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하류 태평만댐 ⓒphoto 바이두
압록강 하류 태평만댐 ⓒphoto 바이두

압록강 하구에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강을 50㎞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태평만(太平灣)댐이 있다. 압록강이 중국 측 지류인 포석하(蒲石河)와 합류하는 지점 위의 물굽이에 들어선 댐이다.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략 1㎞ 남짓의 제방이 압록강을 틀어막고 있다. 댐이 물을 막은 곳에는 한강의 팔당호(36㎢)보다 조금 작은 25㎢ 크기의 인공호수가 형성돼 있다. 태평만댐의 중국 측 하안(河岸)은 국가 4A급 관광지로 지정돼 있어, 주말이면 풍광이 수려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상당하다.

태평만댐의 주요 기능은 각각 북·중 양국의 압록강변 최대 도시인 단둥과 신의주를 여름철 홍수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댐의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발전소 역할도 담당한다. 발전소는 중국 측에 각각 19만㎾급과 15만㎾급 두 곳이 들어서 있는데, 설비용량만 총 34만㎾에 달한다. 설비용량만 놓고 보면 국내 최대 수력발전소인 충주댐(41만㎾)과 비슷한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한 전력은 북한과 중국으로 공동으로 배분되고, 북·중 간 최대 접경도시인 단둥과 신의주의 밤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데 이용된다.

압록강 위에는 태평만댐과 같은 대규모 댐이 네 곳이나 있다. 가장 하류의 태평만댐을 시작으로 수풍댐, 위원댐, 운봉댐 등이다.<지도 참조> 모두 북·중 간 공동으로 운영·관리하는 댐들로, 생산한 전력은 북한과 중국이 절반씩 나눠 가진다. 특히 북한 측 전기는 북한의 산업군수시설을 돌리는 데 사용하거나, 중국으로 되팔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쓰인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유력한 대북 제재방안으로 거론된 북·중 간 송유관(중·조우의수유관)이 북한의 목줄이라면, 압록강 위의 댐 역시 북핵(核)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 공급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목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총발전용량의 16%

실제 이들 압록강 수계의 수력발전소가 북한의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동양 최대 댐이었던 수풍댐이 80만㎾급 발전설비를 갖춘 것을 비롯, 운봉댐 40만㎾, 위원댐 39만㎾, 태평만댐 34만㎾급 발전설비를 갖추고 있다. 압록강 위 4곳의 댐이 국내 최대 남한강 충주댐(41만㎾급)보다 크거나 엇비슷한 발전설비를 갖춘 셈이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이 2016년 작성한 ‘북한·중국 간 수력발전 공동이용 현황’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생산하는 수력 발전용량은 233만㎾에 달한다. 이 중 북한 몫은 절반인 116.5만㎾다. 이는 북한의 총발전용량 724만㎾(추정치)의 약 16%에 해당하는 수치다.

북한은 정권 수립 초부터 자력갱생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 한반도 이북에 많이 매장돼 있어 자체조달이 가능한 석탄이나 강물을 이용한 수력 위주의 발전정책을 세운 것. 특히 북한이 주목한 것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수력이다. 그 핵심인 압록강 수계상의 대형댐은 북·중 간 밀월기 동안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시작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완공 당시 ‘동양(東洋) 최대 댐’으로 불렸던 수풍댐이 끊었다. 평안북도 삭주군과 중국 단둥시 콴덴(寬甸)현 사이에 놓인 수풍댐은 일제가 패망 직전인 1944년 완공한 댐으로 당시 발전용량만 70만㎾에 달했다.

하지만 소련군이 일제 괴뢰정권인 만주국(滿洲國)과 한반도 이북에 진주한 후, 발전기 대부분을 소련으로 뜯어갔다. 6·25전쟁 와중인 1952년에는 미 공군의 폭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일제가 워낙 견고하게 지은 댐이라 폭격에도 살아남았고, 6·25전쟁이 끝난 후인 1958년에는 소련 레닌그라드설계원과 중국의 인력과 자재 등을 지원받아 수풍댐을 완전복구한 뒤 전력을 생산해 북·중 간에 공동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풍댐 재가동식에는 김일성이 직접 참석했다고 한다.

