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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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소될 때 당원권 정지가 아니라 탈당조치를 했어야 했다. 또 친박으로 거론됐던 15명 안팎의 의원들은 제명했어야 했다. 이런 대수술을 한국당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 화합을 명분으로 덮었다. 솔직히 당내 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 친박을 제명시킬 자신이 없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64) 원내대표는 지난 5월 17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친박 세력을 정리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시인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꾸려지면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면서 소위 ‘친박 청산’을 지도부의 숙제로 지목했다. 대선 패배 후 한국당 내부에서 친박 처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함에 따라 ‘친박 대 비박’의 대결 양상이 재연될 조짐이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는 친박 대 비박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최순실 사태의 연대 책임을 물어 친박 대표 격인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지난 4월 중순에는 뇌물죄 등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당헌당규에 따라 당원권을 정지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부터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며 탄핵사태로 무너진 당을 재건하는 데 앞장서 왔다. 정 원내대표는 “어물쩍 덮고 넘어간다거나 내부 투쟁을 회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면서 한국당의 체질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지난 5개월, 나는 사생활 없이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친박 세력이 대선 패배 책임론을 들먹이며 지도부 사퇴를 운운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16일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 당시 윤상현·김태흠·김진태 의원 등 친박계 인사들은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해 정 원내대표 등 현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정 원내대표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홍 전 지사와 정 원내대표는 모두 차기 당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홍 후보가 선거 기간에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의 복당과 친박 의원들의 징계를 해제하는 결정을 당에 통보했다. 당헌 104조 당무우선권을 근거로 이런 결정을 했다는데, 이 조항을 초당헌적 규정으로 오해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당무가 ‘제로’가 된다면 그건 비민주적이고 제왕적 행태다. 선거 중에 내분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어 참았을 뿐, 새 지도부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특히 홍 전 지사의 막말성 발언을 꼬집었다. “앞으로 당에서 정리 대상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친박을 향해 바퀴벌레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을 향단이에 비유하고 장인어른을 영감탱이라며 대중연설에서 거론한 건 후보로서 자질을 의심케 했다. 품격의 문제로 인해 대선에서 득표율 24%를 넘지 못했다. 홍 후보의 이런 행태는 구닥다리다. 젊은층이 볼 때 고리타분하다.”

홍 전 지사는 지난 5월 12일부터 미국 LA에 머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잇따라 글을 남겼다. 최근 친박 의원들을 향해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슬금슬글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 보려고 설치기 시작한 자들”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자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지난 5월 17일 “제정신이냐, 낮술을 드셨냐”고 반박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선에서 낙선하신 분은 자중해왔다.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게 우리 정치의 선례였다”면서 홍 전 지사의 대선 패배 책임론을 거론했다.

- 대선 패배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보수정당을 이끌던 우리의 잘못 때문이지, 보수를 지지해준 국민이나 당원의 잘못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별개로, 국회와 국정을 책임져야 할 집권여당이 계파 갈등에 매몰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우(愚)를 범했다.”

- 보수의 재건은 가능한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릴 정도로 어려운 선거였지만 국민과 당원의 성원으로 최소한의 보수 결집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보수 재건의 기반은 마련했다. 이제 강한 야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합리적인 야당, 수권정당으로서 인정받는 야당으로 거듭나야만 보수 재건을 이끌어낼 수 있다.”

- 한국당은 어떤 식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나. “영국의 저명한 정치가가 ‘개혁 없는 보수는 죽은 보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에 동의한다. 보수의 기본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좋은 전통은 계승하고 새로운 개혁을 지향하는, 그런 방향성을 중심에 두고 혁신해 나갈 것이다.”

- 대선 패배 백서를 준비하고 있나. “보수 재건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서울대 한상진 교수를 대선평가위원장으로 위촉하고 통렬한 반성을 했다. 그 토대 위에서 이번 대선을 준비해왔고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다. 우리도 이런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5년 뒤 정권을 잡기 위한 장기 플랜을 마련할 생각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먼저 결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당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적청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대선 전에는 당이 와해될 위기에 처해 있어서 제대로 수술을 하지 못했다. 새 지도부가 들어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우리는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특정지역의 지지에 안주하면 지역 정당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 5월 17일 박완수 의원은 비대위원직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 사퇴 이후 4인 체제의 비대위가 무너졌다. 이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당 쇄신을 위해 친박 징계 등을 어렵게 처리해왔는데, 이런 부분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홍준표 후보가 선거 기간 보여준 행태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 일각에서 홍준표 전 지사가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분이 미국에서 돌아와 당을 제대로 이끌어 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홍 후보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막말을 볼 때 강한 의구심이 든다. 과거 홍 후보가 당대표를 할 때 독불장군처럼 행동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면 친박조차 가만있지 않을 거다. 다시 지난해 12월의 계파 간 대립과 파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홍준표 전 지사는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재보선 패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해킹 사건 등 연이은 악재로 인해 5개월 만에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박근혜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판,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며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로운 인물 수혈론이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2040으로 대변되는 청년층과 호남 유권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새 당대표는 세대와 계층, 모든 지역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 부합하는 외부 인사도 당대표로 적극 고려해야 한다.”

- 바른정당과 통합 가능성은 어떤가. “보수 재건을 위해 당내 일각에서 바른정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는 게 우선이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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