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신년하례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5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신년하례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번엔 본격 ‘부산 더비’다. 경남고와 부산고 얘기다. 더비(Derby)는 스포츠에서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한 맞수 팀의 대결을 뜻한다. 부산에 있는 두 고등학교는 2012년 대선에서 이미 붙었던 전력이 있다. 그때가 가벼운 몸풀기였다면 이번엔 본선이다. 경남고 졸업생 문재인과 부산고를 졸업한 안철수의 대결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두 학교 동문회는 동문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경남고의 경우 사실상 의도적 무관심에 가까웠다. 동문의 대선 출마 소식을 동창회보에서 크게 싣지도 않았다. 선거가 끝난 후 문재인 캠프에서는 ‘동문들에게 소홀히 한 것’을 대선 패배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당시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부산에서 44만표 차로 졌다. 이후 문 후보는 재경 모임과 부산의 동창회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그 덕일까,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르다는 얘기가 들렸다. 지난 4월 17일 두 학교의 재경동창회를 찾아갔다. 재경동창회와 총동창회의 범위는 대전을 경계로 나뉜다. 서울·강원·충청 등 대전까지는 재경동창회에서 관할하고 그 아래 지역은 부산에 있는 총동창회 소속이다. 회보도 따로 발행한다. 총 졸업생 규모는 두 학교가 비슷하다. 경남고 3만2783명(71회), 부산고 3만2514명(70회)이다.

흥미로운 점은 재경동창회와 총동창회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발단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고등학교 추첨배정제, 일명 ‘뺑뺑이’ 제도가 시행됐다. 경남고 기준 31회, 부산고는 32회부터 윗세대와 갈린다. 시험을 안 보고 입학한 평준화 세대다. 평준화 이전 두 학교는 전국 6위권 안에 드는 명문고였다. 해마다 서울대에 100명 이상을 보냈다. 1972년 입학생 기준으로, 경남고는 서울대에 173명을 진학시켰다. 전국 4위였다. 1973년에는 130명이 합격했다. 전국 6위. 부산고는 1972년에 141명(5위), 1973년엔 183명(4위)을 서울대에 보냈다. 고려대와 연세대까지 합치면 해마다 300명 이상이 서울의 명문대로 진학했던 시절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양교 모두 서울대를 포함한 서울 소재 대학 진학률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경동창회에는 아직까지 비평준화 세대의 영향력이 크다. 특히 경남고의 경우 이런 성향이 두드러져 보였다.

양교의 재경동창회는 여의도에 있다. 국제금융로에 있는 동북빌딩 4층과 5층에 입주해 있다. 서울 무교동 사무실 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은 건물에 있다. 우연히 이웃사촌이 된 것은 아니다. 학교를 넘어 동향이다 보니 친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거니와, 두 동문회의 구성원들이 겹치기도 한다. 고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 동문도 함께 모이기 때문이다. 동문회 공식 명칭이 각각 경남중·고, 부산중·고 동문회인 이유다. 경남중-부산고, 혹은 반대로 부산중-경남고인 경우도 있다. 안철수 후보 측 인사로 분류되는 김경민 한양대 정외과 교수는 전자(前者)다. 경남고 동문들 사이에선 “경남중·고 모두 나오면 성골, 경남고만 나오면 진골, 경남중만 졸업하면 6두품”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문재인 후보는 성골,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6두품이다.

2012년 9월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부산고등학교를 방문한 모습. ⓒphoto 이준헌 조선일보 기자
2012년 9월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부산고등학교를 방문한 모습. ⓒphoto 이준헌 조선일보 기자

침착한 분위기의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사무실에 들어섰다. 마침 문규철 재경동창회장(23회)과 강상대 회보 편집고문(전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김동건 회보 편집위원이 사무실에 들른 참이었다. 사무실 곳곳에 경남고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책장 제일 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놓여 있다. 3회 졸업생 YS 덕분에 경남고는 단번에 여의도 주류 정치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작고 1주기였던 지난해 11월 YS는 모교로 돌아갔다. 초대 교장 안용백 선생과 이태석 신부(35회)와 함께 동상으로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다.

책장 중간쯤엔 대형 야구공이 2개 놓여 있다. 선수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경남고는 야구 명문이다. 장태영·김용희·허구연·최동원·이대호가 경남고 출신이다. 부산고도 야구 명문이긴 마찬가지다. 양상문·마해영·추신수를 배출했다.

