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57호]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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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프랑스 유학 30대 기자가 본 ‘마크롱 세대’

영어 잘하는 신세대들 프랑스를 바꾸고 있다

김선엽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dward@chosun.com 

▲ 지난 5월 7일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마크롱 당선자의 승리에 환호하는 젊은이들. photo 뉴시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은 영어와 담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으니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는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불문율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파리와 남부 코트다쥐르(Cote d’Azur)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온 한 지인은 이 불문율이 “기우였다”고 전했다. “프랑스인이 영어 못한다는 건 옛말이 된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지인에 따르면, 이젠 주말에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영어로 여유로운 쇼핑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파리지앵에게 길을 물으면 “세 파르 라(C’est par là·이쪽으로 가세요)” 대신 “바이 디스 웨이(By this way)”란 답이 먼저 들려왔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처음 가거나 한참 만에 가본 사람들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프랑스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새로울 것이다. 하지만 30대 초반인 기자처럼 2000년대 중후반 프랑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프랑스인이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구(舊)세대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영어 잘하는 젊은 프랑스인들이 학창 시절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지만 최근 프랑스의 새 대통령이 된 마크롱도 이들 중 하나다. 달라진 프랑스를 이끄는 30~40대의 ‘마크롱 세대’는 세계화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던 탓에 전 세대보다 도전적일 뿐 아니라 실리와 융통성을 앞세운다.
   
   
   신(新)프랑스인 DNA
   
   지난 5월 7일 39세 나이에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으로 등극한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일간 르파리지앵은 “프랑스 정계에 등장했던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대통령이 됐다”고 그의 당선 소식을 전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 초년병’ 마크롱이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가 6개월 뒤 프랑스를 이끌어나갈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라 확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은 1.1%에 불과했고 실업률은 10%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존 정치세력은 지속적인 침체현상이 낳은 각종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프랑스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변화를 갈망하던 시점에 마크롱이 등장한 것이다. 마크롱은 60년 동안 이어져온 양당체제의 무능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택해 프랑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프랑스인들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의 패배주의적 시각이 아닌, ‘나와 함께라면 프랑스는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강조해온 젊은 마크롱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유세 기간 동안 마크롱이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와 도전정신은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한 마크롱 세대, 즉 신(新)프랑스인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당선 이튿날인 지난 5월 8일 마크롱이 미국에 있는 기후환경 전문가들에게 띄운 영상편지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는 영상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홀대하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낙담할 필요가 없다”면서 “프랑스와 유럽은 기후변화 이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투자해 나갈 것이니 우리에게 와서 연구를 계속해달라”고 호소했다. 마크롱이 던진 메시지의 내용도 화제가 됐지만, 전 세계 누리꾼들은 무엇보다 이 메시지를 프랑스어가 아닌 유창한 영어로 전달한 새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에 열광했다.
   
   영어 점수가 모자라 원하던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일화는 유명하다. 마크롱에게 대통령직을 곧 이양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식 서한에 엉터리 영어를 써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그렇다 보니 ‘영어를 잘하는 프랑스 대통령’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다. 동영상을 본 한 미국 누리꾼은 “우리(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고급 어휘를 쓰는 것으로 보아하니 그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마크롱은 유세 기간에도 영미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을 발휘해 다른 대선후보들에게 결여된 ‘글로벌 이미지’를 적극 부각시켰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이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그의 글로벌 이미지를 꼽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977년생이다. 그가 20살이 되던 1997년 프랑스는 큰 개혁을 했다. 바로 징병제 완전 폐지다. 징병제 폐지와 함께 프랑스 젊은이들에게는 애국이라는 개념마저 흐릿해졌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마크롱 세대는 윗세대와는 다른 쪽으로 성장했다. ‘프랑스 자부심’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세계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선 당선자가 지난 5월 7일 파리 루브르박물관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영광의 30년’에서 깨어난 세대
   
