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무를 페어웨이에 심어둔 베이징의 십삼릉골프장.
어린 나무를 페어웨이에 심어둔 베이징의 십삼릉골프장.

골프를 중국어로는 가오얼푸(高尔夫)라고 한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중국의 대도시 부근에 골프장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골프장이 있어야 외국으로부터 FDI(외국인직접투자)를 순조롭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그런 덩샤오핑의 지시에 따라 수도 베이징(北京) 근교 명나라 황제들이 묻힌 십삼릉 근처 야산 중턱에 1986년 베이징 국제 가오얼푸클럽이 중·일 합자로 건설됐다. 광둥(廣東)성 중산(中山)시에 이어 중국 내 두 번째의 골프클럽이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사이에 이른바 ‘십삼릉골프클럽’으로 불린 이 국제골프클럽은 건설과 관리가 일본 최고급 골프장 수준으로 이뤄져 조니워커 클래식을 비롯한 국제적 골프대회도 여러 차례 열렸다. 덩샤오핑은 혁명 동지 룽가오탕(榮高棠·1912~2006)을 중국 골프협회 회장으로 앉혀 중국 전역의 골프장과 골프대회 관리를 맡겼고, 자신의 오른팔이던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당 총서기에게 골프를 배워서 주말에는 베이징 근교의 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배려했다. 골프를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스포츠로 양성하려는 것이 덩샤오핑의 생각이었다. 덩샤오핑의 그런 생각에 따라 중국 전역에는 수많은 골프장들이 문을 열었고, 베이징 근교에도 2012년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가 선출되기 직전까지 50여개의 골프장이 문을 열었다. 광둥성 선전(深圳)에는 216홀짜리 세계 최대 골프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중국의 골프장 건설붐은 시진핑 당 총서기가 반(反)부패운동을 벌이면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반부패운동의 세부 항목에는 “당 간부와 정부 관료들이 술을 파는 클럽이든 골프클럽이든 호화판 클럽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됐고, 외교부 관리들조차 외국인과 골프장에 나가는 일을 삼가면서 중국 내 골프장들에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부실 골프장에 대한 조사를 구실로 전국 66개 골프장의 영업을 중단시켰고, 베이징 근교에 있는 3개의 골프장도 영업을 중단했다. 2015년에는 12개의 골프장이 조사 대상으로 추가 발표됐는데, 이때 전국 최우수였던 베이징 십삼릉골프장도 포함돼 영업을 중단했다.

문제는 중국 내 골프장 영업 중단이 회원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나 통보 없이 갑자기 이뤄졌다는 점이다. 십삼릉골프장의 경우 회원권 가격이 한창 때는 210만위안(약 4억원)까지 올라갔는데 그런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던 회원들이 어느 날 골프를 치러갔다가 골프장 출입문이 잠겨 있어 놀라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은 골프장 영업 중단이 풀렸는가를 알아보려고 차를 타고 진입로에 들어가는 동안 페어웨이에 어린 나무가 촘촘하게 심어져 있는 광경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화가 난 회원들은 수소문을 해서 골프장 관계자를 찾아내 항의했지만 들을 수 있는 말은 “골프장 소재지의 구청(區廳)이 나무를 심으라는 지시를 내려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회원들은 창핑(昌平)구 구청을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구청 당국은 “그런 지시 내린 일 없다.… 골프장 일은 골프장 측에 물어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골프장이 영업을 중단한 지 1년 반이 넘도록 회원권 보상은 물론 아무런 공식 설명 없이 “골프장 영업이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인과 한국인 회원들이 자신이 아는 정부 관리나 중국공산당 간부에게 물어보자 희한한 대답이 돌아왔다. “골프장 진입로가 폐쇄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진입하는 철문이 잠겨 있는 상태이고 페어웨이에는 어린 나무들을 심어놓았지만 골프장 측이 철문에 내건 안내문에는 ‘잠정(暫停·일시 영업중단)’이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 폐업과는 다른 개념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면 영업이 재개될 날이 올 거다. 페어웨이에 심은 나무야 뽑아버리고 다시 정리하면 될 것이니 큰 문제가 아니다.”

무려 4억원에 가까운 회원권을 사서 묵혀두라는 말에 중국 내 외국인들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라던 골프가 “개혁개방을 심화시키겠다”고 외치고 있는 시진핑 정권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현실에 회원들은 마주 앉으면 불평을 한다. 외교부 관리가 외국인과 함께 골프를 치러가는 것은 유일하게 허용한다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선뜻 골프를 치려는 외교부 관리는 없다.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너도나도 골프를 배워 주말이면 골프장에 나가던 주한 중국대사관 외교관들도 요즘은 골프 이야기조차 입밖에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우리의 경우도 골프를 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군들과의 사교를 위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개방적인 분위기를 위해 골프를 배워 치기 시작하면서였고, 이와 함께 골프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골프는 아이러니하게도 문민 대통령임을 자부하던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찬 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93년 4월 13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골프 불협화음’이란 제목으로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집권당을 질타했다.

“골프 치는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총리실과 민자당의 3각 혼선을 보면서 우리는 새 정부의 사정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며, 동시에 이 나라에 신권위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골프가 도대체 무슨 중요한 국사이길래 한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와 집권당 대표가 서로 쳐도 좋다, 아직 안 풀렸다, 누가 치라고 그랬느냐는 따위의 지극히 비생산적인 화제에 휘말려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가 중대사도 아닌 골프 따위의 문제로 한 나라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하며 눈치 보기 급급한 요즘의 상황은 한마디로 우습고 언짢고 불유쾌하기 그지없다.”

우리에게는 언론의 자유와 정부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만 중국은 다르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는 있지만 “혁명의 완성은 총과 펜을 다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교시에 따라 국내 정치 비판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내 외국인들의 경우 비싼 회원권 가격에 대한 보상 없이 무기한 계속되는 골프장 영업중단으로 불평의 소리가 높지만 그런 외국인들의 불만을 보도해주는 매체는 없는 실정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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