문규철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대선에선 동문들이 문 후보를 지지합니까?” 신중한 답이 돌아왔다. “동문들 간에도 스펙트럼이 넓다. 나서서 정치 운동을 하면 동문들 사이에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문 회장의 말대로 재경동문회는 드러내놓고 문 후보를 지지하고 있진 않다. 동문회보 ‘용마’에 실어주기는 했다. 매달 발행된다. 4월 1일자 첫 페이지에 ‘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동문 당선 유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4년 전과 비하면 변화라면 변화다. 총동창회 회보도 첫 페이지에 ‘문재인(25회) 동문, 대통령 선거 출마’라는 제하에 소식을 전했다.

경남고 재경동문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지난해 10월 역대 재경동창회장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문재인 후보가 참석했다. 공식적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찾아왔다고 한다. 선배들은 문재인 후배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런 질문도 나왔다. “당신은 자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자인가?” 문 후보는 “군사정권의 잘못을 고치려 했을 뿐 제가 좌쪽은 아닙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여러 선배님들을 잘 모시겠습니다”라며 일종의 사과를 했다.

평준화 이전 세대인 경남고 출신 A씨는 “서울에 있는 경남고 출신들은 문재인을 지지하자는 얘기 자체를 안 한다”고 말했다. “투표장에선 어떨지 모르겠다. SNS 단체창 같은 곳에선 아예 언급조차 안 한다. 사석에서도 ‘우리가 이번엔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자’, 이런 의견을 내는 사람 자체가 없다. ‘오래 남는 건 동문회다. 문재인 하나 대통령 만들고 동문회 안 할 거냐. 알아서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현실정치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종의 엘리트 의식도 있다.”

YS 때는 어땠을까. 김동건 편집위원의 설명이다. “YS가 야당생활을 오래하지 않았나. 그때도 경남중·고 동문들 사이에는 관료, 기업인이 많았다. 동문이 대선에 출마했지만 행여 불이익을 받을까 대놓고 도울 수 없었다. YS가 두 번째 도전했을 때는 달랐다. 이때는 여당이었다. 동창회가 적극 나섰다. 동창회 지역지부를 적극적으로 키운 게 이 당시다.”

졸업생 B씨는 ‘문 후보 주변’에 대한 우려를 털어놨다. “만나 보니 사람은 좋다. 걱정은 친노세력과 이른바 ‘3철’이다. 동창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동창이 대통령 되는 게 얼마나 영광이냐. ‘대통령 한 번 더 만들어 보자’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안보관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산은 어떨까. 황유명 총동문회 사무총장(29회)의 설명이다. “4년 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평준화 이전 이후를 놓고 보면 이후 세대(31회 이후) 중에 문 후보를 지지하는 동문들이 많다.”

모교 출신 대선후보 소식을 실은 동창회보. 왼쪽부터 부산중·고 재경동창회보 청조인, 경남중·고 재경동창회보 용마, 경남중·고 총동창회보.
모교 출신 대선후보 소식을 실은 동창회보. 왼쪽부터 부산중·고 재경동창회보 청조인, 경남중·고 재경동창회보 용마, 경남중·고 총동창회보.

경남고 동문 “4년 전과 분위기 달라”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25회 동기들의 활동도 눈에 띈다. 황호선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지난해 문 후보 지지 외곽조직 ‘열린포럼’을 조직했다. 처음엔 경남고 졸업생이 주축이었다. 후에 선거법을 고려해 외연을 넓혔다. 회원 수는 약 2500명. 온오프라인에서 정책 강연회를 열고 있다. 황 교수는 “4년 전엔 평준화 세대가 동문회 주도 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이 중요하다고 봤다. 평준화 세대 동문 중 숨은 문재인 지지자를 발굴해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다.”

‘갱고’(‘경고’의 사투리 발음) 25회 동기회장인 송정규씨는 “4년 전 빚 갚을 겸 이번엔 화끈하게 밀어주자는 정서가 동기들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 단장과 한국도선사협회 회장을 지낸 송씨는 문 후보와 같은 지역(영도)에 거주하며 함께 어울리는 등 절친한 사이였다. “2012년엔 부산 정서가 친노와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 아닌가. 문 후보도 그때는 도와달란 말을 안 했다. 그런데 이번엔 지지를 부탁했다. ‘비서실장 할 때 동기들과 거리감을 둬서 미안했다’고도 했다. 동문회뿐 아니라 부산 바닥민심도 바뀐 것 같다. 작년 6월에 문 후보와 같이 밥을 먹고 부평동 시장을 걸었다. ‘문재인씨’ 이러면서 사람들이 손을 잡더라. 4년 전과는 천양지차다. 부산에서 표가 많이 나올 거다.”

