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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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때문일까.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지 올해로 22년째다. 지방자치의 상징적 표현인 ‘풀뿌리민주주의’는 영어 표현(grass roots democracy)를 그대로 번역한 용어다. 풀밭은 만들어졌지만, 공고히 뿌리내렸다고 보긴 힘들 듯하다. 지방 재정자립도가 단적인 지표다. 1995년 63.5%였던 것이 올해는 53.7%다. 지방이 중앙정부에 더 의존하게 됐다는 얘기다. 지난 7월 4일 서울 세종대로 서울시의회에서 김선갑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광진구3선거구)을 만났다. 김 의원은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과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구의원을 역임했다. 지방자치의 현실을 잘 아는 이유다.

앉자마자 나온 화제는 역시 ‘재정’이었다. 김 의원은 “지방이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국에 243개 지자체가 있다. 이 중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123곳이다.”

서울시 사정은 다르지 않은지 물었다. “서울시 자치구 25곳 중 14곳이 인건비도 지방세로 자체 충당을 하지 못한다. 광진구도 마찬가지다. 이게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기초자치단체가 공무원 보수 같은 경직성 경비만 집행한다면 지방자치를 뭐하러 하나. 세금 들여 선거 치를 필요도 없다.”

해결책을 묻자 “세목 조정”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건 사실 의원이 아니라 지자체장들이 해야 할 얘기지만, 예산심의를 할 때마다 느꼈다. 서울시 올해 예산이 29조원이다. 그런데도 예산 편성할 때 모자라서 전전긍긍한다. 세금 구성을 보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다. 게다가 지방세 대부분이 취득세, 재산세 등 경기에 민감한 항목이다. 외국은 다르다. 일본은 세금 중 지방세가 40%다. 선진국이 대부분 그렇다.”

한국 사회는 이미 22년 전에 지방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합의했지만, 각론을 살펴보면 여전히 소극적이다. 제기되는 의문은 두 가지다. 첫째, 지방의회가 예산을 심의하고 지자체를 감시할 능력이 되는가. 둘째, 지자체 이기주의 때문에 중복 투자 등 비효율성이 발생하지 않겠나. 김 의원의 답이다.

“20년 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전엔 지역의 토호세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나. 경제력과 인맥으로 당선되곤 했다. 입법, 예산심의, 행정감사라는 본질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엔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이 상당히 좋아졌다. 광역의원의 경우엔 대학원 석사 이상 학력 소지자가 30%를 넘는다.”

지방의회 의원은 특별시·광역시·도·특별광역자치도 의회를 구성하는 광역의원과 시·군·자치구의 의회를 구성하는 기초의원으로 나뉜다. 중복 투자에 대해서도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중복 투자를 막는 시스템이 이미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은 중앙 투자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재정영향 평가 같은 행정 절차가 원칙대로 제대로만 작동하면 중복 사업은 충분히 걸러진다.”

일각에선 시·군·구마다 의회를 둘 필요가 있냐며 ‘기초의회 무용론’을 제기한다. 김 의원의 생각을 물었다. “기초의회를 없애고 광역의회를 강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풀뿌리민주주의라면 구 단위부터 의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행정 체계를 조율한다면 정권 초에 해야 한다. 선거와 다 연결돼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분권 강화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일단 정권 차원의 의지가 강하다. 대선 공약집에도 지방 자치를 다룬 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바로 ‘비전 2-1 지방분권 강화 및 균형발전’이다. 집권 후 청와대 내에 ‘자치분권비서관’과 ‘균형발전비서관’ 자리도 신설했다. 김 의원도 문재인 정권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권의 의지가 확고하니 지방세 비율이 확대되는 등 지방의 권한이 강화되리라 생각한다. 전체 세금 중 지방세 비율이 현재의 20%에서 선진국 수준인 40%까지 올라가는 건 현실적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30%까지만 상승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 강화 내건 문재인 정부

사실, 재정 문제 외에 지방 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로 꼽히는 사안이 있다. 바로 ‘유급 보좌관제 도입’이다. 국회의원은 의원 1명당 9명까지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지방의회 의원은 단 1명의 보좌인력도 지원받지 못한다. 서울시의 경우 총 106명의 시의원이 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살펴봐야 하는 예산이 시의원 1인당 3700억원이다.

“서울시 교육청 재정까지 포함하면 서울시 한 해 재정이 40조원이다. 예산심의할 때 예산안과 부속서류 15가지를 봐야 한다. 서류를 쌓으면 어깨 높이에 올 정도다. 열흘 남짓 동안 그 서류를 다 보고 질의를 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에 다니면서 현안도 챙겨야 한다. 심도 있는 예산심의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각 서울시의원이 6급 보좌관 1명씩을 두면 47억원이 든다. 의원들이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 서울시 예산 중 비효율적인 예산 1%만 걸러내도 4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유급 보좌관제가 도입되려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실 지방의회 의원, 특히 광역의원들에게 보좌관이 필요하다는 건 여의도 정가에서도 알고 있다. 2015년 정청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초의회 의원이 1인의 정책지원 자문인력을 두도록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이 법안에 시큰둥했다.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그전인 2013년에는 유정복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방의회에 유급 보좌관제를 도입하고 의정활동비를 물가상승률에 맞춰 올리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집중포화를 맞고 접어야 했다. 이유가 뭘까. 자유한국당 소속 보좌관 A씨는 “큰 도시의 시의원 등 광역의원 같은 경우 보좌관 없이는 심도 깊은 의정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회의원들도 다 안다. 보좌관까지 두게 하며 잠재적인 경쟁자를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방의회는 여야 가리지 않고 중진 정치인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원유철·정갑윤·주승용·우원식 의원 등이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 지방 분권 챕터에는 ‘지방의원 입법정책 지원 전문인력 확충’이 세부 공약으로 들어가 있다. 정부가 공약 달성을 위해 여의도의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 궁금하다.

김 의원은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활동 중이다. 50세부터 64세까지를 지칭하는 ‘50플러스 세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만 살펴봐도 인구의 22%, 약 220만명이 50플러스 세대다. 이들의 능력이 사장되지 않고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국가경쟁력이 달려 있다. 관련 정책을 계속 발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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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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