   마크롱 세대가 자발적으로 세계화를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제1·2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197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 불리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이 기간에 프랑스는 연평균 5.1%의 경제성장을 기록했고, 평균 실업률은 1.4%로 사실상 완전고용을 실현했다. 대량소비사회가 정착되면서 국민의 생활수준 또한 급속히 향상됐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연 5주의 유급휴가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와 근로조건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또한 미국을 견제한 샤를 드골 대통령의 독자적 외교안보 노선으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과학·기술, 사상과 철학, 문학과 예술에서도 프랑스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를 평정했다. 이 영광의 30년이 선사한 혜택을 온전히 누린 수혜자들이 바로 마크롱의 윗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였다. 세계가 프랑스를 동경하던 이 시절을 살았던 프랑스인이라면 굳이 세계화에 나설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이 경제·안보·문화 등 각종 분야를 선도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는 줄곧 나락의 길을 걸었다. 급기야 2000년대부터 프랑스는 저성장, 고실업의 늪에 빠진 ‘유럽의 병자(病者)’로 전락했다. 이 같은 침체기에 사회에 진출한 마크롱 세대들로선 윗세대들이 누리던 ‘프랑스 자부심’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 국내 취업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마크롱 세대들도 세계화 물살에 떠밀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영어와 같은 외국어 습득의 불가피함도 그때 깨달았다. 르몽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에만 9만5000명의 프랑스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떠났다. 앞선 2006년(2만9000명)보다 6만6000명이나 더 많은 프랑스인이 모국을 떠난 셈이다.
   
   마크롱은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14년 12월 탈(脫)규제와 노동유연성 등을 골자로 한 경제개혁안을 통과시키는 추진력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속했던 집권 사회당에서부터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샹젤리제나 오페라 지구와 같은 일부 관광특구에 한해 상점 영업시간을 늘리고 일요일에도 영업을 허가하는 개혁안에 제동을 걸었다. 프랑스 전국 노동자들도 개혁안에 반대하며 들고일어났다. 마크롱은 노동자들이 역사적인 투쟁을 통해 얻어낸 휴식권을 침해하고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난 세례를 받았다. ‘노동자들의 성스러운 영역을 침범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불렸을 정도다.
   
   모든 프랑스인들이 그의 친(親)시장적 경제활성화 정책에 사활을 걸고 반대했더라면 지금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관저)의 주인은 다른 후보가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크롱의 정책을 두 팔 벌려 환영한 이들이 더 많았다. 이들 중 다수가 그가 속한 3040세대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IFOP 피뒤시알이 대선 직전인 지난 5월 5일 마지막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40대 유권자의 73%가 마크롱을 뽑겠다고 답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오랜 세월 프랑스를 지배해온 사회주의적 이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을까.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한 아웃사이더 마크롱의 ‘중도(中道) 혁명’이 그래서 먹혀들었는지도 모른다. 마크롱이 이번 대선 기간 제시한 법인세 인하, 주 35시간 근무제 완화, 공공기관 대규모 구조조정 등의 경제활성화 공약은 그가 장관 시절 밀어붙였던 개혁안보다 한층 더 ‘우클릭’했다. 그러면서도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체 가구 80%에 대한 주민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서민들을 위한 ‘좌클릭’ 복지정책도 약속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과 국가가 ‘윈윈’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마크롱 본인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실리주의를 택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동부 도시 낭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니콜라 드그랑주(36)씨는 “금기시돼왔던 주 35시간제 폐지론을 거침없이 제시한 게 마크롱”이라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더 일해서 벌 수 있게끔 장려해 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몽펠리에에 사는 안과의 레티시아 보네(41)씨도 “좌파든 우파든 한 이념에 갇혀 상대파의 좋은 점마저 애써 외면하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세계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전 열린 마지막 TV토론에서 마크롱은 “프랑스는 여전히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며 프랑스어는 세계 5개 대륙에서 사용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는 마크롱이 프랑스의 앙시앙레짐(Ancien Régime·구체제)을 완전히 청산한 게 아니라 구체제가 물려준 자산을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마크롱과 그의 세대, 나아가 그 아래 세대들 모두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을 배우고 토론하고 논술하는 법을 배웠다. 정답보다 그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본질로 여기는 교육을 받았다.
   
   
▲ 지난 5월 7일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마크롱 당선자와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 여사. photo 뉴시스

   “일하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사실 세계화의 바람에도 끝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프랑스만의 우수한 교육 시스템이다. 과거의 번영도 이러한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이고, 마크롱 세대가 꿈꾸는 제2의 번영도 이 같은 교육이 가져다줄 것이다. 마크롱은 구체제가 물려준 자산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어 집권기간 동안 “프랑스 고유의 개척정신을 다시 일깨우겠다”는 구상이다.
   
   마크롱 세대 역시 그동안 족쇄나 다름없었던 ‘영광의 30년’의 향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랑스를 원한다. 휴가를 떠나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만 하고자 했던 프랑스인들은 이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마크롱 세대는 일하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스마트한 세대다. 그 윗세대와 아랫세대 역시 마크롱과 그 세대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동의했고 그들에게 프랑스의 희망과 미래를 맡겼다. 마크롱 시대,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자화상을 어떻게 다듬어 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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