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완공을 앞둔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 7017’. ⓒphoto 뉴시스
5월 20일 완공을 앞둔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 7017’. ⓒphoto 뉴시스

서울특별시에 고가공원이 문을 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이 고가공원은 서울 중구 만리동광장에서 서울역을 잇는 ‘서울역 고가도로’에 설치된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1970년 8월 15일에 개통된 서울역 북쪽의 왕복 2차선 고가도로로 퇴계로와 만리재로, 청파로(청파동→퇴계로, 퇴계로→중림동)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다. 그런데 이 고가도로가 노후화하여 안전진단에서 위험등급을 받게 되자 박원순 시장은 2014년 선거 당시 공약으로 서울역 고가도로를 없애는 대신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처럼 공원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공원화 공사는 2015년 12월 시작되었으며 5월 20일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고가공원의 길이는 1024m. 정식명칭은 ‘서울로 7017’. 1970년에 건설된 고가도로가 2017년에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한다. 총사업비 597억원이 소요된 ‘서울로 7017’은 5월 20일 개장하며, 6월까지 약 한 달 동안 20여개의 축제 및 문화프로그램이 펼쳐진다고 한다.

서울시는 고가공원에 645개의 화분을 설치, 228종(種) 식물 등 모두 2만4000여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화분이 큰 것은 지름이 4.8m나 된다. 이 때문에 고가공원에는 사람들 네댓 명이 나란히 걷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구간도 있다고 한다. 고가공원에는 111개의 ‘통합 폴(pole)’도 설치되었다. 4m 높이의 이 기둥들은 해가 지면 주변을 LED 조명으로 비춘다. 또 관광안내소, 카페, 도서관 등 편의시설과 2개 소광장이 들어서며, 전망 발코니도 3곳에 설치된다. 일부 구간은 옛 서울역 경관 보존을 위해 차도였을 때 모습을 남겨놓았다. 서울시는 동시 보행 인원을 5000명으로 제한해 인원이 차면 안내요원이 진입을 통제할 예정이며 노숙인들이 공원을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비인력도 투입한다고 한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과 비교되면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대권을 꿈꾸는 박원순 시장이 업적과시용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대문시장 일대의 영세상인들은 서울역고가도로가 폐쇄되면서 매출이 감소하여 생업에 지장을 준다며 격렬히 반대하였다. 이들 상인들은 현재 대체도로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또 고가도로가 없기 때문에 마포에서 시내로 차를 몰고 나가려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뺑뺑 돌아가야 한다. 길이 막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박원순 시장이 공언한 대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같은 휼륭한 공원이 서울시 한복판에 생긴다면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서울역 고가공원의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 깨끗하게 정리된 콘크리트 바닥에 거대한 화분들이 설치된 고가공원의 모습을 보고 약간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이 사업의 모태가 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가 주는 편안함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과거 화물운송기차가 다니던 웨스트사이드의 22개 블록에 걸쳐 있는 버려진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개발한 것. 지상 9m 높이에 총 길이는 2.33㎞.

원래 이 철도는 1930년에 건설되었다. 맨해튼 중심의 도로를 오가는 화물운송으로 교통사고가 빈발하자 고가철도를 건설한 것.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고가철도의 쓰임새도 줄어들어 1980년 냉동 칠면조 고기 운반을 마지막으로 화물 기차의 통행도 중단되었다.

주변에 땅을 소유한 지주들은 당연히 이 고가철도를 철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개발하려 한 사람들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공원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뉴욕시 당국도 공원화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2001년 발생한 9·11테러 이후 침체된 뉴욕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목적으로 시예산에서 5000만달러를 지원하였다. 굉장한 돈 같지만 길이가 하이라인 파크의 절반도 안 되는 서울역 고가공원사업에는 이와 비슷한 597억원이 투입되었다.

하이라인 파크 건설을 주관한 하이라인의 친구들과 뉴욕시 당국은 2003년부터 공원설계안을 국제적으로 공모하였다. 이 공모에는 전 세계 36개국에서 720개 팀이 참가하였다. 다음 해 11월 결국 미국의 제임스 코너 설계(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와 딜러 스코피도+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사가 맡게 되었으며, 2009년 처음 개장하였다. 최종적으로 완공된 것은 10년 만인 2014년.

하이라인 파크는 2009년 개장 이래 창의적인 건축설계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 세계 도시에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서울시 이전에도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등이 이를 모방한 고가공원 건설을 계획하였다. 하이라인을 설계한 건축가들도 사람들의 호응에 놀랄 정도. 당초 하이라인 파크에는 한 해 평균 30만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요즘에는 600만명이 찾는다. 뉴욕에서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도록 설계된 곳이 아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느릿느릿하게 걷거나, 조망이 좋은 곳에 앉거나 누워서 쉴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인 뉴욕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 공원을 걸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 상반된 경험을 하였다.

