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2형 미사일 무한궤도식 이동식 발사대
북극성-2형 미사일 무한궤도식 이동식 발사대

지난 5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기념 열병식에선 3종의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들이 처음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는 무수단 미사일을 탑재했던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있던 KN-08 개량형 미사일이었다. 원래 KN-08은 2단 미사일이었지만 이 미사일은 1단이었고 1단 로켓과 탄두 사이에 전에는 없었던 PBV(Post Boost Vehicle) 같은 운반체가 포함돼 있었다. PBV는 ICBM 등의 탄두 자세와 방향을 조절해 탄두가 정확하게 대기권에 재진입하고 정확도를 높여주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에서 PBV가 식별된 것은 처음이었다. KN-08 개량형의 PBV에선 액체연료와 산화제 주입구도 식별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불과 한 달도 안 돼 깨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14일 북한은 평북 구성에서 이 미사일을 기습 발사해 최대고도 2115㎞까지 올리고 787㎞를 비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화성-12형’으로 명명된 이 미사일이 정상적인 비행궤도로 발사될 경우 4500~5000여㎞를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보통 사거리 5500㎞ 이상을 ICBM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ICBM에 육박하는 준(準)ICBM으로 분류할 수 있는 미사일이었다. 이 미사일의 핵심은 80tf(톤포스·80t의 무게를 밀어올리는 힘)의 강력한 힘을 가진 이른바 ‘백두산 엔진’이다. 지난 3월 이 엔진의 연소시험에 성공했을 때 김정은은 ‘사변(혁명)’이라 부르며 개발 관계자를 극히 이례적으로 직접 업어주기까지 했었다.

전문가들은 이 엔진을 2~3개 묶어서 1단 로켓을 만들고, 2단 로켓을 얹으면 미 서부지역은 물론 워싱턴 등 동부지역까지 핵탄두로 타격할 수 있는 본격적인 ICBM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 당국은 또 북한이 지난 5월 15일 ‘화성-12형’이 표준화된 핵탄두뿐 아니라 대형 중량 핵탄두도 장착이 가능하다고 밝힌 데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성-12형이 500㎏ 탄두로는 최대 5000여㎞를 비행할 수 있지만, 1t 탄두는 3000㎞까지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 전문가인 정규수 박사(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는 “구소련은 이미 1960~1970년대에 추력 80t 엔진 1기를 장착한 SS-11 ‘세고’ 미사일로 수백㎏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1만1000㎞ 떨어진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미사일의 효율성을 높일 경우 백두산 엔진 1기로도 핵탄두를 1만㎞ 이상 운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2~3년 내 본격적인 ICBM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극성-2형 미사일 발사 연속 장면.
북극성-2형 미사일 발사 연속 장면.

군 당국과 정보 당국은 특히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가 우리 상식을 완전히 벗어날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외형상 보면 북한은 백두산 엔진 연소시험에 성공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이 엔진을 신형 미사일 화성-12형에 달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화성-12형은 첫 발사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식통들에 따르면 화성-12형이 그동안 적어도 3차례 정도 시험발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이런 실패 끝에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올 들어 평북 구성 등에서 무수단 또는 KN-17 신형 미사일 발사 실패로 알려졌던 것들이 실제로는 화성-12형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엄청나게 빠르다는 사실에 대해선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은 기본적으로 공포통치를 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자에 대해선 파격적인 대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군 당국과 과학기술자들의 죽기살기식 개발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고체연료 미사일인 ‘북극성-2형’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실전배치를 공식발표한 것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있어 중대한 진전이다. 북극성-2형은 최대 사거리 2000㎞ 미만의 준(準)중거리 미사일이다. 발사 준비에 30분~1시간30분가량 걸리는 액체연료 미사일에 비해 북극성-2형은 발사 준비 시간이 5분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즉각 발사가 가능해 우리 군의 킬 체인(Kill Chain)을 무력화하고 유사시 오키나와를 포함한 주일미군 기지를 핵탄두로 공격해 미 증원군의 한반도 파견을 견제할 수 있는 신형 미사일이 양산에 들어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한이 최근 시험발사에 성공한 최대 사거리 5000여㎞의 신형 화성-12형 미사일의 액체연료 주입구와 PBV.
북한이 최근 시험발사에 성공한 최대 사거리 5000여㎞의 신형 화성-12형 미사일의 액체연료 주입구와 PBV.

중국·이란 기술 지원 추정

북한은 특히 이번 발사에서 북극성-2형 탄두에 설치된 카메라로 수백㎞ 상공에서 찍은 지구 사진들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북한은 다양한 각도로 찍은 사진들을 공개해 탄두부에도 자세 및 방향제어용 추진 시스템을 장착했음을 보여줬다. 이는 북극성-2형 탄두가 대기권에 정확하게 재진입할 수 있고 비교적 높은 정확도를 갖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북한의 빠른 고체연료 미사일 개발 속도도 한·미 군 당국을 놀라게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북극성-1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추진제를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로 전환한 지 1년도 안 돼 이를 지대지형으로 개조한 ‘북극성-2형’ 개발에 성공했다. 이런 비약적인 발전에는 중국·이란 등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고체추진제 개발에 상당한 도약식 발전을 했는데 중국과 파키스탄, 이란 등의 고체추진제 기술과 관련 설비들을 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첫 고체연료 SLBM인 쥐랑-1호를 개발하면서 이의 지상형인 동풍-21호를 병행 개발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체추진제 양산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적용한 단·중거리 미사일들을 개발해 파키스탄과 이란 등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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