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옥 입구에서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8월 1일 시점, 국민의당 얘기다. 이날 국회 부의장실에서 박주선(68)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4선의 호남 중진은 한결 여유를 되찾은 표정이었다. 전날인 7월 31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문준용 취업 제보와 관련해 국민의당 윗선은 허위 여부를 몰랐다’는 요지였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당의 뿌리마저 흔들거렸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왜 그런 일이 일어났나.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제보를 조작한 이유미 말이다.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공로가 인정될 거다, 이런 공명심이 과했다.”

박 부의장은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이유미는 평소 행실을 봤을 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내용, 한 당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머리 자르기’라 했다. “그뿐 아니다. ‘미필적 고의’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여당 대표가 검찰에 수사지침을 내린 거다. 야당 관련 사안을 두고 말이다. 정치 검찰을 키우고 이용하겠다는 얘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겸 검찰총장’은 앞으로 검찰개혁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박 부의장은 “미필적 고의를 그런 식으로 적용하면 형법의 죄형법정주의가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박 부의장은 대검 중수부 출신이다. 인터뷰 내내 박 부의장은 ‘추미애’ 뒤에 ‘당대표 겸 검찰총장’이란 긴 호칭을 붙였다.

- ‘문준용 특검’ 요구는 유효한가. “이번 수사가 제대로 된 수사가 되려면 문준용 특혜 비리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이유미는 철저히 조사하고 문준용씨 의혹은 철저히 안 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 대상은 안 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현직 대통령과 그 아들의 입장이 명쾌하게 밝혀져 떳떳해지기 위해 국정조사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추 대표는 8월 1일부터 휴가를 떠났다. 그 기간에도 국민의당과 각을 세웠다. SNS를 통해서다. 시도 바쳤다. 정호승 시인의 ‘바닥에 대하여’다. 추 대표는 ‘아직 바닥이 싫은 모양입니다. 빨리 딛고 일어서길 바라며 시 한 수 드립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뭘 믿고 여당 대표가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 부의장의 말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이 방에 와 사과했다. ‘추미애 대표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여당 대표를 두고 청와대에서 대리 사과를 한 거다. 그러면 대표 본인은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임 실장의 사과 직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상반된 발표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허수아비 취급을 받은 거니 추 대표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나. 반발을 의식해 윤 수석이 얼버무리려 한 거다. 이게 대통령을 모시는 수석의 자세인가. 비겁하다.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추 대표가 굳이 ‘바닥’을 언급하지 않아도, 수치가 상황을 보여준다. 7월 넷째 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당은 4%를 받았다.(한국갤럽 4%, 리얼미터 4.9%) 양 조사 모두에서 4%대를 찍었다. 창당 이래 최초다. ‘호남 민심 위에 떠 있는 돛단배’. 박 부의장이 국민의당을 두고 한 표현이다. 한국갤럽 기준, 광주·전라에서는 9%가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63%를 기록했다.

- 정당 지지도가 계속 떨어진다. “여론조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조사의 응답률이 낮지 않나. 호남 민심은 수치와 다르다.”

7월 넷째 주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의 응답률은 19%였다.

- 수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감안해도 너무 낮지 않나. “대선 직후엔 집권당과 대통령이 여론의 블랙홀이 된다. 대선에서 패배하면, 지지자였던 국민도 현직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을 지지하게 된다는 얘기다. 일정 기간 동안은 지지율이 내려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이유미 사건이 터져서 더 내려갔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전 양당제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나름의 예언인데, 홍 대표는 예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다. 국민이 만들어준 협치 구도를 특정 정치 세력이 부정하는 건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태다. 궤변이다. 시중에 ‘홍준표스럽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7월에 제가 경고했다. 우리 당 당원들 앞에 홍 대표가 나타나면 뺨 맞을 수 있다고.”

-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하면 더 큰 실익이 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봐라, 국민의당이 있으니 문 대통령이 호남에 관심을 보이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지만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이다. 호남 총리? 국민의당이 있으니 가능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남 배려가 절대 지금 같지 않을 거다. 노무현 정권 때 입증됐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대통령이 단일대오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순간, 호남은 다시 소외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은 절대 불가하다는 말씀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리잔 얘긴가. 그에 따른 정치 비용은 상상할 수 없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다당 체제다. 정부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체제지만 국민 입장에선 여당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효과도 있다.”

- ‘호남당’ ‘호남 정치’를 외치는 게 구태 정치로 보일 수 있다. “영호남은 한국 정치의 양대 산맥이다. 영남과 달리 호남은 아직도 차별받고 있다. 대통령 후보 하나 못 내고 들러리 선 것 아닌가. 정치권은 호남을 이용하면서 호남의 자존심은 세워주지 않는다.”

