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안신구준비위원회가 입주한 바오딩의 아오웨이국제호텔. ⓒphoto 신화·연합
슝안신구준비위원회가 입주한 바오딩의 아오웨이국제호텔. ⓒphoto 신화·연합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지난 4월 1일 이런 발표를 했다. “시진핑(習近平)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은 중대한 역사적 전략을 선택했으며, 이는 (1980년의) 선전(深圳) 경제특구 건설과 (1990년의)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신구(新區) 건설에 비교될 만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으로, 천년대계(千年大計)의 국가대사(國家大事)라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발표는 현재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직선거리로 100㎞ 남서쪽에 떨어져 있는 허베이(河北)성 슝현(雄縣), 안현(安縣), 룽현(容縣) 일원의 2000㎢ 지역에 베이징의 ‘도시병’을 극복할 수 있는 초현대적 도시를 하나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슝안(雄安)신구(新區)’로 명명된 이 새로운 수도는 시진핑 당 총서기가 “천년대계 국가대사”라고 그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단순히 이 지역에 새로운 베이징의 부도심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베이징과 15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톈진(天津),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를 선언한 바오딩(保定)시가 이루는 정삼각형의 중앙에 인구 2500만명의 베이징이 현재 안고 있는 단점을 극복한 환경친화적이고 첨단 IT시설을 갖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다는 포부다.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이 시작된 1980년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홍콩 바로 옆 인구 3만의 조그만 어촌인 선전에 ‘경제특구(經濟特區)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당과 정부에 내렸다. 1949년에서 시작해서 1976년까지 계속된 마오쩌둥(毛澤東)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장경제를 이식시키기 위해서는 연안지역에 자본주의식 경제운용이 허용된 특별경제구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덩샤오핑은 포르투갈 식민지 마카오 바로 옆에는 주하이(珠海) 경제특구를, 대만섬 건너편에는 샤먼(廈門)과 산터우(汕頭) 경제특구를 건설해서 각각의 교과서(홍콩, 마카오, 대만)를 학습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도시들에는 철조망을 둘러치고, 여권에 해당하는 출입증을 소지한 사람들만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들은 이후 놀라운 발전속도를 과시하며 중국의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도시의 역할을 했다.

덩샤오핑은 다시 1990년에는 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에게 상하이 남북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황푸강(黃浦江) 동쪽 지역 미개발지에 세계 최고의 고층빌딩군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6500㎞ 장강(長江)이 바다와 만나는 상하이에 ‘용의 머리(龍頭)’를 건설하라”는 것이었다. 푸둥 지역은 1992년에 개발을 시작해서 현재는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상하이 푸둥의 고층빌딩군을 보고 중국에 투자를 해서 푸둥 지역은 외국의 FDI(Foreign Direct Investment·외국인직접투자)를 끌어들이는 쇼룸 역할을 하고 있다. 시진핑 현 당 총서기가 슝안신구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선전특구와 푸둥신구에 비교될 만한”이라고 언급한 것은 슝안신구에 건설될 베이징의 새로운 부도심이 부도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실상 새로운 수도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5월 2일 중국 관영 CCTV의 심층 보도프로그램 ‘초점방담(焦點放談)’이 상세하면서도 화려하게 보도한 슝안신구 건설 계획 추진과정에는 톈진시 당서기 출신 장가오리(張高麗) 정치국 상무위원과 쉬쾅디(徐匡迪) 전 상하이 시장의 얼굴만 보일 뿐 정작 보여야 할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당일에도 시진핑 총서기는 바로 뒤따라 입장해서 왼편에 자리 잡고 앉은 리커창 총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귀엣말 한 번 하지 않았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도 으레 그러하듯 경제 조타수인 리커창 총리를 참석시키지 않고 국가주석인 시진핑 본인이 참석하는 모습을 과시했다. 아직 그 내막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시진핑은 새로운 수도 건설에서도 리커창 총리를 배제할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CCTV와 인민일보를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새로운 수도의 건설이 어디까지나 시진핑 동지가 2013년 취임 직후부터 구상해온 웅대한 계획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어 강조하고 있다.

허베이성 슝안신구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현재 추진 중인 베이징-톈진-허베이성 세 지역을 이어 붙여 메가로폴리스를 건설 중인, 이른바 징진지(京津冀) 프로젝트와 맞물려 더욱 원대한 수도권 개발계획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 베이징을 비롯한 3개 도시의 산업군을 합해 거대한 산업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시진핑을 핵심으로 한 중국 지도자들의 구상이다. 슝안신구는 이 징진지 산업클러스터와 조금 떨어진 쾌적한 행정도시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징진지 산업클러스터가 자리 잡을 경우 전 세계가 20~30개 정도의 산업클러스터로 재편될 때 동북아시아의 중심 클러스터가 될 전망이다. 일본에도 1~2개의 산업클러스터가 자리 잡을 전망인데 만약 우리가 수도권을 산업클러스터로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징진지 클러스터에 흡수될 가능성마저 따져봐야 할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분배 위주의 복지 정책이 아니라 획기적 성장 전략이다. 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한반도 남쪽에 산업클러스터 하나 자리 잡지 못할 경우 우리는 자연스레 중국 징진지 클러스터의 일부로 흡수될 가능성마저 예견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과 중국에 맞서 ‘BOP(힘의 균형)’를 맞추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점차 거대한 몸집의 산업클러스터로 변화해가고 있는 징진지 지역의 발전에 맞설 만한 산업클러스터를 우리 수도권에 건설해야 한다는 화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서울에서 원화보다는 위안화가 더 활발하게 유통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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