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앞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앞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걸었던 핵심 대선 공약 중 하나다. 17만4000개에 이르는 공무원 일자리를 포함해 공공부문에서만 총 8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을 공식화했을 만큼 일자리 창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지난 5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공개했다. 다음 날인 5월 25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일자리 상황판을 공개했다. 이 ‘일자리 상황판’ 설치는 대선 기간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 공약 이행을 위해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첫 번째 정책 행보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은 총 18가지 지표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일자리 상황을 나타내는 △고용률 △취업자 수 △실업률 △청년실업, 또 일자리 창출 현황을 알 수 있는 △취업유발계수 △취업자 증감 △창업(신설 법인 수) △고용보험 신규 취득 현황이 있다. 일자리의 질을 나타내는 △임금격차 △임금상승률 △저임금근로자 △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 △근로시간 현황도 있다. 그리고 4가지 경제지표인 △경제성장률 △소비자 물가 △설비투자 증가율 △소매판매 증가율도 일자리 상황판을 구성하는 지표다.

대선공약이던 집무실 일자리 상황판

사실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대선 기간 이미,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 설치를 약속했었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붙여 놓고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정책을 총괄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던 부분이다. 즉 대선 공약이던 ‘일자리 현황판’이 5월 24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이란 이름으로 실제 설치된 것이다.

‘일자리 상황판’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겠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가 다시 확인됐고 정책의 방향성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의 속도와, 특히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위한 정책의 구체성 면에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이 크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 일자리 창출과 확충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은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 설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바른정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밀어붙이기식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자리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지 않겠냐는 게 상당수 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또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커져버린 비정규직과 하청 형태의 고용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등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정책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등장한 일자리 상황판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는 점 역시 재계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재계는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를 두고 ‘결국 기업도 일자리 확충 의지를 보여달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를 키운 만큼 기업 등 민간 영역에서도 보조를 맞춰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일자리 만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사실 더 큰 고민”이라고 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이전 정부들도 수많은 일자리 만들기 정책들을 내놨었다”며 “문제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정교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고민하고 만들었어야 했는데, 단기적 성과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한 정책들을 쏟아내다 결국 실패를 반복했던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들이 눈치껏 따라야 하는 형태로 등장했던 정책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생명력이 길지 못했던 게 현실”이라며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 현실성 있는 일자리 정책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민간 영역이 허심탄회하게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된 5월 24일을 전후해 일부 기업들이 도급이나 하청, 기간제 형태로 고용하던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공개하고 있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규모와 방법은 다르지만 안정된 일자리 확충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가 언론 등을 통해 전달되며 문 대통령 집권 초기 기업들이 이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재계 관계들은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고, 업종마다 기업 경영 방식이 다른 게 현실이다.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활발한 기업들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이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해왔던 곳이거나, 또 서로가 갈등을 겪으며 상황을 조금씩 조정해오던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사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이해당사자 간 일자리 문제를 두고 논의를 벌여왔던 기업들이 새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양질의 일자리 확대 정책에 동참하는 상황임을 말했다.

일자리 의지 보여달라 vs 부담스럽다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기업의 관계자는 “비정규직 인력을 고용해왔던 민간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인력 운용과 경영은 쉬운 게 아니다”라며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년 동안 세밀한 논의와 준비 작업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자신들 역시 비정규직 고용자들과 수년 동안 논의를 진행해왔다는 점을 말했다. 그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건 사실”이라며 “그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 또 고용 형태 전환에 필요한 ‘비용’ 확보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하거나 또 이런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의 일자리 확충 작업이 완료된 이후, 또 다른 기업들도 이들처럼 일자리 확충에 나서겠느냐이다. 이 부분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영역의 기업 속성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대체적 반응이었다.

기업 관계자들은 대부분 일자리 확충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그런데 구체적 방법과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에 ‘무엇이 양질의 일자리인지’에 대해 일부 기업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일례로 신규채용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눈치작전에 들어간 기업도 상당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자칫 더 은밀한 편법 고용 형태가 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조차 ‘양질의 일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원하는 수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르겠다. 일자리 상황판이 전시 행정 중 하나로 끝나지 않기 위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 로드맵을 정교하게 만들고 다듬는 작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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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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