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제헌절 경축행사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김동철,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7일 제헌절 경축행사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김동철,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을 선(善)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야당이라면, 보수를 표방한다면 힘을 합쳐 ‘포퓰리즘 독재’에 맞서야 한다. 작은 차이로 인해 보수가 연대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선 단일 교섭단체처럼 움직이는 연대안(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원내 제4당인 바른정당 내부에서 보수연대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론이 다시 불붙게 될지 주목된다.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은 최근 “집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보수 야당이 뭉쳐야 한다”면서 대여(大輿) 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가 70%대의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을 바탕으로 포퓰리즘적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게 김 의원의 생각이다. 정부는 지난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을 결정하고 나서 탈(脫)원전 공론화에 착수했다. 사드(THAAD) 배치 때 과정과 절차를 문제 삼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 추진에서는 과속 페달을 밟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1만원 인상안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시간당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인상한 7530원으로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가열되자 지난 7월 19일 야당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에서 “1년 해보고 속도를 조절할지 더 나아갈지 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 스스로 실험적 결정을 내렸음을 시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증세(增稅) 문제에 대해서도 집권여당은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부자증세를 추진 중이다. 야당은 ‘빈부(貧富) 편 가르기 증세’라고 반발했지만 야당의 주장에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집권여당이 내놓은 개혁정책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사안 위주로 추진되는 탓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는 양상이다. 김 의원은 이와 같은 집권여당의 독주를 ‘포퓰리즘 독재’로 규정하고 대여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보수 야당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내다봤다.

야권 연대 또는 보수 통합 논의가 바른정당 내부에서 터져나올 경우 당내 노선 투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혜훈 대표 체제는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에 앞서 자강론(自强論)을 얘기하고 있다. 이혜훈 대표는 한국당과의 통합 또는 연대론이 제기된 것과 관련,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서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은 소멸되는 게 운명인 난파선이다. 거기 있으면 함께 소멸될 수밖에 없다. 한시라도 빨리 ‘바른정당 구조선’에 올라타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소멸될 정당이기 때문에 통합이나 연대론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원내 의석 수 20석에 불과한 바른정당 안에서는 지도부와 다른 입장을 피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난 대선 유승민 후보가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등 대표 정책이 전통적 보수와 거리감이 있거나 포퓰리즘적 요소가 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보수연합 논의에 앞서 조만간 바른정당 내부의 이념투쟁이 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태 의원도 “내부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금 바른정당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패션 보수 이미지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자 바른정당은 환영 논평을 냈는데,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 대선 때 내세웠던 공약이기 때문에 그런 논평을 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난 대선 때 공약을 재점검하자. 이런 얘기를 꺼내면 나를 반동으로 모는 당내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바른정당 내부에는 김 의원의 주장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이 적어도 10여명 안팎이라고 한다. 김무성, 이종구, 주호영, 정병국 의원 등은 보수통합론을 두고 김 의원과 교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당에서 촉발될 보수통합 논의에 한국당 일부 의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 창당을 함께했다가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간 김성태·김학용·홍문표·권성동·장제원 의원 등은 바른정당 내부의 이른바 비(非)유승민계 의원들과 자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통합 논의가 시작되려면 홍준표 대표가 지금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홍 대표는 “바른정당은 기생정당”이라며 흡수통합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표 취임 후 관례상 타(他) 정당을 인사차 방문할 때 바른정당은 찾지 않았다. 홍 대표는 바른정당에서 주장하는 친박 핵심인사의 정리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 혁신위원장에 보수인사인 류석춘 교수를 임명하며 정통보수로서 입지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보수진영 한 전략가는 “통합 논의를 시도하는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 나섰던 홍준표 전 지사가 자유한국당 대표가 됐고, 바른정당은 친유승민계 이혜훈 의원이 당대표다. 이들이 다시 한 테이블에 앉으려면 묵은 앙금을 털어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0월 이후 가시적 성과물 만들어야

바른정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야권 연대 대상에는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김용태 의원의 말이다. “처음부터 물리적 합당을 추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으면 옥석을 구별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는 가설정당을 세워 김병준 전 국무총리 내정자,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원외인사까지 하나로 모은 뒤 통합하면 비례대표 의원 등 각 정당의 자산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다.”

보수야당에서 연대와 통합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 때문이다. 이대로 정국 주도권을 집권여당에 내어줄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연대와 통합 논의를 시작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내려지는 10월 이후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동안 잠잠했던 김무성 의원도 최근 공개활동을 시작했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 7월 22일 경기도 수원시 한 카페에서 열린 바른정당 입당설명회에 강연자로 나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중도 실용의 길”을 강조한 남경필 경기지사를 향해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뤄야 성공하는 정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배짱도 좋다. 사람이 죽으려면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면서 핀잔을 줬다. 김 의원은 이런 말을 웃으며 건넸지만 내심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한국당 일각에서도 내년 지방선거 때 부산과 경남의 광역단체장 후보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처럼 현 정부의 핵심 인물이 나올 경우 지역 수성(守城)이 쉽지 않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이런 분위기가 고조된다면 보수진영의 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될 공산이 크다. 자유한국당 이재영 최고위원도 이와 관련 “대선 패배 후 더 처절한 패배를 맛봐야만 그 토양 위에서 보수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대로 가다간 보수의 싹이 잘리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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