널에서 세 개의 완성된 핵탄두를 보았다고 밝혔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2004년 2월 칸 박사가 저지른 죄를 사면하면서 더 이상 조사하지 말라는 조치를 내렸다. 파키스탄 정부가 칸 박사의 활동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칸 박사의 진술서 내용은 그동안 간간이 파키스탄과 서방 언론에 나왔지만, 정확한 전모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은 1998년 4월 6일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가우리(Ghauri) 1호 미사일의 실험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 1500㎞인 가우리 1호 미사일은 북한 노동 1호 미사일의 복제판이었다. 가우리는 12세기 아프가니스탄의 국왕 샤부딘 가우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가우리 국왕은 1192년 인도 국왕 프리트비 라즈 차우한을 패퇴시키고 인도 북부 지역을 점령했었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8일 가우리 미사일을 공식적으로 실전 배치하는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가우리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파키스탄은 명실공히 ‘핵클럽(The Nuclear Club)’에 가입하게 됐다. 파키스탄은 현재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각종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까지 개발했다. 파키스탄은 11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은 현재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의 핵 강대국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대부분 소형화돼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다. 파키스탄의 핵탄두 무게는 500~1000㎏이다.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볼 때 핵무기는 주권과 안보를 지켜주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파키스탄과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파키스탄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악화됐다. 미국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응징하기 위해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서방국가들은 미국의 제재에 동참했지만 중국은 잠재적 적국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 조치를 거부했다. 덕분에 파키스탄은 다양한 핵탄두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2001년 9·11테러사건으로 다시 회복됐다. 미국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싸우기 위해 파키스탄과 동맹 관계를 다시 맺었다. 미국은 매년 15억달러를 지원해주었고, 파키스탄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다.

김정은이 핵탄두 앞에서 당과 군간부들에게 지시하는 모습. ⓒphoto 노동신문
김정은이 핵탄두 앞에서 당과 군간부들에게 지시하는 모습. ⓒphoto 노동신문

북한 6차 핵실험의 노림수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 개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파키스탄이 1998년 실시한 것처럼 핵폭탄 여러 발을 짧은 간격을 두고 터뜨리는 다중 핵폭발 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6차 핵실험에서 플루토늄탄·우라늄탄·증폭핵분열탄 등을 한꺼번에 터뜨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의 사례를 따르려는 것이다. 북한은 제1∼5차 핵실험을 통해 이미 괄목할 만한 기술의 발전을 보였다. 실제로 핵실험을 거듭할수록 폭발력이 증가했다. 제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의 위력은 1kt 이하로 평가됐지만, 제2차(2009년 6월 12일)에서는 3∼4kt, 제3차(2013년 2월 12일) 6∼7kt, 제4차(2016년 1월 6일) 6kt, 제5차(2016년 9월 9일) 10kt으로 커졌다. 북한은 1·2차 핵실험에선 플루토늄을 썼지만, 3차 핵실험에선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4차 핵실험에선 핵분열 장치에 핵융합 물질을 넣어 폭발력을 키운 증폭핵분열탄 시험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북한은 ‘수소탄 시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5차 핵실험 직후에는 ‘핵탄두 폭발시험’을 실시했다며 ‘표준화’와 ‘규격화’를 이룬 핵탄두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위력이 150∼200kt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갈수록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중 핵폭발 시험은 핵물질 비율이나 기폭장치 설정 등을 변수로 설정해 다양한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핵폭발 기술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핵폭탄 1개를 터트려 실험하면 핵무기 최적화 여부를 알 수 있는 데이터를 정확히 추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라늄 비율이나 기폭장치를 다르게 해서 여러 개를 터트려야 신뢰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서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과시하려는 목적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핵보유국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은 그동안 파키스탄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과정을 면밀히 주시해왔다. 실제로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김정은의 전략은 추가 핵실험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뒤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전략은 엄청난 오판(誤判)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능력과 핵보유국 인정은 차원이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때문이다. 애초부터 NPT에 가입하지 않았던 파키스탄과 1985년 NPT에 가입한 뒤 2003년 일방적 탈퇴를 선언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제재만 받을 뿐이다. 1974년 첫 핵실험을 했고 1998년 다섯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한 인도도 마찬가지다. 반면 북한은 5차례 핵실험을 실시할 때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아왔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내용의 결의 1718호, 1874호, 2094호, 2270호, 232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을 비호해온 중국이나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좌)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 photo 위키피디아 / (우)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photo 파키스탄군 사이트
(좌)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 photo 위키피디아 / (우)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photo 파키스탄군 사이트

NPT 가입 여부에서 파키스탄과 큰 차이

현재 NPT는 유엔 회원국 194개국 중 190개국이 가입해 있다. NPT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3개국과 신생국인 남수단밖에 없다. 1970년 발효된 NPT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의 핵무기 독점보유를 인정하고 5개국을 제외한 가입국들의 핵무기 개발, 도입,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NPT가 비록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핵보유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들어왔지만 그동안 핵무기 확산을 막아온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NPT가 인류의 공멸을 방지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틀로 자리매김한 만큼 어느 한 국가라도 예외나 탈퇴를 인정해줄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은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반발해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로 NPT 복귀를 선언했고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가 불거지면서 2003년 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지만,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NPT에는 탈퇴 조항이 있다. 제10조 1항은 ‘당사국들은 본 조약의 문제와 관련해 비상사태(extraordinary event)가 국가의 지상(至上) 이익(supreme interests)을 위태롭게 한다고 결정한다면,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이 조약을 탈퇴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비상사태를 어떻게 보느냐이다. 제10조 1항은 탈퇴를 원하는 가입국은 모든 가입국들과 유엔 안보리에 그 국가가 간주하는 비상사태를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북한이 주장하는 주권을 앞세워 핵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비상사태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든지 적대국과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의도나 야심을 갖고 있을 경우, 이를 비상사태라고 허용해준다면 모든 국가들이 NPT를 탈퇴해서 핵무기를 만들 것이다. 게다가 어떤 가입국이 핵보유국으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전수받은 다음 NPT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주장할 경우, NPT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는 NPT에 가입한 모든 국가에 해당한다. 때문에 비상사태라는 것은 명목상의 조항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가 NPT 가입국의 탈퇴를 허용할 경우 핵 도미노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자칫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기 때문에 NPT는 사실상 탈퇴할 수 없는 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NPT 가입국들 가운데 어느 국가도 탈퇴한 적이 없고, 비핵보유 가입국들 중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은 국가도 한 곳도 없다. 북한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NPT를 탈퇴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NPT 탈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강력한 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해온 것이다. 이란도 NPT에 가입한 나라였기 때문에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북한처럼 유엔의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유엔이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개발을 이유로 제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두 나라가 스스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은 NPT에서 탈퇴를 선언한 적은 없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자국을 적대시하는 국가가 북한처럼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핵보유 허용 시사 발언에 깜짝 놀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예외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핵보유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미국은 자국에 도전하려는 북한을 절대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추구하는 파키스탄 모델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전히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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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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