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과 윤준병 전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왼쪽). ⓒphoto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과 윤준병 전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왼쪽).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7일 국내 주요 일간지에 서울시 인사공고가 실렸다.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상수도사업본부장 윤준병’. 신임 상수도사업본부장에 임명된 윤준병 전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행시 26회)은 고건 전 서울시장 때부터 교통행정을 주로 전담해온 자타공인 ‘서울시 교통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4년 2월, 지하철 9호선의 일방적 요금인상으로 촉발된 사업구조 재구조화를 마라톤협상 끝에 성공시킨 윤준병 전 본부장을 ‘지하철 9호선을 지켜낸 시민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적도 있다. 수도 서울의 교통정책을 총괄하는 도시교통본부장은 영향력 면에서 중앙정부의 고위 교통관료 못지않다.

자연히 서울시 안팎에서는 ‘영웅의 퇴장’이란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윤준병 전 본부장은 지난 6월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윤 전 본부장은 교통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대중교통 환승요금 할인제 도입 공로로 ‘제1회 서울정책인대상’ 본상을 수상했고, ‘서울을 바꾼 교통정책 이야기’란 책을 펴냈을 정도로 교통행정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관료였다. 서울시 핵심 요직인 도시교통본부장을 두 차례 역임한 것은 윤씨가 최초다. 사의 표명은 생뚱맞은 상수도사업본부장으로 보낸 박 시장의 문책성 인사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었다. 서울시 인사과의 한 관계자는 “아직 윤 본부장의 사표 수리가 안 됐다”며 “현재 휴가 상태로 박원순 시장과 면담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이 상수도사업본부로 좌천성 발령을 받은 까닭은 최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전·현직 공무원 2명이 버스업계 비리에 휘말려 연이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24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팀장 공모씨가 경기도 광명의 도덕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기도의 한 버스업체로부터 노선증설에 대한 대가로 1억1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돌연 잠적했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것. 지난 6월 2일에는 서울 흑석역 인근의 한강공원에서 또 다른 서울시 퇴직 교통공무원 정모씨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 정씨 역시 버스업계 관련 비리로 경찰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전·현직 공무원들의 잇단 자살에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수세에 몰리는 듯하던 서울시는 윤준병 전 본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찰 수사의 허점과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윤 전 본부장은 “시작은 창대했지만 마무리는 형편없는 모양새”라며 “내가 경험한 내용만으로도 경찰이 인권경찰로 평가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정면으로 성토했다. 또한 경찰 수사에 대한 반박 증거 자료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낱낱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윤 전 본부장은 “우리가 보는 시각에서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버스업계와 줄곧 악연

이 사건의 진실을 떠나 윤 전 본부장과 버스업계와의 악연(惡緣)도 새삼 화제가 됐다. 윤 전 본부장은 고건 시장 시절인 1999년 대중교통과장으로 있을 때부터 부실 버스업체 퇴출을 추진하면서 버스업계와 크고작은 마찰을 빚었다. 2000년에는 ‘천연가스(CNG) 버스’ 도입을 둘러싼 버스업계의 투서로 감사원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버스업계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그가 쓴 ‘서울을 바꾼 교통정책 이야기’란 책에는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버스업계 등 이익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입장에 배치되는 직원이나 간부가 있을 경우 종종 악의성 투서를 제출하여 쫓아내려고 하는 등 나쁜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업계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단호히 응징을 해서 불이익을 주어야만 같은 행동들을 반복하지 않게 되고, 그래야만 선의의 공무원들이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 1기 때 도시교통본부장을 지내며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를 해내는 등 승승장구하던 윤 전 본부장이 2013년 말 돌연 일선 구청으로 나간 것도 버스업계와의 마찰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모 방송에서 윤준병 당시 도시교통본부장이 특정 버스업체에 앙심을 품고 행정적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보도를 제기한 것. 윤 전 본부장이 “왜곡보도, 편파보도”라며 강력 반발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박원순 서울시장이 윤 전 본부장을 국외훈련을 보냈다가, 한직(閑職)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은평구 부구청장으로 발령낸 것.

하지만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터지자 박원순 시장은 신용목 당시 도시교통본부장(현 은평구 부구청장)을 경질하고, 윤준병 당시 은평구 부구청장에게 SOS를 치기에 이른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서울메트로(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간의 조직통합이 계속 불발되는 통에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당시 은평구에 있던 윤 전 본부장은 신용목 전 본부장과 자리바꿈하는 형식으로 도시교통본부장에 재기용됐다. 한 명의 시장 아래서 도시교통본부장에 두 차례나 기용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윤 전 본부장이 서울시 공무원 가운데 최초였다.

박원순 시장의 부름에 응한 윤준병 전 본부장은 도시교통본부장에 재기용되자마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뒷수습을 맡는다. 재기용 1년 만에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양대 지하철공사 조직통합을 전광석화처럼 이뤄내며, 지난 5월 31일 ‘서울교통공사’를 출범시켰다. ‘공룡 공기업 탄생’과 같은 지하철 통합에 대한 찬반 논란을 떠나서 윤 전 본부장의 교통 전문관료로서의 일사천리식 추진력과 매끄러운 일처리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양대 지하철공사 통합 결정 당시 박근혜 정부 국토교통부에서는 “통합 지하철공사의 거대노조가 파업할 경우 교통대란이 우려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었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와 지하철공사 통합 등 지하철에 유독 강점을 보인 윤 전 본부장이 소속 직원의 버스비리 의혹에 휘말려 낙마하면서 박원순 시장 2기의 교통행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시 교통행정은 최대 현안인 지하철 9호선 조기 증차를 비롯해 현안이 산더미 같다. 서울 첫 경전철인 ‘우이신설선(線)’ 개통도 오는 7월 29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전철 개통 초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빈발하기 마련인데, 상황관리를 미숙하게 할 경우 박 시장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교통공약으로 내건 ‘출퇴근 시간 단축’을 위한 수도권 광역급행열차 확대와 대도시권 광역교통청 신설 등은 국토부와 서울시 간의 원활한 업무협조가 필수적이다.

신임 도시교통본부장으로 임명된 고홍석 도시교통본부장(행시 31회)은 주로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 때 교통개선총괄반장·버스정책과장·교통계획과장·교통정책담당관을 맡으면서 교통행정 실무를 담당했다. 박원순 시장, 문재인 정부의 교통정책과 코드를 잘 맞출지는 미지수다. 비슷한 이유로 한때 ‘고건맨’으로 불린 윤준병 전 본부장은 이명박·오세훈 시장 아래서는 교통정책 라인에서 배제돼 상수도사업본부로 좌천됐었다. 윤 전 본부장은 이때를 ‘귀양살이’라고 표현했었다. 윤 전 본부장은 “박 시장을 만나봬야 할 것”이라며 “아직은 미정”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의 상수도사업본부행(行)에 배수진을 친 윤준병 전 본부장을 잡을지 놓을지 박원순 시장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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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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