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53호] 2017.04.17
관련 연재물

[국제] 아사드를 보면 김정은이 떠오른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시리안프리프레스
시리아 내전 사태에 개입하기를 꺼려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 명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학무기로 숨진 생후 9개월 된 쌍둥이 딸들의 시신을 두 팔에 안고 비통해 하는 아버지를 담은 사진과 화학약품을 씻어내기 위해 물을 끼얹었지만 생기를 잃고 축 늘어진 어린이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공습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주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전하는 언론 보도를 온종일 지켜본 뒤 보좌관들에게 “끔찍하다” “몸서리쳐진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시리아 정부군 전투기는 지난 4월 4일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 이들리브주의 칸 셰이칸 지역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해 주민 87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했다. 사망자들 중 30명이 어린이였고 20명이 여성이었다. 이 지역은 시리아 반군 중 알 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극단주의 단체가 점령하고 있는 곳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정보기관들은 독성이 극도로 강한 사린가스 폭탄이 투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의료봉사 비정부기구인 국경없는의사회와 세계보건기구(WHO)도 사상자들의 질식, 입거품, 경련, 동공수축 등 증세를 볼 때 사린가스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사린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개발한 유기인 계열의 신경 독가스로 무색·무취하고 독성은 청산가리의 500배나 된다. 일단 흡입하면 중추신경계가 손상되고 심각한 마비, 극심한 구토를 유발해 결국 질식사하게 된다.
   
   쌍둥이 딸들은 물론 부인과 형제들, 친척 등 25명을 잃은 아버지 압델 하미드 알 유세프(29)는 “지난 6년간 아이들이 죽어갔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미국이 공군기지 한 곳을 폭격한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면서 오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은 인류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라며 “시리아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내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아사드 정권에 의한 이런 악랄한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아사드가 권좌에 있으면 정치적 해결의 선택지가 없다”면서 “아사드가 있는 한 평화롭고 안정된 정부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트럼프 정부는 이슬람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집중하기 위해 아사드의 권력 유지를 용인한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사드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아사드 대통령과 부인 아스마가 2014년 대선에서 투표하고 있다. photo SANA통신

   ‘시리아판 마리 앙투아네트’
   
   그렇다면 아사드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러시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온 아사드 정권은 지난해 말 반군 최대 점령지 알레포를 탈환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6년간 치른 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론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시리아 정부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계속된 전투로 매우 지쳐 있다. 또 내전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사드 정권에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사드 정권은 결국 내전 종결을 위해선 화학무기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의 조슈아 랜디스 중동연구소장은 “아사드와 그의 부하들은 이기길 원했지만 정부군은 탈진한 상태였다”면서 “화학무기는 다른 군사수단이 고갈된 지도자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사드 정권은 민간인 희생에 대해 무감각해왔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는 2011년 3월 15일 시작된 내전이 6년이나 지난 현재 32만1358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이 중 민간인은 9만6000명이고, 이 가운데 1만7400명은 어린이다. 시리아 정부군과 친정부 민병대가 6만900명과 4만5000명,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등 외국 부대원 8000명이 전사했다. 시리아 반군과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 조직원도 각각 5만5000명이 사망했다. 민간인들은 대부분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희생됐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시리아 국민 490만명이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했고, 국내 이재민도 630만명이나 된다.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무뎌진 아사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화학무기 사용은 죄책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정권은 2013년에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장악지역에 사린가스 공격을 감행해 주민 1429명을 숨지게 한 적이 있다.
   
   게다가 아사드 정권은 전시효과도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공포심을 극대화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을 빨리 받아냈듯이 아사드 정권도 화학무기 공격으로 같은 효과를 기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리아 내전 개입을 꺼렸던 국제사회의 소극적 태도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아사드 정권은 그동안 반군에 가담한 주민들을 온갖 잔혹한 방법을 동원해 고문·살해하는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러왔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다. 특히 트럼프 미국 정부는 IS 격퇴에만 관심을 보이면서 아사드 정권의 잔혹행위와 인권유린을 외면해왔다. 때문에 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를 사용해도 트럼프 정부가 방관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피터 포드 전 시리아 주재 영국대사는 “아사드는 미치지 않았다”면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아 국민들은 대부분 전쟁의 참화로 목숨을 겨우 연명하고 있지만 아사드 대통령 일가는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 아사드는 지난해 11월 6일 영국 선데이타임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내전으로 아이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잠이 제대로 오느냐는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나는 일상적으로 잘 자고, 일과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라고 답했다. 아사드는 또 “시리아 국민 수만 명이 희생당한 건 테러리스트 잘못”이라면서 “미국이 IS의 테러를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사드는 “시리아 국민들은 이슬람극단주의자가 아니라 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했다.
   
   올 52세인 아사드는 부인 아스마(42)와 사이에 장남 하페즈(15), 장녀 자인(13), 차남 카림(12)을 두고 있다. 아사드의 인터뷰 내용처럼 아스마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보면 아사드 가족은 내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세 자녀는 외국어를 배우고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아스마는 “하페즈는 과학기술과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아버지만큼 키가 클 것 같다”며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고 적었다. 아스마는 또 “자인은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며 “엄마와 아빠를 닮아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스마는 “카림은 우리 가족의 스포츠 스타”라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드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다마스쿠스는 지금까지 내전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마스쿠스에서 단 몇 ㎞만 밖으로 나가면 생지옥이나 마찬가지다. 도처에서 포탄과 로켓탄이 터지고 공습으로 팔다리가 잘린 주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나뒹굴고 있다. 의약품이 없거나 식품이 없어 굶어죽는 주민들도 부지기수다. 아사드 가족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벙커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특히 아스마는 나라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도 인터넷으로 사치품 쇼핑을 즐기는 등 ‘시리아판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아스마는 샤넬 제품을 좋아한다.
   
