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대선전이 과열되면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둘러싸고도 후보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이어 지지율 3위를 달리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최근 “4~5% 광적인 지지계층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국민 전체 여론조사인 양 호도하는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19일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를 만나 현 여론조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로 선거 컨설팅과 정치 여론조사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이 교수 역시 그동안 국내 여론조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 홍준표 후보가 4~5%의 광적인 지지계층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게 맞는 주장인가. “여론조사 응답률이 4~5%에 불과한 현실을 말한 것 같다. 홍 후보가 언젠가 ‘현 여론조사에 따르면 1만명 중 불과 80명만이 나를 지지한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1만명한테 전화를 돌리면 1000명이 응답하고 이 중 80명이 지지한다고 밝혀 지지율 8%로 나온다는 것이다. 1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지지율이 불과 0.8%에 그친다는 비판이다.”

- 응답률이 낮더라도 지금처럼 성별·연령별·지역별로 전체 구성비에 맞게 샘플을 선정해 샘플 숫자를 채우면 정확한 조사 아닌가.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이 샘플 수를 채우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샘플링을 할 때 여러 가지 팩터가 많다. 예컨대 학력 하나만 보자. 우리나라 20대 이상 인구 중 대학 졸업자가 3분의 1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최근 어떤 여론조사를 보니까 응답자 중 대졸자 비중이 3분의 2나 됐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 중 대졸 이상과 고졸 이하 응답자의 지지율 차이가 10%포인트나 된다.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대졸 이상 응답자들의 지지율이 높다. 이 학력 팩터만 정확히 반영해도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4~5%는 떨어질 것으로 본다. 그만큼 우리 샘플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샘플 자체를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성, 연령, 지역 같은 팩터뿐 아니라 소득, 학력, 정치 성향까지 다 고려해 샘플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정교한 샘플을 만들 수 있는 정보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 그럼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가장 큰 문제가 응답률이라고 본다.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샘플 수가 1000명이라면 1000명한테만 전화를 거는 게 맞다. 과거 면접 조사를 할 때는 응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배경 정보를 취해서 이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예측해 통계학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무작위 전화조사를 하면 이런 판별분석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여론조사에서는 1000명에게 전화를 걸면 많아야 100개 정도 답을 얻는다. 만약 샘플 수가 1000개라면 나머지 900개의 답을 얻기 위해 다시 9000명에게 전화를 건다. 이렇게 하면 응답한 1000명과 응답하지 않은 9000명의 차이를 알 수가 없다. 나머지 9000명의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인종이 다양하고 소득 격차가 큰 미국과 달리 비교적 동질한 집단이어서 지금 같은 방식이라도 응답률만 높으면 비슷하게 맞는다고 본다. 무작위 추출은 통계학적으로 맞는 방식이다.”

- 최근 이 교수가 운영하는 ‘이영작 TV’에서 여론조사 기관들이 무작위 조사라고 해놓고 별도의 풀(pool)을 활용해 조사를 하는 의혹이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문제를 지적한 것인가. “요즘 같은 때 언론사 의뢰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를 하면 여론조사 기관들이 시간에 쫓긴다. 마감시간이 다 됐는데 샘플 1000명 중 200명의 답이 남았다면 다시 무작위로 2000명한테 전화를 걸어야 겨우 답을 얻는 상황에 몰린다. 이때 시간이 없으니까 여론조사 기관들이 자기들이 확보해 놓은 온라인 풀(pool)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풀을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 지금 공표되는 여론조사들은 선관위를 통해 조사방식 등을 다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무작위라고 해놓고 별도 풀을 활용해 조사했다면 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 아닌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있나. “무작위라고 해놓고 별도 풀을 활용한 것을 알리지 않으면 불법이다. 하지만 내가 제시할 근거는 없고 나도 들은 말이다. 어떤 회사가 그렇게 하는지 모른다.”

- 아까 샘플링 팩터 중 학력 변수를 얘기했는데 지금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이념적으로도 편향돼 있다고 보나. “그렇다. 우리 사회는 보수 4, 진보 4, 중도 2의 이념 지형을 줄곧 유지해오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여론조사에서 진보 성향의 응답자가 이것보다 두 배는 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칸타퍼블릭이 지난 4월 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0%나 나왔지만 지지율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6.3%로 안철수 후보(31.0%)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보수층이 많이 응답한 조사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1위가 나온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진보층도 많이 찬성한다. 묘한 것이 사드 배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물으면 늘 찬성이 많게 나온다. 그런데 만약 ‘문재인 후보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지만 정권교체를 원한다. 사드 배치 반대와 정권교체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로 물으면 어떨까.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답이 많을 것이다. 지난 총선 때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결국 새누리당이 비례정당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답이 많았다. 우파 집권 10년을 맞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의식 속에 정권교체가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이다. 이건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누구를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답이 많다는 걸 문재인 후보 지지로 볼 수는 없다.”

- ‘샤이 보수’가 있다고 보나. “샤이 보수는 내가 직접 경험을 했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김대중 대통령이 부탁해서 선거전략을 세워준 적이 있다. 그때 서울시민 300명의 샘플을 면접조사했는데 조사 결과 조순 20%, 박찬종 30%, 정원식 10%가 나왔다. 그때 내가 조사와 달리 실제 투표를 하면 정원식이 최소 20%가 나오는 게 확실하다고 얘기했는데 투표 결과 22%가 나왔다. 직접 조사를 해보면 샤이 보수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사일런트 머조리티(Silent Majority·침묵의 다수)’가 확실히 드러난 게 1987년 대선이다. 그때 나를 포함해 노태우가 당선될 것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 이념 지형이 4 대 4 대 2를 유지한다고 전제하면 이번 대선의 승부를 어떻게 예측하나. “지금의 여론조사가 진보층으로 기울어진 샘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60~70%가 나와야 진짜 지금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40%에도 못 미치고 있지 않나. 나는 문재인 후보의 진짜 지지율이 27~30%에 갇혀 있다고 본다.”

- 뜻밖인데, 왜 그런가. “호남 유권자가 수도권을 합해 전체 유권자의 20% 정도 차지한다. 이 중 절반을 안철수 후보가 가져갔을 것이다. 즉 전통적인 진보층 40% 중 10%는 안철수 후보에게 가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후보는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머지 30% 진보층의 지지에만 갇혀 있다고 봐야 한다.”

- 그럼 나머지 70%를 놓고 승부가 벌어진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안철수·홍준표 후보가 70%를 어떻게 나눠 가지느냐가 승패를 가른다고 본다. 중요한 것이 중도층 20%는 진보 후보에게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때도 그렇고 결국 3당으로 간다. 안철수 후보는 이 중도층 20%에다가 호남 진보층 10%를 얹어 30%를 확보한 셈이다. 만약 40%의 보수층 중 10%만 가져가도 이긴다. 반대로 홍준표 후보가 우파 결집을 해낼 수 있으면 홍 후보가 이긴다. 나는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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