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발사된 ICBM급 화성-14형(위)과 이에 환호하는 김정은. photo 조선중앙TV
지난 7월 4일 발사된 ICBM급 화성-14형(위)과 이에 환호하는 김정은. photo 조선중앙TV

지난 5월 14일 북한이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최대 사거리 4500~5000㎞) 시험발사에 사실상 성공했을 때 독특한 발사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종전 스커드-ER, 노동, 북극성-2형 등 북 탄도미사일 발사 때는 이동식 발사대에서 미사일이 수직으로 세워진 뒤 곧바로 발사하는 형태였다. 이동식 발사대는 대부분 바퀴 달린 차륜형이지만 북극성-2형은 캐터필러를 사용하는 무한궤도형이다. 하지만 화성-12형은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에서 지상거치형 고정식 발사대로 옮겨진 뒤 이 고정식 발사대에서 쏘는 형태였다.

이 같은 발사 방식은 최초의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로 국내외에 충격을 준 화성-14형 발사 때도 똑같이 사용됐다. 화성-14형은 바퀴가 16개나 달린 대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지상거치형 고정식 발사대로 옮겨진 뒤 일정 시간이 지나서 발사됐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완전하게 운용할 능력이 아직 없어 고정식 발사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사 때 생기는 엄청난 화염으로부터 이동식 발사대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고정식 발사대는 이동식 발사대에 비해 탐지 및 공격이 쉬워 한·미 군 당국이 유사시 ‘킬 체인(Kill Chain)’을 적용하기 용이해진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반대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히려 한·미 군 당국의 킬 체인으로부터 이동식 발사대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동식 발사대로부터 고정식 발사대에 미사일을 올려놓고 멀리 내뺀 뒤 미사일을 쏘면 한·미 양국군이 이동식 발사대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킬 체인은 북 미사일 발사 때 생기는 화염을 미 조기경보위성 등이 탐지해 이동식 발사대 위치를 확인, 30분 내에 타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동식 발사대가 미사일 발사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동식 발사대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이동식 발사대 파괴가 핵심

이동식 발사대 파괴가 중요한 이유는 이동식 발사대가 없으면 대부분의 북 미사일을 발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 탄도미사일은 총 1000여발에 달하지만 이동식 발사대는 100~200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동식 발사대를 파괴하면 수백 발의 북 탄도미사일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이동식 발사대를 필사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이동식 발사대를 잡을 수 없으면 킬 체인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대량살상무기센터 선임분석관은 “새로운 지상거치형 고정식 발사대 발사 방식은 중국의 탄도미사일 발사 때도 썼던 방식으로 킬 체인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 싱크탱크의 한 전문가도 “그동안 북 미사일의 최대 약점은 주로 중국제인 이동식 발사대 숫자가 제한돼 있었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발사방식으로 쏠 수 있는 미사일 수가 발사대 차량 숫자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기존 전제가 깨져 킬 체인 개념이 상당 부분 흔들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ICBM의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대기권 재진입 성공 여부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정부와 군 당국과는 다른 해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5일 화성-14형 ICBM이 대기권 재진입에도 성공했다며 이례적으로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통신은 “이번 시험발사는 우리가 새로 개발한 탄소 복합재료로 만든 대륙간탄도로켓 전투부 첨두(탄두부)의 열견딤(내열) 특성과 구조 안정성을 비롯한 재돌입(재진입) 전투부의 모든 기술적 특성들을 최종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이어 “재돌입 시 전투부에 작용하는 수천도 고온과 가혹한 과부하 및 진동 조건에서도 전투부 첨두 내부 온도는 25∼45도의 범위에서 안정하게 유지되고, 전투부는 그 어떤 구조적 파괴도 없이 비행해 목표 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군 당국은 이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며 성공 여부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정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아직 재진입 능력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 본토에 도달하는 ICBM은 탄두의 낙하 속도가 마하 24~25(음속의 24~25배)에 달해 대기권 재진입 때 7000~8000도의 열을 견뎌내야 한다. 북한이 이 정도의 열을 견딜 수 있는 탄두를 개발했다는 증거가 아직 없다는 게 정부와 군의 공식 입장이다. 반면 이번에 화성-14형 탄두가 7000~8000도의 열을 견디고 온전히 목표 해역에 낙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북한이 이미 화성-12형 중거리 미사일 성공을 통해 탄두가 4000~5000도의 열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7000~8000도 내열 기술’ 개발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에 파격적 대우

북한의 ICBM 능력에 대해 신중한 정부와 군 당국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속옷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북한이 현대 첨단 군사기술의 집약체인 ICBM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이에 대해 분석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ICBM 발사 성공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첫째 지난 수십 년간 ICBM 관련 과학자들을 꾸준히 관리했고, 둘째 스스로 확보한 비공식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사일 개발 비용을 감당했으며,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정권의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선 개발인력과 관련해선 1989년 구소련이 붕괴하자 북한은 해당 국가 출신 미사일 기술자들을 영입했다. 북한은 이들을 평양으로 데려와 미사일 연구뿐 아니라 북한 인력들을 교육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개발비용 문제는 북한이 스스로 확보한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수억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사고 팔면서 개발비용 등을 충당했다고 한다.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전자부품 등은 소량으로 들여오는 방식으로 다른 국가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김정은의 의지다. 김정은은 공포통치로 악명이 높지만 과학기술자들에 대해서만큼은 1970년대 우리나라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연상시킬 만큼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다. 특히 다른 분야와 달리 시험발사 등에 실패하더라도 거의 책임을 묻지 않고 관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소식통은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김정은의 채찍과 당근, 죽기살기식 ‘헝그리 정신’ 개발이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 북한의 초고속 핵·미사일 개발을 실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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