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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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운(運)’과 ‘깡’(권력의지)을 가진 사람이 된다. 지도자감으로 인정받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시대가 원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다자(多者)구도로 전개되는 5·9대선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양강(兩强)체제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이제 유권자의 관심은 “어느 후보가 대통령감에 더 부합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주변 정치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난 4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을 만나 두 후보의 인물평을 들어봤다. 6선(選)의 문 의원은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다.

문 의원은 2003년 노무현 정권 때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을 밑에 두고 있었다. 문 의원이 당으로 복귀한 뒤에도 ‘당대표 문희상’과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문 의원은 또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안철수 후보가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당의 후보를 내지 않았다. 안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당시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된 안 후보는 2014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서 문희상 의원과 함께 한솥밥을 먹었다. 그러다 2015년 12월 안 후보가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호남권역을 석권하며 다당제 시대를 열었다. 국민의당 대표를 지낸 안철수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의 기본 덕목으로 국민통합과 국가경영 능력을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고 본다. 특히 도덕성과 신뢰의 문제에 있어서 하자가 없다. 안 후보의 경우 지적능력이 뛰어나고 최근 열정까지 강해진 걸 느낄 수 있다.”

- 기본 덕목만 갖추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렇지 않다. 추가로 깡과 운이 있어야 한다. 깡은 확고한 권력의지를 말한다. 결단력과 담대함이 없으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실패하고 만다. 정치인이라면 모든 것을 던져 승부를 걸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참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덕장(德將)이 운 좋은 장수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은 시대가 낳고, 또 시대가 만드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이 가진 능력만으로 되고 말고를 따질 수 없다.”

- 문재인 후보는 어떤가. “내가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민정수석으로 문재인 후보가 추천됐다. 나는 당시 이 인사(人事)에 반대했다. 민정수석비서관 업무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백면서생이 맡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고로 민정수석의 언행은 칼날과 같아야 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겪어 봐서 잘 안다. 실망시킬 분이 아니다’면서 나를 설득했다. 검찰 출신이 아닌 민변 소속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발탁하는 것 자체가 검찰 개혁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있어 받아들였다.”

2003년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문희상 비서실장의 매제가 차기 경찰철장에 거론되자 ‘불가론’을 제기했다. 문 의원은 “사슴같이 선한 눈망울을 가진 그가 ‘비서실장의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인사 방향을 틀었을 때 내심 불편했지만 마땅히 대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의 매제인 이상업씨는 2003년 치안정감을 끝으로 경찰을 퇴직했다. 문 의원은 “문재인 후보는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산다”고도 했다. “고구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미스터 도덕’이라고 보면 된다. 이걸 반확장성의 근거로 지목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와서 고치는 게 힘들겠지만 문 후보도 많이 달라졌다.”

- 문 후보 아들의 공기업 채용 의혹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라고 주문한 까닭은. “대선에서의 검증은 ‘마, 고마해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문 후보가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그래야 극복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잘못된 주장에 대해 일일이 고발하며 정면 대응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야 한다.”

- 안철수 후보를 평가한다면. “문 후보가 휴머니스트라면 안 후보는 지적인 사람, 소위 인텔리다. 요즘 깡이 많이 생겼다. ‘나의 정치적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내가 옳다’고 하는 신념이 생겼다. 오버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수준이 과한 단계에 있다. 초등학교 웅변대회에 나가 목청을 돋우는 식으로 발성을 바꿨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아직은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정치를) 학습하는 단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때론 그가 새정치를 하는 건지, 아마추어인지 헛갈린다.”

-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라고 생각한다. 낡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게 시민들의 요구다.”

- 통합과 협치 등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는데. “통합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정치의 본령이다. 세대와 지역, 그리고 이념으로 분열돼 있을 때 이걸 하나로 묶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투쟁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갈등을 봉합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나서게 마련이다. 어느 정치인도 분열을 얘기하지 않는다.”

문 의원은 “시대정신 키워드인 적폐 논쟁은 당내 경선에서 유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안희정 후보는 연정과 통합의 화두를 본선에서 꺼냈어야 했다. 경선에서는 촛불민심을 반영하는 게 맞았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도 “보수층을 겨냥한 과감한 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대정신이 있는데, 보수를 향해 표를 얻겠다고 나선다면 최종적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호남과 대구경북(TK)에서 동시에 지지를 받는 게 어렵다는 건가. “국민의당은 호남이 주력인 정당이다. 안 후보가 대구·경북의 보수층에 더 다가갈 경우 당내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이 상황을 돌파하려면 용기를 내 홍준표 후보 식으로 확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안 후보는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라서 그렇게까지는 못 할 거다.”

- 이번 대선에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의정활동을 해본 결과, 보수당에서는 드물게 자질과 역량을 고루 갖춘 정치인이었다. 얼마 전 TV토론도 잘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시대가 아니다. 유 후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 문 후보를 꺾기 위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가 가능할까. “현재로선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연대라면 나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내가 직접 연대와 연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대의명분이 부족하고 줄탁동기의 시의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시너지가 아니라 마이너스 효과로 이어진다. 탄핵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집단은 이번 대선에서 역할이 없다.”

문 의원은 남경필 경기지사가 경기도정에서 펼치고 있는 연정을 높게 평가했다. 문 의원은 “남 지사의 연정은 명분도 있고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결정이었다. 나도 찬성과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대통령제하에서 지방정부가 연정을 성공시킨 것은 세계 정치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남 지사는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유승민 후보에게 패배했다.

- 일부 정당은 선거자금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예를 들어 20석 규모의 정당이 각종 대선 캠페인을 다 하고도 10% 미만을 득표한다면 당은 거덜난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정당이 대선주자를 내지 않거나 선거를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집권의지를 포기한 정당은 더 이상 정당이 아니다. 정의당은 소수 정당의 한계 속에서도 나름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며 굳건히 가고 있다. 경제적 여건에 맞게끔 선거를 치르면 된다.”

- 이번 대선에서 변수는 있다고 보나. “없다. 제3지대, 개헌론을 매개로 연대를 모색했던 분들이 대통령 욕심을 내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 김종인 전 의원의 탈당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이 당에 남아 계셨다면 다음 정권에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촛불민심에서 나타난 시대정신 중 하나가 정의인데, 김 전 대표가 얘기하던 경제민주화와 상통한다. 자기 역할을 스스로 차 버린 격이 아닌가 싶다.”

- 대선 이후 보수 진영의 미래를 예상한다면. “국가운영의 틀에서 보면 건전한 보수의 재건이 중요해질 것이다. 안보, 애국, 정의, 시장 등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분명하고 그 역할도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예상되는 패배를 전화위복의 발판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어차피 차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협치해야 한다. 건전한 보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문 의원은 지난 3월 말 ‘대통령, 우리가 알아야 할 대통령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냈다. 3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원고를 작성하는 데 고작 15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시대정신’을 꼽았다.

책을 쓴 배경은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국민이 들고일어나 세상을 바꾼 경험을 4차례나 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의 현장을 목도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국민적 항쟁 뒤에 늘 반혁명적 상황의 역주행이 벌어졌다. 5·16쿠데타, 전두환 군사정권, 노태우 정권의 탄생 등이 그것이었다. 이번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부분적으로 적폐가 청산되는 과정에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경각심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쓰게 됐다. 이번에는 역주행이 없기를 바란다.”

- 다음 정부의 최대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나. “아무래도 개헌이 될 것 같다. 정말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정치 자체를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 각 정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개헌이 성사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엇보다 새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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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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