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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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장(市長)입니다. 가게 앞에 나오셔서 지나가는 손님들 붙잡고 안으로 모셔가세요. 그래야 물건을 조금 더 팔죠!”

지난 7월 18일 경남 밀양시 내일동 소재 전통시장. 한때 밀양시는 인구가 27만명에 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읍내 주민과 시 외곽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전통시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밀양시 전체 인구는 11만명으로 줄었다. 평일 점심 시간에도 전통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이날 박일호 밀양시장은 기자와 함께 밀양 대표음식인 돼지국밥을 먹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았다. 박 시장은 전통시장에 들어서자, 자신을 알아보는 상인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시장이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호객 행위라도 하십시오”라면서 영업을 독려했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에게는 “시장입니다. 장보러 오셨습니까?”라며 먼저 인사했다.

밀양시는 최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장 내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상점을 매입해 새단장했다. 그리고 돼지국밥집과 지역특산품을 판매하는 ‘안테나숍’을 냈다. 깔끔한 식당과 기념품점을 찾는 외지인 유입이 늘면서 시장 활성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박 시장은 돼지국밥을 먹고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밀양 하면 농업 또는 시골 이미지, 송전탑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밀양은 농업과 첨단기술이 병존하는 새로운 도시로 바뀝니다.”

이에 앞서 기자는 밀양시청 시장실에서 박 시장을 인터뷰했다. 그의 임기 3년 동안 밀양시에 적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6월 말 밀양시는 정부가 선정한 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 유치에 성공했다. 밀양시가 2007년부터 추진해온 국가산업단지 유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진 것. 박 시장은 “농업도시 밀양의 변신이 시작됐다”고 자평했다. 나노산업은 10억분의 1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초미세가공 과학기술(NT)을 바탕으로 하는 소재 및 부품 사업을 말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나노산단이 들어설 밀양 일대 지역의 토지보상을 시작한다. 오는 2020년 말까지 약 3200억원이 투입되는 나노산단의 규모는 165만㎡(50만평). 정부는 또 2019년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상용화연구센터를 먼저 이곳에 건립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만 800억원 규모다. 나노산단에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나노폴리텍대학을 유치했고 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도 곧 개교하게 된다. 나노산단 배후도시 조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사업은 이미 설계에 들어갔다. 박 시장은 “나노산단 유치로 농업과 첨단산업이 공존하는 강소도시의 토대가 마련됐다”면서 “밀양이 다시 20만명 이상 거주하는 자족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일관된 시정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 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 유치가 갖는 의미와 파급효과는. “인근 창원기계산업단지가 생긴 이래 경남 지역에 산업단지가 추가 승인된 건 40여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밀양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에 나노산단 유치가 갖는 의미가 크다. 향후 6조2000억원의 경제유발효과와 4만명의 고용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나노 관련 기업 100여개를 유치할 계획이다. 인구 증가는 곧 현실이 될 것이다.”

2014년 7월 박 시장이 취임한 이후 밀양시 인구는 조금씩 증가해왔다. 그 전까지는 인구 감소세가 이어졌다. 현재 밀양시 인구는 10만8300여명.

- 어떤 기업을 산단에 유치할 계획인가. “현재 38개 중소기업과 입주 관련 MOU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이고 투자의향을 가진 30여개 업체와 입주 여부를 타진 중이다. 나노산단을 대표할 대기업을 유치하는 게 우리 숙제다. 나노기술 수요가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와 같은 대기업이다. 현대차 생산라인은 밀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인 울산에 있기 때문에 나노산단에도 관련 공장 건설을 고려해볼 만하다. 밀양시는 경남도청과 함께 지난 6월부터 기업유치단을 발족, 다양한 기업을 접촉하고 있다.”

박 시장은 밀양 자체보다 인근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나노산업 활성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양과 인접한 울산, 창원, 거제 등에는 자동차, 조선, 항공, 기계 등 국내를 대표하는 중화학공업이 밀집해 있다. 이 기업들은 탄소섬유와 같은 첨단 나노기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밀양이 이런 대기업에 나노융합 상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 밀양의 기존 산업인 농업에 대한 투자 계획은. “첨단산업도시로 변신을 꾀한다고 해서 농업을 버릴 수는 없다. 밀양은 농업을 통해 연간 8000억원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논농사와 밭농사는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수익성이 좋은 사과, 딸기, 깻잎, 감자, 양배추 등의 시설재배 농가들이 많다. 신공항 유치를 고려했을 정도로 평야가 넓고 농업에 유리한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 밀양이다.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재배시설을 확충해 6차 산업으로 농업을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나노산단과 함께 기존 농업을 육성하는 ‘투트랙 시정’이 필요하다.”

- 밀양이 최근 관광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던데. “올해로 59회째를 맞은 밀양아리랑 축제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밀양강오딧세이’로 이름 붙인 메인 행사는 기존 축제와 달리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1400여명의 시민배우가 참여하는 연극·뮤지컬에, 첨단 영상을 더한 종합예술을 선보였다. 축제를 보기 위해 약 4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200억원 이상의 경제유발효과도 거뒀다. 서울이나 해외에서도 접하기 힘든 대규모 공연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내년에도 다시 이 축제에 오겠다고 입을 모았다.”

- 환경 전문가로서의 장점을 살린 사업도 추진하고 있나. “환경부 출신 시장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 업무에서 인력과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환경과 복지다. 지역을 가꾸는 데 있어서 쓰레기 처리, 오·폐수 관리, 위생 점검 등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밀양시는 기상과학체험과 우주천문대를 결합한 새로운 예산지원 사업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바이오연구지원센터, 생태관광센터 및 국가생태탐방로 조성 등의 사업예산을 가장 많이 유치한 지자체 중 하나다.”

행시 34회 출신의 박 시장은 1990년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환경부 부이사관과 청와대 행정관을 거친 그는 2014년 밀양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밀양군수였다. “환경은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울 과학소재와 연결된다. 밀양시는 기상체험과 생태관광을 추진함에 있어서 아이들이 창조적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접목해왔다.”

- 밀양 송전탑 설치 반대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나. “그렇다. 송전탑이 완공돼 송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일대 주민들은 피해에 대한 완전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도시 지역으로의 송전을 위해 들어선 송전탑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본 게 사실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단체와 연계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시는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

박 시장은 나노산단 조성 등 자신이 부임하고 나서 진행된 크고작은 사업들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시정을 이끌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차별화된 시정을 통해 밀양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생각이다. 나노산단은 밀양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라는 점에서 적어도 4~5년간 심혈을 기울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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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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