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백제문화단지 내 사비궁과 능사(오른쪽). 정확한 고증 없이 건립된 백제 왕궁과 사찰이다.
충남 부여군 백제문화단지 내 사비궁과 능사(오른쪽). 정확한 고증 없이 건립된 백제 왕궁과 사찰이다.

지난 6월 4일, 금강을 건너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백제문화단지 초입에 들어서자 백제문(百濟門)이란 커다란 솟을대문이 나타났다. 백제문을 통과하자 329만㎡(약 100만평) 부지 위에 조성했다는 백제문화단지가 펼쳐졌고, 사비궁(泗沘宮)이란 대궐이 보였다. 사비궁의 정문인 정양문(正陽門)을 통과하자 천정문(天政門)이란 또 다른 대문과 천정전(天政殿)이란 정전이 차례로 나타났다. 궁궐 옆으로는 백제의 사찰을 복원했다는 육중한 5층 목탑을 갖춘 능사(陵寺)가 위용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압도적인 규모에 지나가던 한 아동 관람객은 “여기 중국이야?”라고 같이 온 부모에게 되물었다

백제문화단지는 최근 ‘가야사(史)’ 복원을 화두로 던진 문재인 정부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는 역사복원사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청와대 여민관(與民館)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도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백제문화단지는 역사에 정치 권력의 의도가 개입됐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백제사 복원’을 정권 차원의 화두로 던졌다. 김대중·김종필 DJP 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호남과 충청을 지역 기반으로 한 연합정권이었다. 호남과 충청 세력을 한데 아우르기에 ‘백제’만 한 키워드도 없었다. 백제 역시 호남과 충청 등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세력 기반으로 했다. 한성 위례성에서 시작한 백제는 각각 지금의 공주와 부여에 해당하는 웅진(熊津)과 사비(泗沘)를 도읍으로 삼았고,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한 견훤의 후(後)백제는 지금의 전북 전주인 완산주를 도읍으로 삼았다.

백제문화단지가 ‘백제역사재현단지’란 이름으로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 건립계획이 최초로 수립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이란 이름 아래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막대한 토지보상 기대에 충남 공주와 부여 사이에서 물밑 경쟁이 벌어졌다. 한때 충청도 제1고을이자 충남도청 소재지였던 공주에서는 박정희 정부 때 최대 발굴사업인 ‘무령왕릉’과의 연계를 내세워 백제문화단지 공주 유치를 추진했다. 반면 군(郡)에 불과한 부여군은 백제 패망 직전 마지막 도읍이었다는 점을 들어서 부여 유치를 추진했다.

결국 최종 낙점된 곳은 당시 민자당의 한 축인 공화계를 이끈 김종필 전 총리의 고향인 부여. 하지만 YS와의 갈등 끝에 JP가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독립한 뒤로 사업은 탄력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97년 대선에서 JP가 DJ와 손을 잡고 공동정권을 출범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사업비가 줄었다지만 수익성도 불투명한 개발계획이 본격화됐다. 우선 길이 765m로 금강을 가로질러 부여읍내와 백제역사재현단지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백마강교(橋)가 놓였다.

1998년 4월에는 부여군 규암면에서 백제역사재현단지 기공식이 열렸고, DJP 연합정부의 한 축인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서리가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김정길 행정자치부 장관,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직접 대동하고 내려가 기공식을 주재했다. 정권교체 후 첫 고향 나들이였다. 이 자리에서 김종필 당시 총리서리는 “오늘은 천년의 긴 잠에 빠져 있던 백제의 정신을 일깨우는 부활의 대역사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날 기공식 이후로 2010년까지 사비궁, 능사 등 백제 건축양식을 재현했다는 건물이 하나둘 들어섰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로 시작된 인위적 역사 복원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우선 백제문화단지 자체가 생뚱맞은 곳에 자리 잡았다. 백제문화단지가 있는 곳은 금강 이북. 금강을 자연장벽 삼아 금강 이남에 도읍을 둔 옛 사비와는 정반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여읍내의 정림사지, 부소산성과 관북리유적, 능산리고분군과 나성 등 백제의 역사유적들과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에 있어야 할 위례성 마을까지 조성했다. 엉뚱한 곳에 정확한 고증 없이 지어진 짝퉁 건물들은 후손들에게 백제에 대한 오해만 심어줄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충남 부여군 백제문화단지 내의 롯데아울렛.
충남 부여군 백제문화단지 내의 롯데아울렛.

롯데 참여 부동산 개발사업

백제문화단지 내 박물관 격으로 지어진 백제역사문화관 역시 마찬가지다. 큰 규모에 비해 문화관 안에 수장품이라고는 모조품이 대부분이다. 부여읍내에 자리한 국립부여박물관과 별 차이점도 없어 보였다. 백제 유물들은 주로 국립공주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 두 곳에 나뉘어 수장돼 있는데, 여기에다 유명무실한 모조품 박물관 하나를 추가한 셈이 됐다. 결국 ‘백제문화단지’는 드라마 세트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위락시설에 불과했다. 막대한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했음에도 굳이 짝퉁 건물들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올 사람은 없어 보였다. 막대한 사업비에 매년 경영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결국 관리주체인 충남도는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SOS를 쳤고, 부동산 투자의 귀재 롯데를 사업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이완구 전 총리는 충남지사 재임 중 “도지사 취임 후 백제문화제와 백제역사재현단지 문제가 가장 답답한 부분이었다”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네 번이나 만나 투자를 당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백제역사재현단지란 이름도 ‘백제문화단지’로 바꿔 달았다. 당초 계획한 부지 329만㎡ 가운데 165만㎡ 부지에 롯데리조트(2010년), 롯데스카이힐골프장(2012년), 롯데아울렛(2013년) 등 위락시설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실제 6월 4일, 썰렁한 짝퉁 백제왕궁 사비궁과 달리 기와 지붕을 틀어올린 롯데아울렛은 주말을 맞아 인근 공주, 논산은 물론 멀리는 세종시와 대전에서까지 찾아온 쇼핑객들로 가득했다. 롯데아울렛에서 만난 한 점원은 “그나마 주말에는 이 정도지만 평일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백제 역사 복원을 내세운 정권 차원의 사업이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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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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