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모범극 ‘기습 백호단’
혁명모범극 ‘기습 백호단’

중국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기관지 ‘중국청년보’는 지난 4월 19일 ‘미국이 위세를 가하자 왜 한국이 공황상태에 빠지고, 조선은 조용한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필자는 저장(浙江)대학 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겸 사회과학원 조선반도 문제 전문가 리둔추(李敦球).

“조선반도(한반도)에 긴장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전략 역량이 조선(북한)에 대한 무력공격 태세를 갖추자 조선은 기이하게도 조용한데 한국 사회에 공황상태가 나타난 점이다. 한국에서는 전쟁을 걱정하는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4월 11일 기자들에게 ‘미국은 우리와 의논 없이 새로운 정책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분명히 약속했다’고 말했다.”

리둔추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이 ‘미국이 과거에도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 위협을 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으며, 현재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위세도 한국의 동의 없이는 실제 무력공격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글을 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4월 13일 SBS와 기자협회가 공동 주관한 5대 정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온 후보들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못하도록 할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답을 했다고 전했다. 리둔추는 “한국은 평상시에는 조선에 대해 강경한 말을 쏟아놓으면서도 실제로 전쟁위기가 닥치자 막상 무서워하는 것은 한국 측”이라고 비꼬았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반응은 한국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생산활동도 정상이었고, 거리의 질서는 정연했으며, 지도층은 각종 활동에 공개적으로 참석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성렬 외무성 부상은 AP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해 올 경우 평양도 팔짱을 낀 채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40분간의 인터뷰 내내 평온하고 안정된 자세를 보여주었다고 리둔추는 전했다.

평소에도 한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글을 자주 쓰는 리둔추가 아니더라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계기로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이래 중국에서는 요즘 ‘한국 때리기’가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한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그려진 한국군의 모습이 실제 한국군의 모습인가를 놓고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한바탕 댓글 달기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 진정 한국군의 모습인가. 중국 관중들의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은 분열되어 있다. 노령의 중국인들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한국 군대의 모습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 기간의 혁명모범극 ‘기습 백호단(白虎團)’에서 나온 이승만 군대의 모습이다. 조선전쟁 기간 중 한국군은 우리 인민지원군의 공격에 ‘낙화유수(落花流水)’처럼 나가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젊은 한류 팬들에게는 한국군의 형상이 과장되게 그려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의 혁명모범극 ‘기습 백호단’이란 6·25전쟁에서 한국군 전투부대 중 개전 후 28개월 동안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을 정도로 가장 잘 싸우던 백호부대를, 자기네들의 영웅적 군인 양위차이(楊育才)가 소규모 분대를 이끌고 후방기습을 통해 완전히 무너뜨린 영웅담을 그린 것이다. 미군이 한국군 부대 가운데 ‘킹카드(King Card)’로 부르던 백호부대를 인민지원군이 ‘상가견(喪家犬·상갓집 개)’처럼 만들었다는 연극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4개월 만인 10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침입한 ‘중공군’들 앞에 나타난 한국 군인들의 모습은 한심한 상태였던 것으로 그려져 있다. 군사 전문가들이 만든 블로그 ‘사해연운(史海烟云)’에 소개된 한국전쟁 당시 한국 군대의 모습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의 모습이었다.

“한국군 병사들은 우선 나이가 어린 데다가 대부분 열흘 정도의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터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전쟁 후반으로 가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고급 장교라고 해야 30세 안팎의 나이였고, 상관의 명령 없이는 지뢰밭을 반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데다가 ‘체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장교들도 자신들의 체면을 깎아내릴 보고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투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한국군 부대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경제 사정을 반영하듯 급식 수준이 형편없어서 대부분 소금물에 절인 콩나물이 반찬의 전부였고 짠지는 물론 고추도 없어서 미군에 포로로 붙잡힌 중공군 병사들보다 못한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게 된 밴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에 직접 건의를 해서 나중에 일본으로부터 된장에 절인 반찬과 절인 생선, 육류 통조림을 사오게 된 것으로 중공군 참전군인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중국 군사 전문가 블로그는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양잿물을 탄 물을 마시고 취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미군과 우리 한국군의 기관총 탄환이 떨어져 후퇴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 측 사진 기록에 남아 있는 중공군들의 옷차림은 솜을 넣은 방한복을 잘 차려입은 모습인 데다가 영양상태도 우리 국군보다 나았던 것으로 보인다.

되돌아보면 612년의 살수대첩과 645년의 안시성전투에서 중국대륙에서 침공해온 군대를 격퇴시킨 고구려와 1010년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의 영웅적 전투 이후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승전보는 없는 것이 우리의 딱한 전쟁사다.

지금도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반대한다며 우리의 주권을 무시하는 농단을 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 후보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하려고 하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중단시킬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안보관을 말하고 있으니, 중국의 한국 전문가들에게 실소(失笑)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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