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탁현민씨가 지난해 여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 왼쪽부터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탁현민씨, 문재인 대통령. ⓒphoto 탁현민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과 탁현민씨가 지난해 여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 왼쪽부터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탁현민씨, 문재인 대통령. ⓒphoto 탁현민 페이스북

여성 비하 발언을 적나라하게 쓴 책으로 논란의 중심 인물이 된 탁현민(44)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탁씨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그를 발탁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이 조명을 받고 있다. 의전기획비서실 행정관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접견·행사 등을 준비하는 자리다.

탁씨는 2007년 출간한 책 ‘남자마음설명서’(해냄)에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는 등의 내용을 썼다. 탁씨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비난이 쇄도하자 탁씨는 지난 5월 26일 페이스북에 “2007년 제가 썼던 ‘남자마음설명서’의 글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표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뒤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이 ‘탁씨를 사퇴시키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자 청와대는 “정식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알아보는 단계”라며 “탁씨가 사실상 임시직으로 근무하는 중”이라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양정철 통한 인연

문 대통령과 탁현민씨의 인연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선캠프 비서실 부실장을 맡은 양정철씨는 문 대통령이 사석에서 존칭을 생략할 만큼 몇 안 되는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탁현민씨가 지난 5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탁씨가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첫 계기는 2009년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였다. 그는 당시 공연을 “생애 처음으로 돈 안 받고 만든 공연”이라고 말했다.

탁현민씨는 “당시 공연이 끝나고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군데에서 받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양정철씨였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당시 콘서트 이후 탁씨에게 봉하마을에서의 노 대통령 추도식, 노무현재단 창립기념공연 등을 부탁했다. 탁씨는 “그후로 친노(?) 기획자가 되어버렸으니 이 모든 것이 ‘양정철’ 덕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탁현민씨가 본격적으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출판된 후 시작된 2011년 7월 ‘북콘서트’ 때부터다. ‘문재인의 운명’이 출판되기 전 어느 날, 양정철씨가 탁씨에게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아냐고 물어봤고, 탁씨가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양씨는 탁씨에게 원고 한 뭉치를 보여줬다. 원고에는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원고를 다 읽은 탁씨는 양씨에게 “무척 괜찮은 분 같네요”라고 말했고, 양씨는 “이분 좀 한번 도와줘 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그게 시작이었다”라고 탁씨는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양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나서도록 설득하기 위해 책을 쓰자고 제안했다. 그 책이 ‘문재인의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기념해 2011년 6월 나온 이 책은 발간 두 달이 안 돼 15만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북콘서트를 열어 독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서울에서 북콘서트를 연 뒤 전국에서 요청이 들어와 지방에서도 북콘서트를 열게 되면서 그가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탁씨는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를 하면서 문 대통령과 전국을 돌았다. 북콘서트를 하는 내내 문 대통령과 붙어다녔고 때로는 양정철씨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북콘서트를 통해 언론과 시민의 주목을 받으면서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가 됐다. 투어가 끝나고도 탁씨는 문 대통령과 여러 행사를 함께했다. 문재인 후보의 총선 캠페인, 검찰개혁 토크쇼, 노무현재단 전국투어 공연 등 수많은 자리를 만들고 함께했다. 탁씨는 “아마도 나는 양정철이 아니었으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양정철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MBC 앞 ‘삼보일퍽’ 퍼포먼스도

탁현민씨는 1973년생으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공회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컨텐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공연기획자 출신이다. 1999년부터 3년간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를 맡아 일했고, 이후에는 공익문화기획센터·성공회대 등을 거치면서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해왔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탁현민프로덕션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콘서트의 연출가로 잘 알려졌다. ‘나는 꼼수다’는 2011년부터 1년8개월간 방송한 팟캐스트 방송이다. 젊은층의 분노를 대변하는 일종의 대안 언론이라는 평가도 받았으나 저속한 언어 구사와 비하적 표현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탁씨는 2011년에는 정치적 견해를 피력한 방송인을 출연 금지하는 MBC 방송심의규정에 반발해 MBC 사옥 앞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삼보일퍽’은 세 번 걸을 때마다 한 번 손가락으로 욕설을 한다는 뜻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일하던 탁씨는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 대선 초기캠프인 광흥창팀에 합류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인근 상수동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광흥창팀은 당내 경선과 대선 본선을 위한 초기 캠프였다. 광흥창팀 멤버를 구성하는 데에도 역시 양정철씨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흥창팀 멤버 13명은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기여한 핵심 공신들이다. 현재까지 멤버 13명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뉴질랜드로 떠난 양정철씨를 포함해 임종석 현 대통령비서실장, 신동호 현 청와대 연설비서관, 송인배 청와대 현 제1부속비서관 등이 모두 광흥창팀 멤버다. 탁씨는 이 팀에서 행사기획을 맡았다. 그는 지난 3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예비후보의 출정식 영상을 총괄제작했다.

탁씨는 지난해 6월 13일부터 7월 9일까지 네팔·부탄으로 떠났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27일간 문 대통령과 숙식을 함께했다. 이 트레킹에 탁씨가 동행하게 된 것 역시 양정철씨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탁씨는 “지난해 제주에서 넋놓고 지내는 나를 다시 불러 함께 여행이나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던 히말라야와 부탄 여행도 양정철의 제안이었고, 제주 생활 정리하고 다시 한 번 뛰어 보자고 끌고 온 것도 양정철이었다”라고 말했다.

탁씨는 최근 성공회대를 떠나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탁씨는 자신이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정치권에 퍼지자 지난 5월 22일 트위터에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내정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24일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이 설치될 때 탁씨가 서 있는 모습이 한 언론사 기자의 눈에 띄면서 그가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약집에서 ‘성평등한 대한민국’이란 목차를 따로 두고 “더불어 행복한 실질적 성평등사회를 만들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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