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는 말씀을 생각합니다.”

지난 5월 2일 열린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한 말이다. 이날 유 후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토론 시간을 아꼈다. 그는 토론 말미(末尾), 남은 시간을 할애해 시청자를 상대로 지지를 호소했다. 유 후보가 작심 발언을 한 건 이날 아침 벌어진 당내 국회의원들의 집단 탈당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김성태·권성동·장제원·홍문표·김재경·김학용·박성중·박순자·여상규·이군현·이진복·홍일표 의원 12명은 이날 탈당계를 내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과 함께 탈당 기자회견에 동참했던 황영철 의원은 비판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탈당계 제출을 보류했다. 5월 3일 현재 바른정당 국회의원 의석수는 원내교섭단체가 가능한 20석이다.

12명의 탈당파는 역풍(逆風)을 맞았다. 탈당파의 명분은 유 후보가 후보단일화 또는 보수통합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온·오프라인에서는 “탈당의 명분이 없다”며 탈당파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자유한국당 소속 다수 친박(親朴) 의원들도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에 제동을 걸었다. 서청원 의원은 이들을 향해 “벼룩도 낯짝이 있다”며 힐난했고, 한선교 의원은 “그들이 복당하면 한국당을 떠나겠다”면서 반발했다. 바른정당 탈당파는 소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왜 유승민 후보를 버리고 떠났을까. 탈당파 일부는 “유 후보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지도, 식사를 함께하지도 않았다. 스킨십을 할 줄 모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에 잔류한 한 국회의원도 “(유 후보가) 동료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정치력이 빵점”이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스킨십이나 동료 의원과의 관계가 곧 정치인 셈인데, 이에 대해 유 후보 측은 “유 후보가 까칠한 점은 있으나 동료 의원들에게 욕먹을 정도로 잘못한 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 후보 측 인사는 “선거운동 기간 후보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그런데 동료 의원이 떼쓰듯 ‘후보가 챙기지 않는다’며 선거운동도 하지 않고 탈당까지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탈당파는 대부분 지난 4월 17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유 후보 지원유세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서울·인천·경기지역을 합친 것보다 면적이 넓은 강원도의 경우 가동 중인 유세차량이 1대에 불과하다. 일부 의원 보좌진은 “대선판에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탈당파 중 일부는 또 “우리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 만들려고 (새누리당에서) 나왔지, 유승민 지원하려고 한 건 아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바른정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보수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몸이라도 던져야 하는데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유 후보가 느꼈을 비통함에 공감한다”고 했다.

유승민 후보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바른정당은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바른정당 잔류파 의원은 “철학이 없는 일부 의원들은 분리수거를 했어야 했는데, 스스로 탈당했다”고 말했다. 유 후보는 12명의 국회의원을 잃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새로운 보수’의 대표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는 적어도 12척의 배(김세연·이혜훈·이학재·박인숙·오신환·유의동·홍철호·지상욱)가 남아 있다. 김영우·김용태·하태경 의원 등도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면서 바른정당 잔류를 선언했다. 마지막 한 척은 국민의 지지가 아닐까.

정도(正道)를 가지 않는 정치인은 유권자의 심판에 앞서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다. 12명의 탈당파를 탈당 전날 만난 홍 후보도 표(票)를 잃게 생겼다. 구태의연한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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