- 바른정당 최고위원 중엔 ‘지방선거 때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공조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저에게 직접 그런 말을 한 분도 있다. 지역주의 타파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전에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이 같아야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점치기에는 시기상조다.”

-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출마를 두고 당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당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 안 전 대표의 당권 도전을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칭송하는 건 적절치 않다.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는 거다. 당이 애초의 창당 목표와 방향에서 일탈하면 어떡하나 하는 사명감 때문이다. 안 전 대표뿐 아니라 되도록 많은 후보가 등판해야 컨벤션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 부의장은 기네스 한국 기록 보유자다. ‘네 번 구속 네 번 무죄’. 1999년 옷 로비 사건, 2002년 나라종금 사건, 2005년 현대 비자금 사건, 2012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다. 2014년에 기네스협회에서 기록 인증서도 받았다. 기네스협회는 참으로 여러 기록을 살피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궁금해졌다. 거듭된 구속에도 박 부의장은 어떻게 4선에 성공했을까.

인터뷰 전 그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약속보다 30분 일찍 부의장실로 갔다. 손님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됐을까, 꼬마들이 뭐라뭐라 재잘대고 있었다. 장단을 맞추는 박 부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 후 들어오시다가 국회에 견학을 온 아이들과 마주쳤는데 광주에서 왔다더라. 음료수라도 마시고 가라고 손잡고 오셨다.” 보좌관이 소곤대며 상황을 설명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엄마와 서울 나들이를 온 형제란다. 이쯤되면 상당한 친화력이다. 잠재 유권자 관리라 낮춰본대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직접 만나 보면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수석 합격, 대검 수사기획관이라는 이력이 잊히는 서민적인 목소리 톤도 4선 비결 중 하나인 듯하다. 목소리뿐 아니라, 실제 서민 출신이다.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도,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못 갈 뻔했다. 행상 다니던 홀어머니가 피를 팔아 학비를 댔다. 그 모친이 지금은 치매를 앓고 있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박 부의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굴곡 많았던 정치 인생, 좋았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내정됐는데 처음엔 안 가려 했다. 법률비서관 정도 되는 자리인줄 알았다. 검찰에선 대통령 곁으로 가줬으면 하더라. 정권이 교체됐으니 불안했던 거다. 가 보니 지금의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을 겸하는 자리더라. 인사 추천과 검증을 도맡아 했으니까.”

법무비서관 시절 DJ와의 일화 하나. “내정되고 김홍일 당시 의원이 만나자고 하더라. ‘아버지 특유의 제스처가 있다. 보고 도중 그 제스처를 하시면 다음 보고로 넘어가는 편이 좋을 거다.’ 자신의 귓불을 당기고 이마를 문지르는 등의 동작이었다. 청와대 생활을 하며 한 번도 문제의 제스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강원랜드 사장 임명할 때였다. DJ가 임명하고 싶어했던 인사가 있었다. 측근이었다. 검증해 보니 문제가 있었다. 임명에 반대하는 보고를 시작하자마자 귓불을 당기시더라. ‘아 저 동작이구나.’ 그래도 끝까지 보고를 했다. ‘대통령께서 역사의 대통령으로 남으셨으면 한다’며 돌아섰다. 결국 그 인사는 불발됐다.”

- 당시 강원랜드 후보였던 인사에게 원망을 들었겠다. “나중에 제가 의원이 된 후 그 사람을 만났다. 이런 말을 하더라. ‘당시엔 박 의원을 원망했다. 김 대통령께서 아들 셋이 수감된 후 한탄하셨다. 내 옆에 박주선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저를 원망하는 마음을 거뒀단다.”

- 문 대통령의 인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스스로 설정한 5원칙을 위반한 인사도 임명을 강행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입장 표명 한마디 안 했다. 청와대 측에선 ‘인사 원칙은 있었지만 기준이 구체적으로 없었다’고 해명했다. 원칙에 무슨 기준이 있나. 청와대 대변인이 ‘인사청문회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도 했다. 참고자료면 시간을 들여 왜 하나. 이걸 비판하니, ‘국정 발목잡기’냐, ‘대통령에 대한 선전포고냐’ 하는 반응이 나온다. 국회의 정당한 비판도 국정 발목잡기 공세로 몰면 무슨 협치가 되겠나. 이게 다 ‘보은 인사’ ‘캠프 인사’를 하려 해서다.”

벌써부터 여의도에서는 ‘국회 스토브 리그’ 개막을 점치고 있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부터다. 스토브 리그는 스포츠팀이 다음 시즌에 대비해 인력을 충원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간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에서 의원을 빼내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거란 얘기다.

- 여당이 국민의당 공중분해를 노리고 공세를 퍼붓는 것 아닌가. “아직 감지하지 못했다. 그럴 위험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겉으로 검찰 개혁을 외치며 실제론 검찰을 이용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키워드

#인터뷰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