수풍댐 ⓒphoto 바이두
수풍댐 ⓒphoto 바이두

위원댐(중국명 라오후샤오댐)
위원댐(중국명 라오후샤오댐)

현재 80만㎾급으로 증설된 수풍댐 건설·관리 방식은 북·중 간 압록강 수계에 향후 들어선 수력발전소 건설과 관리의 전범이 되었다. 대개 인부들을 동원해 강물을 틀어막는 물막이 공사는 북한 측이 맡고, 발전설비 제공과 송전선 건설은 중국이 맡아 역할을 분담하는 식이다. 수풍댐 모델에 따라 수풍댐 상류에 일제가 짓다가 중단한 운봉댐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착수해 1974년 40만㎾급 규모로 완공했다. 이후 1987년에는 수풍댐 하류에 34만㎾급 태평만댐을 지었고, 1990년에는 수풍댐과 운봉댐의 중간 지점에 39만㎾급 위원댐을 세웠다. 이렇게 건설된 댐을 가동해 생산한 전력은 ‘중·조수력발전공사’(‘압록강수력발전공사’의 후신)라는 북·중 간 합작회사의 관리하에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에는 ‘수주화종(水主火從)’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수력이 주가 되고 화력이 종이 되는 기형적인 발전구조가 들어섰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에너지원별 공급에서 수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8.7%에 달한다. 이는 석탄(45.2%) 다음으로 높은 비중으로, 석유(11.2%)보다도 월등히 높다. 발전설비 용량만 놓고 보면, 수력은 60.1%로, 화력(39.9%)을 압도한다. 이는 남한의 화력(65%), 원자력(34%)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력에 과도하게 의존한 발전정책은 북한 산업 전반에 심각한 부작용도 야기했다. 수력발전의 경우 계절별로 전력 생산량이 들쑥날쑥하고, 갈수기(渴水期)에는 ‘천수답(天水畓)’과 같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위치한 압록강에서 평양과 같은 주요 전력수요처와의 거리가 멀다. 실제 한반도 이북을 동서로 가르는 낭림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두만강에서 일으킨 수력발전에 전력의 대부분을 의존하는데, 송전 과정에서 생기는 전력손실이 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북·중 간 송유관 차단마저 공공연히 거론된 상황에서 수력발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북한은 과거 소련의 지원을 받아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다 구(舊)소련의 붕괴로 인해 무산됐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합의 때 핵동결을 전제로 미국 주도 국제컨소시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이 지어주기로 한 2000MW급 한국형 원전(경수로) 역시 북한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재추진하면서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결국 석유도 끊기고, 원자력마저 안 되는 상태에서 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수력인 셈이다.

운봉댐 위 제방도로
운봉댐 위 제방도로

현재 북·중 간에는 압록강 중류 구간에서 새로운 댐 건설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자강도 만포시 문악동과 중국 측 지린성 지안(集安)시 창촨(長川)촌 사이에 대규모 물막이 공사를 하는 장면을 구글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원댐과 운봉댐의 사이에 있는 지점으로, 2010년 북한과 중국이 만포에서 건설협약을 체결한 문악댐으로 추정된다. 지안시정부 측에 따르면, 문악댐의 총연장은 602m, 발전설비는

4만㎾급이다. 원래 예정인 2013년 완공보다는 많이 늦어졌으나, 강물의 절반 이상을 흙더미로 막은 것으로 볼 때 압록강 위의 새로운 댐 출현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압록강상의 댐들은 북·중 간 밀무역 통로로도 활용된다. 태평만댐을 비롯해 수풍댐, 위원댐, 운봉댐 위의 제방도로는 ‘2류 구안(口岸)’으로 지정돼 있어 북·중 간 자유왕래도 가능하다. 변경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통행증을 가진 중국인은 댐 제방도로를 따라 북한으로 쉽게 건너갈 수 있다. 국제열차가 왕래하는 신의주~단둥, 만포~지안, 남양~투먼 같은 ‘1류 구안’에 비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덜 쏠리는 장점도 있다. 제방도로를 통하면 유엔이 지정한 금수(禁輸)물자의 북한 반입도 용이하다. 국제사회의 물샐틈없는 대북 공조에 앞서 북·중 간 댐에서 물이 새지 않는지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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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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