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정비사가 F-15E 전투기에 B61-12 전술핵폭탄을 탑재하고 있다. B61-12는 주한미군에 전술핵이 전개될 경우 배치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핵폭탄이다. 2020년 실전배치 예정이다. ⓒphoto 유튜브
항공기 정비사가 F-15E 전투기에 B61-12 전술핵폭탄을 탑재하고 있다. B61-12는 주한미군에 전술핵이 전개될 경우 배치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핵폭탄이다. 2020년 실전배치 예정이다. ⓒphoto 유튜브

“핵우산이라는 게 얼마나 찢어진 우산이냐 하면요, 우리가 공격받고 나면 미국이 북한을 핵 공격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려요. 전술핵은 공포의 균형입니다.”(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북한의 핵은 전략핵인데 전술핵을 갖고 공포의 균형을 이야기하세요? 기본적인 이해 자체가 안 돼 있는 것 아닙니까.”(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지난 4월 25일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제4차 토론에서 두 대선후보가 벌인 설전의 내용이다. 당시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토론은 시간 제한의 압박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싼 한반도 갈등 국면이 지속되면서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5차까지 이어진 북한의 핵실험에 “필요 시 한국과 일본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불가능성이 더해진 결과다.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는 다르다. 먼저 독자 핵무장론(論)을 보자. 독자 핵무장을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 제한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관련 협정을 개정해 핵무기 연구를 막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간 원자력협정을 대폭 개정해야 하는데, 미국과 국제사회의 예상되는 반대를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반면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미국이 보유한 전술핵을 주한미군 부대에 배치하는 것이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비하면 현실성이 높은 방안이다.

전술핵 재배치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략핵과 전술핵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략핵무기는 흔히 ‘핵전력의 삼각축(Nuclear Triad)’으로 불리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 탑재 폭격기를 일컫는다. 적국(敵國)의 산업·수송·경제 기반을 파괴해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전술핵은 전장에서 적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핵무기를 말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폭탄, 단거리 미사일, 포탄, 지뢰, 어뢰, 핵배낭과 같은 모든 핵무기가 포함된다.

전략핵과 전술핵은 파괴력으로도 분류가 된다. 전략핵무기의 파괴력은 보통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0배 이상으로 분류된다. 반면 전술핵은 전략핵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의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를 적 수뇌부나 핵 실험장 등 주요 시설에 투하해 정밀타격하는 무기다.

전술핵과 전략핵은 현재 엄밀히 구분되는 개념은 아니다. 모든 핵무기는 전략적인 효과를 내기 때문에 사실상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핵무기는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일단 사용하는 순간 본격적인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점에서 전장의 특정 지역만 타격하는 전술핵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전술핵이라고 해도 위력은 최소 0.1kt에서 수백kt(1kt은 TNT폭약 1000t의 위력에 해당)에 달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16kt 원자폭탄이 14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파괴력이다.

핵전략 이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이른바 ‘공포의 균형’론이다. 19세기 말 처음 제시된 이 이론은 서로가 상대방을 전멸시킬 능력을 보유한 경우 생기는 공포로 인해 균형이 유지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적대적인 양국의 핵무기가 역설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통제한다는 설명이다. 1960년대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균형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이다. 상호확증파괴(MAD)라는 용어와도 일맥상통한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도 여기에 있다. 현장에 핵이 있을 때 억제 효과가 높아지는 만큼, 한국에 핵이 있으면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억제는 심리적 효과에서 오기 때문에, 북한이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 재배치의 논리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방안에 비해 훨씬 안전하면서도 억제 효과가 높은 방안”이라며 “유사시 전술핵을 투발하는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억제 효과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략핵과 전술핵

대선후보들의 외교·안보 분야 토론에서 드러난 쟁점 중 하나가 “전술핵으로 전략핵 상대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냐”는 점이었다. 정의당 외교안보본부장인 김종대 의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술핵으로는 전략핵을 상대로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소형 전술핵으로 전략핵을 맞상대할 수 없다’는 심상정 후보의 말과 같다.

하지만 정의당의 이러한 주장은 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정의당 측의 발언이 오히려 군사학적으로 무지한 발언”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술핵만 있어도 충분히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전략핵과 전술핵은 목표와 목적이 다르다. 사거리 1만㎞씩 되는 핵무기는 우리가 가질 필요가 없다. 북한은 미국 서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상징성에서 전략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핵은 실제로 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서로 쏘지 못하도록 억제력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전술핵만 배치해도 충분히 공포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한때 주한미군 핵탄두 650개 이상

전술핵은 과거 주한미군에 배치됐었다. 1958년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 8군 산하의 7사단은 핵전쟁에 대비한 펜토믹사단(Pentomic Division)으로 개편됐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에 전술핵무기가 들어왔다. 당시 미군은 전술핵무기 발사가 가능한 어니스트존 로켓 중대와 마타도어 크루즈 미사일 1개 비행중대를 주한미군에 배치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950여기에 달할 정도로 전술핵무기의 숫자와 종류는 다양화됐다.

