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해 5월 우리 외교부가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해서 중국을 ‘수영장 안에 뛰어들어온 코끼리’에 비유한 일이 있다. “중국은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는 작은 아세안 멤버들 사이에 뛰어들어온 큰 코끼리와 같은 존재다. 수영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중국이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펼치면 다른 아세안 국가들의 자유가 억제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동북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은 최근에 새로 뛰어들어온 코끼리로 볼 수 있다. 근대 이후에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라는 풀장에 중국보다 먼저 뛰어들어온 코끼리는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까지 세계 최강의 국가는 영국이었지만, 1900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이 각축하는 사이에 세계 최강의 국가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싱가포르나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서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지내야 수영장 안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어쨌든 미국과 중국이 서로 조용히 지내도록 하는 지혜를 찾아내야 하는 처지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마리의 코끼리는 현재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덩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세계은행(World Bank)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말 현재 24.7% 정도다. 미국의 GDP를 현재 달러 가격으로 계산하면 18.375조달러, 전 세계 GDP의 총계는 74.152조달러 정도다. 이에 비해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말 현재 14.8%, 중국의 GDP는 11.008조달러 정도다. 이에 비해 한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말 현재 1.8%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일본도 2010년에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현재는 전 세계 GDP에서 6%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인들에게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을 제시했다.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의 꿈은 두 가지로, 하나는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1921년에서 100년이 흐른 2021년까지는 중산층이 충분히 확보된 ‘샤오캉(小康)’ 상태를 달성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1949년에서 100년이 흐른 2049년까지는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올라선다는 것이었다.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의 꿈’은 미국 경제학자들의 추산으로 1812년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대청(大淸)제국의 위상을 되찾는 것과 동시에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이뤄진 하드파워(hard power)와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대당(大唐) 제국의 위상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그런 차이나 드림을 달성하기 위해 1980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불을 붙인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을 잘 관리하는 한편 덩샤오핑이 권고하지 않던 군사력 증강에까지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을 선언한 것은 지난해 4월 공화당 후보를 향해 달려가던 때였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은 완전한 실패였다”고 전제하고 “우리는 중국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존중(respect)하지 않게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수리(fix)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중국이 빠른 경제발전을 시작한 1980년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1.7%에 불과했다. 당시 아시아 신흥공업국으로, 아시아의 4소룡(四小龍)이라고 불리던 우리의 GDP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0.6% 정도였다. 1992년 우리와 중국이 수교할 당시 중국의 GDP가 세계 GDP에서 점유하고 있던 비율은 1.7% 정도로, 우리의 GDP 점유율 1.4%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국과 우리의 GDP 세계점유율은 2014년에 13.3% 대 1.8%로 크게 벌어졌다. 수교 25년 만에 우리는 대체로 아주 조금 성장한 반면 중국은 14억이라는 거대 인구를 바탕으로 몸 불리기를 열심히 해서 코끼리로 자라난 것이다.

문제는 우리와 수교한 후 지난 25년 동안 중국은 경제적인 몸 불리기만 열심히 해온 것이 아니라 세계 최강국이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에서도 꾸준히 몸 불리기를 하며 국방비 지출을 늘려왔다는 점이다. 2013년의 경우 우리의 6배 이상의 국방비, 그것도 공개된 부분만 그 정도인 국방비 지출을 통해 군사장비 개발과 조달을 했다. 이제는 우리가 도저히 BOP(힘의 균형)를 맞출 수 없는 수준의 국가로 커버렸다. 그래도 우리 정치인 가운데 누구도 그 점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우리의 주권 사항에 속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반대한다’면서 못된 코끼리처럼 경제와 문화 제재에 나서 물장구를 쳐도 우리의 국가지도자들은 준엄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한술 더 떠서 우리 정치인들은 “중국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현대판 사대(事大)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으나 한국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는 ‘한국의 꿈(Korean Dream)’은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그저 좌우파나 복지만 문제 삼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공약만 난무할 뿐이다. 이러다가 우리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병부(病夫)’라는, 과거 중국의 오명을 우리 머리에 뒤집어쓰게 되지는 않을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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