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한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
낙마한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지난 7월 15일 오전 다음과 같은 짤막한 보도를 했다. “일전에 당 중앙위원회는 결정했다. 쑨정차이(孫政才) 동지가 충칭(重慶)시 당위원회 서기 직무를 겸직하지 않기로. 천민얼(陳敏爾) 동지가 충칭시 당위원회 상무위원·서기를 맡고 구이저우(貴州)성 당위원회 서기 직무를 담당하지 않기로 당 중앙위원회는 아울러 결정했다. 구이저우성 당위원회 서기에는 쑨즈강(孫志剛) 동지가 임명됐다.”

중국공산당은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다. 지난해 말 기준 8600만명이 넘는 당원들 가운데 3000명 정도가 대표로 선출되어 5년마다 한 차례씩 개최되는 전국대표대회(全大)에 참석한다. 전대의 임무는 새로운 당 중앙위원과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중앙위원은 현재 376명으로, 이들의 임무는 해마다 가을에 한 차례씩 열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中全會)에 참가해서 그 다음해의 당과 정부 운용전략을 승인하는 일이다. 국가 운용전략은 25명으로 이루어진 중앙정치국에서 마련해서 중전회에 넘긴다. 정치국 회의는 유사시에 수시로 열린다.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7명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들은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에 함께 거주한다. 이들은 수시로 만나 차를 마시며 국가 중대사를 의논한다. 중난하이는 베이징 한가운데 고궁(故宮) 서쪽에 인접한 3개의 호수 주변으로, 부총리급 이상의 지도자들이 집단거주하는 곳이다. 이들은 매일 당 중앙서기처에서 국가 중대사를 요약한 보고서를 회람하면서 중요사에 대해서는 모여서 의논을 한다. 현재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64), 국무원 총리 리커창(李克强·62),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장더장(張德江·71),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위정성(劉正聲·72), 중앙당교 교장 류윈산(劉云山·70),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王岐山·69), 부총리 장가오리(張高麗·71)이다.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구성은 전 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과 시진핑의 전임 당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 사이의 정치 타협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가운데 총리 리커창만이 후진타오가 길러낸 인물이고, 시진핑 이하 6인 모두는 장쩌민의 입김에 따라 선출된 인물들이다.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오는 가을 개최 예정인 제19차 당 대표대회에서 유임될 수 있는 사람은 시진핑과 리커창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5인은 모두 퇴진한다는 것이 5년 전에 열린 제18차 당 대표대회의 배후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합의한 결과다. 일종의 정치적 타협안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 개혁에만 착수하고 정치 개혁은 보류했다. 대신 은퇴한 80대 노인들이 수렴청정으로 좌우하던 정치 구조를 바꿨다. 이른바 ‘7상8하’(67세까지는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담당할 수 있지만 68세부터는 일체의 당과 정부 고위직에 임명되지 못한다는 원칙)를 덩의 후계자인 장쩌민이 확립하도록 해서 정치안정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후보들 중에는 현재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이번에 실각한 쑨정차이(54) 충칭시 당 서기를 비롯해서, 리위안차오(李源朝·67) 국가부주석, 왕양(汪洋·62) 부총리, 후춘화(胡春華·54) 광둥(廣東)성 당 서기, 한정(韓正·63) 상하이시 당 서기 겸 시장, 쑨춘란(孫春蘭·여·67) 통일전선공작부장, 자오러지(趙樂際·60) 당 중앙서기처 서기 겸 조직부장, 류치바오(劉奇葆·64) 당 중앙서기처 서기 겸 선전부장, 장춘시엔(張春賢·64) 신장위구르자치구 당 서기, 천민얼 신임 충칭시 당 서기 등 9명이다.

이들 중에서 후춘화와 쑨정차이는 각각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와 총리로 내정되어 이번 19차 당 대회에서 가장 연소한 나이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예정이었다. 시진핑 당 총서기가 그런 쑨정차이를 충칭시 당 서기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자신의 홍보를 담당하던 천민얼을 가장 가난한 성 가운데 하나인 구이저우성 당 서기에서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충칭시의 당 서기로 옮겼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잘 짜여지고 질서정연하게 후계자를 임명하도록 설계한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정치 플랜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번 19차 당 대회를 계기로 3세대 주자 장쩌민을 밀어내고 4세대 대표로서 막후 수렴청정을 하려던 후진타오의 정치 설계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뜻한다.

시진핑이 쑨정차이를 날림으로써 전임 당 총서기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마련한 정치 스케줄을 무너뜨린 데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5년 동안 자신이 끌어온 반(反)부패 드라이브 과정에서 오른팔 역할을 해준 69세의 왕치산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유임시킨다면 바로 7상8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개혁개방과 함께 확립된 인사원칙을 무너뜨리고 “이제는 내 원칙대로 한다”는 도전장을 당 원로들을 향해 내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과 빠른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7상8하 원칙이 있었다. 덩샤오핑이 내건 ‘연경화(年輕化)’ 구상을 바탕으로 이 원칙이 잘 확립되고 적용된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별다른 풍파 없이 유지되어오던 중국공산당 내부 정치는 30여년 만에 그 기조가 무너지고 그 빈자리에 시진핑의 정치 변주곡(變奏曲)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난 5년 동안 대외적으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추구해온 시진핑은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실크로드 건설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착수하면서 이른바 ‘중국의 꿈’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14억 중국인들에게 내걸었다. 제2의 마오쩌둥(毛澤東)이 되려는 야심의 싹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 개혁에만 치중하고 정치 개혁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진핑이 울리기 시작한 변주곡이 혹시 새로운 중국 정치 혼란의 비극의 서막이 되지는 않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게 됐다. 그런 가운데 중국공산당은 제19차 당 대회를 오는 10월 또는 11월에 개최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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