1991년 남북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타결하면서 주한미군에 있던 전술핵은 철수됐다. 1991년 9월, 당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소련 붕괴 이후 전 세계적 핵무기 감축을 위해 한반도에 전개된 전술핵 철수를 발표했다. 같은 해 한국에 전개됐던 전술핵무기들이 철수되면서 실제로 주한미군에 전술핵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5년 후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하면서 전술핵 재배치론이 대두됐다.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주장은 이후 북한의 핵실험 때마다 반복돼왔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한 후인 2016년 2월, 원유철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려면 한·미 정부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전술핵무기는 미국 소유이기 때문에 전술핵 재배치 관련 결정은 미국의 의견이 우선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때부터 ‘핵 없는 세상’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반면 2016년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반도와 일본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안을 외교·안보 분야 공약으로 내세웠다.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지금은 예전과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4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국가안보팀 회의에서 북핵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함으로써 극적 경고(dramatic warning) 효과를 내는 방안”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북핵에 대응하는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자극받아 국내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미국도 공식적으로는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 정부의 최근 입장은 지난 4월 16일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측의 발언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동행한 백악관의 한 외교정책 보좌관은 기내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면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면서 “현재 (전술핵 재배치는) 계획에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의지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은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서 찬반이 갈린다. 보수 성향 대선후보들은 대체로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수차례 TV토론에서 “전술핵 재배치로 무장을 통한 평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한·미 연합 전력으로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미국의 동맹국이 핵공격 위협에 직면했을 경우 미국 본토 수준의 핵 억제력을 제공하는 ‘확장억제력’ 제공 강화와 전략자산 순환배치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전술핵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 지지율 1위인 문 후보는 TV토론에서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핵폐기를 요구할 명분을 잃게 된다. 미국도 반대하지 않는가”라며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심 후보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는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배치할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상관이 없다. 우리가 직접 핵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보유한 기존의 핵무기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우선 주변국의 반발이 문제다. 전술핵 재배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부른다. 특히 아직까지 핵을 보유하지 않은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명분이 약해진다. 일본은 핵물질 보유량과 처리 기술 면에서 이미 준(準)보유국 수준에 올라 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7월 공개한 ‘일본의 플루토늄 관리 상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47.8t에 달한다. 최대 6000기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1945년 핵무기의 위력을 경험한 일본은 1980년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얻어냈다.

중국의 반발은 더욱 명약관화하다. 국내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면 사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제재를 중국이 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목표가 궁극적으로는 중국이라는 시각도 있다.

1991년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완전히 파기하게 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 선언을 파기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 선언 내용을 준수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및 제재 결의 시에도 이 선언은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전술핵을 재배치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완전히 무력화되고,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재할 명분이 사라진다. 2005년 체결된 9·19 공동성명에도 ‘한국은 영토 내 핵무기 부재를 확인하고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른 불배치 공약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상 가장 넘기 어려운 것은 국내의 ‘반핵 여론’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단체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핵무기가 있으면 핵으로 인한 불안 요소가 늘어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핵무기로 인한 남북의 군비 경쟁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현재까지 보유한 핵탄두의 개수는 20기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20기를 넘는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북한도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핵탄두 개수를 늘리면서 서로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핵무기가 늘어날수록 핵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 이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기에 범위를 넓히면 동북아 지역의 연쇄 핵무장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박휘락 원장은 “냉전시기와 달리 현재는 ‘핵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분을 뛰어넘을 방법이 많지 않다”며 “현재로선 전술핵 재배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술핵을 단순히 배치하기보다는 조건을 다는 등 현실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시적 조건부로 전술핵을 도입해 대북 협상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홍현익 수석연구위원은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며 “핵을 그냥 가져다 놓으면 주변국의 반발이 너무 심해지니 북한을 협상에 나오게 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핵 폐기를 요구하는 협상에서 북한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우리도 재철수한다는 이른바 ‘한시적 조건부 재배치’ 방안이다. 그는 “전략적 유연성만 있으면 우리 정부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말했다. 전술핵을 배치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 있는 현재가 적기라는 설명이다.

전술핵을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에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박휘락 원장은 “일본 본토 내 미군기지에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대안”이라며 “일본이 워낙 가깝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핵을 배치하는 것보다 안전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의 전술핵은 오키나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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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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