   
▲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가운데)이 알라위파 신자들과 기도하고 있다. photo SANA통신

   알라위파 기득권 지키는 독재자
   
   ‘21세기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는 아사드는 집권 초기에는 개혁정책을 표방해 시리아의 ‘희망’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아사드는 1971년부터 2000년까지 시리아를 철권통치한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차남이다. 원래 그의 꿈은 안과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다마스쿠스대에서 안과학을 전공하고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다마스쿠스 티스린 군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거쳤다. 이후 영국 런던의 웨스턴 안과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던 중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비보를 접했다.
   
   장남인 바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후계 수업을 받고 있던 형의 사망으로 그는 귀국해 후계자가 됐다. 아버지 하페즈는 장남이 죽고 난 뒤 4남이자 막내아들인 마헤르가 대통을 이을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마헤르의 나이가 27세에 불과했다. 하페즈는 차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사드는 북부 홈스에 있는 군사아카데미에 들어가 군사학을 공부했고 고속 승진 끝에 1999년 1월 육군 대령이 됐다. 2000년 6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급서하자, 그는 육군 원수와 군사령관 및 집권 여당인 바트당 총재 등의 급조된 감투를 쓴 채 같은 해 7월 의회 투표에서 97%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서방 국가들은 유학까지 했던 그가 어느 정도 개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실제로 그는 취임 직후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비롯해 경제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 정치범 석방, 자본주의식 시장경제 도입, 언론 규제 완화 등 개혁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는 또 2001년 ‘서방의 물’을 먹은 아스마와 결혼했다. 그녀는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고, 도이체방크와 JP모건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한 적이 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시리아 정권의 보루인 알라위파·아사드 가문·군부 등 3대 세력이 그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3대 세력과 타협해야만 했다. 그는 집권 2년 차부터 민주화 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고, 집권당인 바트당 중심의 독재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알라위파(Alawis·알리의 숭배자들)는 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시아파에서도 소수파이다. 시아파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제4대 칼리프)만을 정통 칼리프로 보는데, 알라위파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알리를 신격화하고 숭배한다. 알라위파는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가 9세기 말에 창시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누사이리파라고도 한다. 시리아 전체 인구 2400만명의 12%에 불과한 알라위파는 그동안 아사드 가문과 결탁해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해왔다. 알라위파는 또 군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군부의 장교들은 대부분 알라위파 출신이다. 군부 출신이자 알라위파인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는 공군사령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했고 쿠데타를 일으켜 알라위파로는 시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됐다. 시리아 정권의 장관들은 대부분 알라위파다. 군부의 주요 지휘관과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임원들도 알라위파다.
   
   알라위파 주민들은 아사드 정권의 운명을 자신들과 동일시하고 똘똘 뭉쳐 전체 인구의 70%인 수니파 주민들에 맞서왔다. 반군은 수니파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알라위파 주민들은 반군은 물론 이에 동조하거나 지원하는 수니파 주민들을 적대시해왔다. 아사드 정권이 그동안 학살하거나 무차별 공습한 주민들은 수니파다. 하페즈 전 대통령도 1982년 2월 반정부 봉기에 나선 중서부 도시 하마의 수니파 주민 4만여명을 학살한 적이 있다. 아사드의 화학무기 사용은 ‘하마 대학살’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아사드 가문 출신으론 마헤르(50)가 가장 강력한 실세이다. 육군 소장인 마헤르는 대통령궁을 경호하는 공화국 수비대와 시리아 최정예부대인 제4기갑사단을 지휘하는 사령관이다. 특히 마헤르는 그동안 반정부 시위대를 무차별 살해하는 등 잔악한 행위를 자행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마헤르는 내전 초기인 2011년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향해 총공세를 퍼부었을 때 대통령궁을 사수하면서 반군을 격퇴했다. 사촌인 나미르와 모하메드는 알라위파 청년들로 구성된 친정부 민병대 ‘샤비하’를 관리하고 있다. 샤비하는 수니파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데 앞장서왔다. 아사드의 모친 집안인 마클루프 가문도 막강하다. 아사드의 외사촌인 라미 마클루프는 시리아에서 최고 부자이자 가장 유명한 기업인이지만 부패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아사드는 2007년 재선에 이어 2014년 다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앞서 그는 2012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유지하되 연임을 두 차례로 제한한다면서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14년부터 새 헌법을 적용한다고 선포했다. 이에 따라 그는 2021년까지 자신의 임기를 채운 후 다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2028년까지 시리아를 통치할 수 있다. 사실상 종신제인 셈이다. 아버지의 통치기간(30년)까지 감안하면 아사드 왕조(王朝)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시리아 대통령이면서 한 가문의 대표인 동시에 알라위파의 수장이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시리아의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알라위파의 생존이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아사드의 철권통치를 보면 북한과 3대 세습 독재를 해온 김정은이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가문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

2467호

2467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신한금융
삼성전자 갤럭시 s8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