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부발전이 미국 네바다주에서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 ⓒphoto 한국중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이 미국 네바다주에서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 ⓒphoto 한국중부발전

대선후보들의 에너지 분야 공약을 두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은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인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두 종류의 발전소에 사용되는 에너지원을 통해 공급되는 발전전력량이 전체의 70%에 달한다는 점이다. 전기요금 인상 등 실질적 대안을 밝히지 않은 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공약만 하는 것은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주요 대선후보들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원전 비중을 줄인다는 점에서 합일점에 도달해 있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4월 22일 ‘대한민국 6대 에너지 정책’이라는 에너지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이 공약의 핵심은 원전과 석탄화력의 발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높인다는 것이다. 문 후보의 목표는 40년 내로 국내 모든 원전을 없애는 것이다. 그는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고 월성1호기를 폐쇄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 후보도 문 후보처럼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을 중지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중단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완전히 원전을 없앤다는 공약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 후보와의 차이점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원전 관련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더욱 강경하다. 204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원전 비중을 축소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원전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겠다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정도가 가장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1년 일어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과 관련한 국민의 불안은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이 기름을 부었다.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해 경상남북도에는 10여호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원전 비중 줄인다”

주요 대선후보들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아직 착공되지 않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지목해 착공을 보류하거나 백지화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4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며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 중 공정률 10% 미만인 9기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문 후보는 이날 충남 서천·당진, 강원 강릉·고성에 들어설 석탄화력발전소 9기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폐지 가능성을 거론했다.

앞서 지난 4월 8일 안 후보도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당진, 삼척 등 착공되지 않은 석탄화력발전소 4기를 거명해 “친환경 발전소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석탄발전 쿼터제,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등의 공약도 내세웠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최근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대선후보들이 환경 분야 공약을 내세울 때 포함되는 단골 요소다. 지난해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충남지역 발전소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이 수도권 미세먼지(PM10) 1일 평균 농도에 미치는 영향은 최대 21%, 초미세먼지로 불리는 PM2.5에 미치는 영향은 최대 28%였다. 미세먼지 발생 주범으로 흔히 꼽히는 경유차 등 도로이동 오염원이 1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비중이다.

현 정부의 석탄화력발전소 발전정책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심각성을 인식해 설립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석탄발전소 10기의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2015년 수립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29년까지 석탄발전소 20개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석탄 비중도 줄인다”

문제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우리나라 발전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한전이 매월 발표하는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전력량 중 원전이 차지한 비율은 전체의 27.2%였다. 석탄화력발전으로 얻어지는 전력량은 전체의 41.8%에 달했다. 전체 발전전력량에서 두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합하면 70%에 육박한다. 신재생에너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원자력과 석탄 두 에너지원은 발전 원가가 싸다. 원자력의 발전 원가(가동률 80% 기준)는 1㎾h당 50원 수준이다. 다음이 60원대인 석탄이다. 110원을 넘는 LNG나 석유에 비해 훨씬 싸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 해 동안 두 에너지원의 발전전력량은 제로섬 관계를 보여왔다. 원자력의 경우 지난해 2월에 비해 올 2월 12.7%가 줄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석탄은 15.3%가 늘었다. 경주 지진 등으로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원자력 발전량을 줄인 반면 석탄을 통한 발전량을 늘린 탓이다.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는 인천 영흥풍력단지. ⓒphoto 김기홍 조선일보 기자
한국남동발전이 운영하는 인천 영흥풍력단지. ⓒphoto 김기홍 조선일보 기자

전기요금 인상은 나 몰라라

주요 대선후보들이 원전,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중을 줄이는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이다. 사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내용은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친화적 에너지 안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환경친화적 에너지 보급 확대에 힘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은 원전을 2014년 23기에서 39기로 대폭 늘리는 장기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는 모두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전체 전력량의 20%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심상정 후보는 204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홍준표 후보는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에너지 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제4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현 정부는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3.4%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현실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원자력이나 석탄에 비해 연료 효율이 낮다.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요해 시설 확충에 소요되는 재원도 막대하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필요한 재원이 200조원에 달한다고 했다. 현재 국내 발전전력량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월 기준 4.8%다. 그나마도 이 중 80% 이상이 폐기물 소각이나 목재 같은 바이오 연료를 태워서 얻는 것이라 태양광, 풍력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재생에너지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현 단계에서 원자력과 석탄의 대안으로 꼽히는 에너지원은 LNG다. LNG발전량을 늘려 신재생에너지로 가기 전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NG발전은 석탄화력발전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수준이다. 원전처럼 방사능 누출 우려도 없다. 현재 원료 수급도 안정적이다. 지난해 석탄발전과 LNG발전의 원료 도매가격 차이는 역대 최저치인 22.0원이었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유가와 연동된 LNG의 가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LNG는 지난 2월 기준 발전전력량 전체의 21.7%를 차지하고 있다.

LNG의 설비용량은 현재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현재 전국의 LNG발전 설비용량은 약 32GW, 석탄은 약 31GW로 LNG가 오히려 높다. 하지만 실제 발전량은 석탄이 2배에 가깝다. LNG 설비 가동률이 40% 수준에 머무르는 반면 석탄화력발전소의 설비 가동률은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가동률을 60%까지 올리면 전기를 공급하는 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대학원장은 “가동도 한 번 못하고 매물로 나오는 발전소가 있을 정도로 LNG발전소의 가동률은 낮은 상태”라며 “원료 수급에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석탄발전량을 줄이더라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LNG의 경우 연료비가 원자력과 석탄에 비해 비싸다는 점이다. 특히 LNG 가격은 유가와 연동돼 있다. 유가가 급격히 올라가면 그 영향으로 LNG를 이용한 발전 원가도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다만 미국, 캐나다의 셰일가스 등으로 인해 유가가 상당 기간 안정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 LNG 가격이 급등할 요인은 많지 않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LNG·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따르는 전기요금 인상 문제는 결국 피할 수 없는 현안이다. 현재까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 측이 유일하다. 심 후보 측 김제남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4월 13일 ‘대선캠프 초청 에너지·기후정책 토론회’에서 “국가 및 지역 에너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의 환경에너지 정책팀장을 맡고 있는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같은 토론회에서 “2030년 원자력발전 비중을 18%로 줄이고 LNG발전을 37%로 늘리는 것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현재보다 전기료가 20~2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원전이나 석탄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국민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전기요금 인상 관련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 측은 전기요금 인상 방안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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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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