청와대 근무 시절 동기들과의 일화는 경남고 동문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경남고 동기 몇 명이 청와대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다며 문 후보가 만나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졸업생 C씨의 얘기다. “민정수석 시절엔 상대가 ‘경남고 몇 횝니다’라고 하면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앉았다더라.”

문재인 캠프 인사 내 경남고 동문으로는 이호철 전 민정수석(31회)이 대표적이다. 정책 생산을 도운 싱크탱크 ‘국민성장’에는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남중 졸업)와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29회)가 있다.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21회)은 최근 캠프에 합류해 부산 선거전을 지휘하고 있다.

이번엔 부산고 재경동창회 사무실이다. 여느 동창회처럼 행사 기념품이며 학교 관련 소책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재경동창회보가 눈에 띄었다. 부산고 동문회보는 ‘청조인(靑潮人)’이라는 제호를 쓴다. 4월호 표지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철수다. 꽉 쥔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국민의당 유세차량에 붙어 있는 사진이다. 회보 안을 들춰봤다. 2쪽에 걸쳐 대통령 출마소식을 전했다. ‘청조인 안철수 미래혁명 걸고 대통령 첫 도전’이라는 제목이다. 부산고 졸업생 D씨의 설명이다. “청조인 표지에 인물사진이 실린 게 이번이 처음이다. 동문회 내부에서 이의를 표시한 사람도 있었던 걸로 안다. 그렇지만 동문들 사이에는 이런 심리가 지배적이다. ‘언제 또 부산고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오겠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문경 교령산으로 떠난 재경동창회 산행에 함께한 안철수 후보(왼쪽에서 세 번째). 2015년 9월에 열린 행사다. ⓒphoto 부산중·고 재경동창회
문경 교령산으로 떠난 재경동창회 산행에 함께한 안철수 후보(왼쪽에서 세 번째). 2015년 9월에 열린 행사다. ⓒphoto 부산중·고 재경동창회

3명의 대선후보(김영삼,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문재인)를 낸 경남고와 달리 부산고는 안철수 후보가 첫 대선후보다. 양교의 특색을 비교하면 의외다. 부산 출신 사람들은 비평준화 시대의 두 학교를 두고 ‘경남고는 연세대, 부산고는 고려대’로 비유한다. 경남고는 동대신동에 있다. 한때는 서울로 치면 성북동이나 연희동 같은 동네였다. 부산의 중심이 해운대 쪽으로 옮겨간 지금으로선 옛날 얘기다. 부근엔 구덕야구장이 있어 ‘구덕상고’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경남고는 상대적으로 도시적인 분위기였다. 재학생 부모의 직업을 보면 관료도 많았지만 기업가나 의사 집안이 많았다고 한다. 동문 명단을 보면 ‘구’씨와 ‘허’씨, ‘신’씨가 자주 눈에 띈다.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14회), 신준호 푸르밀 회장(14회), 허창수 GS그룹 회장(21회), 구자웅 포스텍전자 회장(24회) 등이다.

부산고는 일단 지역부터 다르다. 초량동에 있다. 부산역 부근이다. ‘초량농고’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부산뿐 아니라 부근 지역의 수재들이 유학을 많이 왔다.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덕도 컸다. 졸업생들은 관계, 군, 법조계, 의료계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해 있다.

28회 졸업생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학창 시절 분위기를 물었다. “당시 시대 상황이 암울하지 않았나. 고시공부를 하면 일신의 입신양명을 생각하는 속물로 보는 성향이 강했다. 다른 기수는 몰라도 28회에는 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적었다. 고시 합격자가 스무 명 안팎뿐이다. 운동권에 진출한 동기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선생님들의 기질도 학풍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수업시간에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대표적인 법조계 인사로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20회),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21회), 이종백 전 부산고검장(22회), 임채진 전 검찰총장(24회), 전원책 변호사(25회), 안영욱 전 서울중앙지검장(26회), 이인재 전 서울중앙지법원장(26회), 문효남 전 부산고검장(26회), 김신 대법관(29회), 김명수 서울고법 부장판사(30회) 등이 있다.

관계 동문으로는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10회), 김수명 전 금융결제원장(21회), 김창록 전 한국산업은행 총재(21회),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21회),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26회),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22회) 등이 있다.

MB 정부 시절 18대 총선 공천을 맡았던 이방호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부산고 16회다. 이때 ‘부산고는 웃었고 경남고는 울었다’는 얘기가 정치계 안팎에 파다했다. 흥미로운 기수는 18회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강정구 동국대 교수, 이 세 명은 모두 18회 동기다. 강 교수는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이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듯, 6·25 전쟁은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이라고 주장했던 학자다. 이념적으로 다른 포지션에 서 있는 동기 세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유명해진 경우다.