하나는 뉴욕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이라인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한쪽에는 허드슨강이 흐른다. 반대편에는 멀리 우뚝우뚝 서 있는 마천루들을 바라볼 수 있다. 조망이 훌륭한 곳에 설치된 벤치들에 앉아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도 있다. 도로 위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서는 바삐바삐 지나는 자동차들의 흐름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과거 제조업체들이 많았던 첼시지구 구시가의 벽돌 건물들도 바라볼 수 있으며, 주변 건물들의 벽이나 옥상에 그려진 재미있는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 파크. ⓒphoto www.fieldoperation.net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 파크. ⓒphoto www.fieldoperation.net

빌딩 사이 자연을 살려내다

다른 하나는 하이라인은 뉴욕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안식을 준다. 하이라인이 주는 안식은 센트럴파크가 주는 안식과는 다르다는 느낌이다. 센트럴파크가 주는 안식이 현실적이라면 하이라인은 약간 판타지적인 안식을 준다는 생각이다.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공원이다. 호수도 있고 잔디밭도 있고 언덕도 있다. 워낙 넓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공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이라인에는 호수도 잔디도 언덕도 없다. 주위에 있는 식물들이라 봐야 대개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잡초들 같다.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보행로에는 나무판들이 깔려 있고 녹슨 철로도 그대로 있다. 하지만 친근한 자연을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공중에 떠 있기 때문일까. 뉴욕의 한복판에 설치된 인공의 공원에서 이렇듯 따듯한 자연을 느낀다는 게 다소 초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일본의 장르소설에 자주 나오는 환상세계로 빠져 나가는 관문을 통과한 것 같기도 하다.

현대 뉴욕을 이루는 요소인 마천루와 허드슨강,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안식을 주는 따뜻함의 조화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하이라인 설계자들이 이루어 놓은 개가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하이라인의 설계를 담당했던 제임스 코너 필드오퍼레이션이 발표한 설계 취지의 주요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하이라인은 한때 생생하게 요동치던 도시기반시설이었다. 그런데 자연이 다시 살아나며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설계팀의 목표는 산업수송로를 후기산업사회에 사람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재단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략은 식물과 건축을 합성하는 것(agri-tecture)이다. 이러한 전략은 식물과 보행자들이 만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생명체와 건축자재를 합성한다. 이를 통하여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 그리고 친밀한 것과 탈사회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이라인은 단순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 와본 사람들은 느림, 안식, 그리고 기이하고 야성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비현실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하에 바닥을 새로 깔고 식물도 새로 심었다. 이를 통해 많이 사용되던 구역(100% 하드(hard))에 식물을 풍부하게 심어 식물구역(100% 소프트(soft))으로 전환하였다.”

설계를 담당한 리카르도 스코피디오는 2014년 11월 인터넷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이라인 설계를 시작할 때 ‘우리의 임무는 하이라인을 주변 건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팀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하이라인을 건축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이라인은 건축이라는 개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스코피디오는 다른 도시들이 하이라인 같은 건축물들을 계획하는 것과 관련 “사람들이 하이라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다들 건축물들이 너무 많다”고 경고한다. 그는 “하이라인은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며 “하이라인은 사실 그곳에 있었던 것들이 아주 조용하게 자라나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려진 철로를 개발해 만든 하이라인 파크. ⓒphoto www.fieldoperation.net
버려진 철로를 개발해 만든 하이라인 파크. ⓒphoto www.fieldoperation.net

“그곳에는 이미 모든 것이 있었다”

함께 설계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딜러도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곳은 폐허였으며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우리의 할 일은 오직 그러한 폐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가장 큰 일은 뭔가를 헤집어놓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이미 모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하이라인이 주는 환상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인공 건축물들 틈바구니에서 자라나는 식물들만으로도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놀라웠다. 다시 말해 현대 최고의 건축가들의 설계 콘셉트가 폐허가 된 철길에 우거진 잡초들을 잘 자라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건축설계자들의 이러한 겸손한 생각 때문에 번잡한 도시 뉴욕을 걷다가 하이라인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안식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울역 고가공원에는 시멘트 바닥에 645개의 거대한 화분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화분들 안에 2만4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설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거대한 아파트 베란다를 보는 듯하다. 건설 과정도 하이라인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반면 서울역 고가공원은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 같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서울역 고가공원의 명칭 ‘서울로 7017’은 1970년에 건설된 고가도로가 2017년에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설계나 건설 과정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과거 개발연대의 불도저행정을 연상시킨다. 참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모습의 서울역 고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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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인터넷뉴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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