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 ⓒphoto 뉴시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 ⓒphoto 뉴시스

“군대에서 요구하는 기능들을 제가 참 잘하는 거예요. 그동안 전혀 몰랐는데 사격도 수류탄도 선수였습니다. 수류탄 던지기에는 원거리와 근거리가 있는데 원거리 같은 경우는 40m만 넘게 던지면 되는 거라서 병사들이 다 잘해요. 하지만 근거리 던지기는 30m 떨어진 거리의 반경 1m 원 안에 넣어야 합니다. 나는 열 개 던지면 일고여덟 개는 원 안에 넣었어요. 다른 병사들은 그걸 잘 못 하더라고요. 해상침투훈련, 폭파훈련도 썩 잘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상은 고사하고 벌받기 바빴는데, 군대 가서 오히려 상을 많이 받았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발간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1970년대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학교에서 제적됐고, 그 뒤 강제징집돼 특전사에 입대했지만 의외로 군대가 체질에 맞았다고 한다. 대선후보 시절 안보관 공격을 받았던 문 대통령은 “안보장사 하는 가짜 보수세력”이라고 반박하면서 특전사 경력을 부각시켰다. 실제로 그의 특전사 시절 사진과 체험담은 선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방산비리에 대한 정확한 인식

문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정부 부처로는 처음으로 국방부·합참을 방문해 북한을 ‘적’으로 부르며 굳건한 안보 태세를 강조해 그의 인기에 점수를 보탰다. 국방부 여군과 여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대통령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을 함께 찍는 전례 없는 장면도 벌어졌다. 당시 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소탈하고 진솔해 보이는 행보는 안보관 등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방위사업 비리 문제에 있어서도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흥미로운 언급을 했다. ‘방산비리’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방산비리 용어 자체가 조금은 문제가 있어요. 방산비리 하니까 국내 많은 방산업체들이 다 비리를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비리들도 있긴 하겠지만 정말로 우리의 안보 능력을 잠식하는 거대한 비리들은 전부 해외무기 도입 비리입니다. 그게 핵심이에요.… 이번 박근혜 게이트 속에서도 이른바 최순실과 린다 김을 통한 F-35 전투기 선정 비리들이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은 특검으로 규명돼야 합니다. 특검이 규명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 가서라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죠.”

실제로 그동안 방산비리라는 표현에 대해서 국내 방산업체들은 큰 불만을 가져왔다. 지난 2~3년간 이뤄진 수사에서 실제로 해외무기 또는 장비 도입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간 것은 여러 건이 드러났지만 국내 방산업체 관련 비리는 별로 없었다. 때문에 ‘방산비리’가 아니라 무기도입 사업을 의미하는 ‘방위사업 비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이를 정확하게 파악해 언급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 들어서도 강조되고 있는 방산비리 척결에 문 대통령이 균형감각을 갖고 접근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모아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강력하게 이뤄진 방산비리 수사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주도해 세월호 논란 등 박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가 대부분 무죄로 판결 날 만큼 무리한 수사였다는 점에서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군내에선 문 대통령이 책에서 언급한 F-35 전투기 선정의 경우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당시 국방장관으로 선정을 주도한 만큼 강도 높은 감사 및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모욕주기식 접근… 역효과 초래할 수도

이처럼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초반 행보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거진 사드 보고 누락 논란에 대해선 많은 군 관계자들이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하고 있다. 청와대가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4기 추가 반입’ 보고 누락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정도의 사안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군의 한 소식통은 “사드 1개 포대가 이동식 발사대 6기로 구성돼 있고 발사대 4기가 반입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보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4기 추가 반입’이 누락됐다고 이 난리를 치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오찬에서 사드 4기 추가 반입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며 부인하는 반문을 했었다는 청와대 발표는 한 장관이 정 실장에게 대놓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인상을 주며 청와대의 ‘강공(强攻)’에 힘을 실어줬던 핵심적 사안이었다. 한 장관은 청와대 조사과정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 공식발표에선 이에 대한 내용이 아예 빠졌다. 당시 정 실정과 한 장관은 배석자 없이 1시간 넘게 단독 오찬을 했다고 한다. 긴 대화 중 전후 맥락 없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는 한 장관의 말만 잘라 청와대가 발표한 것은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한 소식통은 “한 장관은 청와대 조사 과정에서 정 실장에게 이미 성주포대에서 가동 중인 2기는 물론 4기 추가 반입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란 워딩도 사실과 다르게 발표됐다는 해명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보직 해임돼 한직인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전보된 위승호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육사 38기·중장)에 대해서도 동정론이 제기되며 군내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위 전 실장은 군내 대표적인 정책·전략통으로 꼽혔던 사람이다. 육군 정책연구관은 주로 전역을 앞둔 장성이 가는 자리여서 위 전 실장은 올 연말까지 전역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청와대가 과도하게 일을 키우는 바람에 위 전 실장 등 엘리트 군 관계자들만 희생양이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군내에선 앞으로 현 정부와 군 사이에 국방개혁, 전작권 조기전환, 병 복무기간 단축, 국방부 문민화 등 굵직한 갈등 사안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사드 보고 누락 사건이 불거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국방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선 군도 공감하고 있는데 이런 모욕주기식, 길들이식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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