경남고처럼 부산고 동문회도 별 움직임이 없었다. 평소 동문회 활동을 안 하던 안 후보의 행적 때문이었을까. 이런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한 부산고 동문이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안 후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동문은 안 후보보다 위 기수였다. 자리에 앉으며 안 후보에게 “부산고 X회 졸업생입니다”라며 말을 걸었다. 안 후보의 대답은 “네, 안녕하세요”가 끝이었다. ‘내 말을 못 들었나?’ 생각하며 이 동문이 다시 “X회 XXX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돌아온 답은 “네”였다고 한다. 그랬던 안철수도 본격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달라졌다. 동문회 산행이나 체육대회에도 곧잘 참석했다. 부산고 동문회는 젊은층의 참여가 활성화된 것이 특징이다. 매년 평준화 세대들이 모여 체육대회와 스포츠 경기를 연다. 연례 등산모임엔 500명씩 모인다. 거액을 쾌척하는 대기업 오너 동문을 찾기 힘들다 보니 ‘십시일반’ 문화가 발달해 있다. 모교 발전기금으로 100억원 이상을 모았다. 매년 3억원씩 모교에 지원한다. 장학금, 기숙사 운영비, 해외문화 탐방비 등으로 쓰인다.

2016년 8월에 열린 경남중·고 월례회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 왼쪽부터 한석정 동아대 총장, 서병수 부산시장, 송정규 동기회장, 문재인 후보, 박종찬 제이텍 사장. ⓒphoto 송정규
2016년 8월에 열린 경남중·고 월례회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 왼쪽부터 한석정 동아대 총장, 서병수 부산시장, 송정규 동기회장, 문재인 후보, 박종찬 제이텍 사장. ⓒphoto 송정규

재경동창회보 표지는 동문 후보로 장식했지만 동문들이 지지모임을 만드는 등의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33회 동기들 중 안 후보와 친했던 친구들이 가끔 모여 식사나 하는 정도다. 재경동창회의 이재준 사무국장(39회)은 발언을 아꼈다. ‘동문회가 선거에 이렇다 저렇다 의견을 표하면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의 총동창회도 같은 입장이다.

33회 동기 중 안 후보와 각별한 사이였던 걸로 알려진 한의사 전창선씨는 “선거 후라면 모를까 선거 전에는 말을 아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동기 서병호씨는 “안 후보는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이 깊고 꿈이 원대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나오려고 했을 때는 동기들이 모두 한창 바쁘게 일할 때였다. 지금은 은퇴 앞두고 시간이 조금씩 나는 시기다. 학교 때부터 좀 남다른 친구였다.” 서씨는 “철수가 정치적 빚 없이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고등학교 동기만 600명이 넘지 않은가. 주변에서 돕겠다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친한 동기들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한 차단한다. 나중에 혹여 나쁘게 비칠까봐 우려돼서다.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도우려한다. 동기들은 나중에 철수가 큰 정치를 하는 걸로 돌려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청조인에는 기수별로 돌아가며 학창 시절을 회고하는 코너가 있다. 올 1월호는 33회 차례였다. 10여명의 동문이 국회 의원회관 안철수 의원실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책벌레라면 안철수 동기를 꼽을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수업시간에 선생님들께 거의 들키지 않고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책을 대부분 다 읽었다고 할 정도다. 안철수 동기는 나중에 교수가 되어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살펴보니 수업에 열중하지 않는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모교 선생님들께서 안철수 동기가 몰래 책을 읽는 줄 아시면서도 모른 척해주셨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 말했다.’

기사는 1월에 실렸지만 동기들이 의원회관에 모인 것은 작년 9월이었다. 안 후보는 당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치가 너무 재밌다. 전혀 몰랐던 분야인데 배우는 게 좋다. 평생 해도 재밌을 것 같다.”

안 캠프 내 부산고 인사로는 표철수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21회), 김성식 의원(30회)이 대표적이다.

양교가 올해는 대선의 맞수로 만났지만, 앞으로도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흔히 고교 순위의 지표로 활용되는 서울대 진학률을 보면 10위권에는 특목고와 자사고 일색이다.(예체능계열인 서울예고 제외) 경남고와 부산고 모두 올해 입학생 수가 각각 200명이 안 된다. 동문들은 학교 위치를 옮기거나 자율형 체제로 전환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 중이다.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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