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70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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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차이나 워치] 중국 지도자들의 황제 놀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가운데).
“계속되는 중국의 굴기(崛起·rise)로 권위주의적인 독재정치가 부활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를 통해 권위주의적인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정권들과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치 기술과 도구를 서로 교류해가며 발전시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악에 대한 독재’를 선포했으며, 몽골에서는 몽골 유도협회장을 오래 지내던 칼트마 바툴가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두테르테와 바툴가는 필리핀과 몽골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는 8월 8일 한국고등교육재단(KFAS) 초청으로 방한해 ‘민주주의의 위기: 그 현상과 원인, 정책 대응’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서 흥미를 끌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후퇴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포퓰리즘, 소셜미디어 때문에 확대되고 있는 양극화와 관용적인 정신의 쇠퇴, 중국의 부상과 군사력 투사, 권위주의 정치의 부활 등에 대한 강연이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는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있으며, 한국과 대만에서도 민주주의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어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중국 내에서 민주주의가 자라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연은 한동안 잊고 있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다시 떠올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난 10년 넘게 계속된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 갈수록 덩치가 커져가는 GDP, 날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군사력, 그리고 우리에 대한 사드 배치 반대 압력 등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중국의 근육만 쳐다보고 위기감을 키워가며 살아왔다. 중국이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당국가(party state)로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깜박 잊고 있었다.
   
   정확히 9년 전인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개막을 선언한 베이징올림픽은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라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개막식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천제가 거처하는 황궁이라는 뜻의 ‘자미(紫薇)’에서 가져온 자금성(紫禁城) 한가운데에는 남북을 관통하는 축선이 그려져 있다. 그 자금성의 축선을 북쪽으로 12㎞ 연장한 곳에 지어올린 냐오차오(鳥巢·Bird Nest) 스타디움에 중국 전설에 나오는 불사조 봉황이 하늘로부터 되돌아온다는 줄거리를 형상화한 개막식은 오후 8시에 시작해서 밤 12시 넘어까지 계속됐다.
   
   안 그래도 더운 베이징의 8월 8일 밤 8시에 새 둥지 모양의 스타디움 안은 40도가 훨씬 넘는 더위였다. 초대된 100여개 국가의 대통령과 총리, 정치 지도자, 세계의 중요 기업 대표들은 부부 동반으로 일반 관중석과 별로 다르지 않은 좌석에 앉아 말 그대로 고구마나 감자처럼 푹푹 삶아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 그리고 8명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널찍한 책상과 편안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 다리 밑에서 나오는 에어컨의 냉기를 쐬며 의젓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동서양의 국가원수급 지도자들은 부부 동반으로 겨우 엉덩이만 붙일 수 있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 온몸에 땀을 흘리다가 살아남기 위해서 화장실을 연신 드나들었다. 유일하게 그곳에서 나오는 에어컨의 찬바람을 쐬어 정신을 차리고는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좌석이 화장실 근처였다는 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화장실을 드나드는 전 세계 지도자들을 볼 때마다 연신 자리에서 일어나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하이!”라고 친근한 인사를 건네 “역시 미국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듣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날 밤 100여개 국가의 지도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의젓함을 유지한 것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영남이었는데 놀랍게도 김영남이 앉은 자리, 김영남의 뒤통수 바로 뒤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뿜어나오는 구멍이 있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2008년 8월 8일 밤 8시에 개막된 베이징올림픽 개막행사에 참석했던 100여개 국가의 국가원수와 지도자들은 모두 다 그런 중국 지도자들의 ‘암수(暗手)’ 때문에 분노와 불안감에 치를 떨어야 했을 것이다.
   
   시진핑(習近平)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그런 황제놀음에 재미를 붙였는지 지난해 항저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나 올해 베이징(北京) 외곽의 옌치후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일대일로(一帶一路) 국가지도자 회의 때 외국 정상들을 문 밖에 모여 기다리게 했다. 외국 정상들이 먼저 입장한 시진핑에게 차례로 다가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악수를 하는 광경을 연출했다.
   
   그런 흐름을 타고 베이징 인민대학의 자오팅양(趙汀陽)이란 철학교수는 “주권국가들 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미국과 유럽의 베스트팔렌 체제는 지난 300년간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침해로 불평등한 국제사회를 만들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2000년 동안 계속된 중국의 천하체계는 힘 있는 중화국가가 약소국을 보호하는 체제로, 천하체계가 부활되어야 국제사회가 비로소 진정한 평등사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천하체계론’이라는 책까지 출판해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천재’라는 말을 듣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비록 식민지이기는 하나 민주정치를 하던 홍콩과 마카오를 접수한 뒤에 민주적 선거제도 대신 중국공산당이 후보를 제시하는 비민주를 정착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북한의 김씨 왕조 독재체제에 대해서도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끝내 원유 수송파이프 닫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은근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 대해 “중국 때문에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연은 새삼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한국이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촉구는 수교 25주년을 썰렁한 분위기에서 맞는 한·중 관계의 미래에 특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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