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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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판기’. 한 중앙 일간지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에게 붙인 별명이다. 4차례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유 후보는 발군의 존재감을 보였다. 질문은 거침이 없었고,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표정과 손짓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토론회에 나온 후보 5명 중 남성 후보 4명은 모두 무뚝뚝하고 말주변이 없다는 평을 듣는 경상도 출신. 주변에서는 “유승민이 경상도 맞나”란 평가까지 나왔다. 그의 예리한 질문에 과거 한솥밥을 먹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진드기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럼에도 그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조차 뒤지는 결과까지 나왔다. 그 결과 바른정당은 지난 4월 24일 저녁 의원총회를 열어 ‘후보 사퇴’ 논의도 공론화했다. 지금껏 4차례의 TV토론에서 의기양양했던 그의 모습과 달리 4월 25일 새벽 의원총회장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어깨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유승민 후보는 대선레이스 완주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 바른정당 심야 의총 여진이 계속된다. 중도사퇴 가능성은. “사퇴 가능성은 없다. 정당이 사퇴를 결정할 방법이 없다. 당헌당규상 대선후보를 선출하면 당이 나서 후보를 바꿀 방법이 없다. 내가 스스로 그만둘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홍준표 후보처럼 도덕적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선거운동 한창 하고 있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흔드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 반문(反文) 보수 대결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격이 없는 홍준표 후보가 그만두면 자연스럽게 단일화되지 않겠나.”

- 홍준표 후보와 연대를 못 하는 까닭은. “막말이나 꼼수를 차치하고서도 홍준표 후보는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피고인이다. 본인 스스로 밝힌 과거의 잘못도 있다. 단일화는 서로 간에 ‘당신이 대통령이 돼도 좋다’란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에게는 그런 전제가 성립이 안 된다.”

- 안철수 후보와 연대를 못 하는 까닭은. “작년부터 누차 박지원 대표와 햇볕정책을 추종하는 호남 의원들에 대해 얘기를 해왔다. 박지원 대표가 있는 한은 곤란하다. 그쪽 사람들과 남북관계, 사드(THAAD), 한·미, 한·중 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지금은 외교안보가 중요한 때다. 바른정당이 표방하는 철학과 너무나 다른데, 연대는 곧 바른정당의 외교안보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되는 데 실패해도 야당으로서 햇볕정책이나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행동을 견제해야 한다.”

- 박지원 대표가 ‘2선 후퇴’ 카드를 꺼낼 경우는. “상왕(上王)이니까 2선 후퇴해도 상왕이다.”

- 완주한다고 해도 당선이 쉽지 않다. “안철수 후보 지지도가 오른 것이 며칠 됐나. 그전까지 무슨 큰 차이가 있었나. 지금부터도 한 2주 남았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 수치를 100% 믿지 않는다. 실제로 다녀보니 밑바닥 민심은 많이 다르다.”

- TV토론 성적으로는 1등이다. 비결은. “평소 생각 그대로 한다. 17년간 정치하면서 정치인 중 나만큼 종합적으로 정책을 다뤄 본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에 들어올 때부터 여의도연구소장을 했고, 2002년과 2007년 대선 두 번을 제 손으로 직접 공약을 만들었다.”

- 문재인 후보 측이 북한 인권표결과 관련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고발했다. “송민순 수첩과 안종범 수첩이 무엇이 다른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검찰이 채택한 핵심증거가 안종범 수첩과 정호성 녹음파일이다. 송민순 수첩이란 것도 이 사람이 조작한 것이 아니다. 외교부 장관 할 때 직접 봤던 것을 얘기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골탕 먹이거나, 조작할 의도가 없다. 당시 메모, 청와대 문건을 믿는다면 문재인 후보가 비서실장일 때 북한 김정일에게 물어보고 북한의 뜻을 확인해 본 것이다. 내 느낌에는 문재인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대선 전에 국정원, 외교부, 청와대 자료를 다 꺼내놓고 옥석을 가렸으면 좋겠다. 물론 민주당이 보이콧하지 않겠나. 형사고발이 들어간 만큼 검찰이 고발인, 피고발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질 수밖에 없다. 대선이 끝나면 누가 야당이 될지 모르지만, 국정조사 요구를 하지 않겠나. 국정원장이 지금이라도 결정적 자료가 있으면 내놓아야 한다. 국가기밀이라면 국회의원들이 보안서약을 하고 열람하는 방법도 있다. 문재인과 송민순 중 누가 진실인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여론조사 1위 후보의 도덕성과 관련한 문제인 만큼 공개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더 큰 이득이다.”

- 문재인 후보 측이 펴는 ‘색깔론’에 대한 입장은. “그 사람들은 자기 곤란하면 항상 얘기하는 것이 ‘색깔론’과 ‘이명박·박근혜 정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성은 전혀 안 한다.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점도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한에 현금과 현물 갖다준 것, 그것도 불법으로 준 것이 더 잘못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다.”

-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기존 ‘한반도 비핵화 합의’와 배치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전배치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한 혼자 비핵화 합의를 고집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다. 전술핵 배치를 하되 사드처럼 굳이 전 세계 언론에 낱낱이 공개할 것이 없다. 무엇이 들어오든지 ‘NCND(시인도 부인도 안 함)’로 가면 된다.”

- 유 후보가 주장하는 ‘중부담 중복지 증세론’은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기존 보수 입장과 다르다. “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지금 수준의 복지로는 부족하다.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목표를 OECD 평균 정도 하면 되는데 돈이 있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할 수도 있지만 이는 후세에 부담이다. 그래서 나는 세금을 걷자는 입장이다. 우리 조세부담률이 19%쯤 되는데, 이를 OECD 평균인 26% 정도로 올리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매년 0.5%씩 올릴 것이다. 2021년쯤 되면 21.5% 정도 될 것이다. 그래도 OECD 평균보다 한참 밑이다. 그 돈으로 중복지를 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처럼 국민세금으로 공무원 늘리자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 후보 중 유일한 ‘세습정치인’이다. “세습이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상속세 내고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지역구를 물려받았으면 정치를 편하게 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서슬이 시퍼럴 때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가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 핵심실세로 ‘노무현 친구’라는 이강철(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씨가 나왔다. 당시 여론주도층은 지금 말로 “예산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며 이강철을 지지했다. 당시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때인데, 여론조사 결과 지는 것으로 나온 공천 신청자 15명을 다 물리고 비례대표였던 나를 밀어넣었다. 내가 거기 갈 생각은 0.1%도 안 했다. 당시 아버지 지역구에 안 나온다고 서운해 한 사람들도 많았다.”

- 아버지 고(故) 유수호 의원은 어떤 분인가. “아버지는 판사 시절부터 꼿꼿하고 소탈한 분이셨다. 유신정권 눈 밖에 나는 판결을 해서 법관 재임용에 탈락했다. 정치를 두 번만 하고 ‘내 체질이 아니다’라며, 당선 가능성이 100%였음에도 불출마했다. 나한테는 ‘자리 욕심 내지 말고, 의협심을 가져라’고 말씀하셨다.”

- 딸 유담씨가 유명해졌는데 자녀들한테 정치를 권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본인이 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권할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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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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