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대구에서 첫 번째 ‘전국 순회 토크쇼’를 개최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6일 대구에서 첫 번째 ‘전국 순회 토크쇼’를 개최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이 된 지 8월 17일로 100일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에 대한 평가는 많은 언론에서 다뤘지만 국정운영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제1야당의 현주소에 대해 언론은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정권 초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세가 높은 탓도 있겠으나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의 존재감이 과거 야당에 비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 당시 한나라당 간판으로 집권여당이 됐다. 2012년 12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며 여당으로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 당명만 새누리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17년 5·9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다시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했다. 5·9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고 9년 만에 야당이 됐다. 한국당은 대선 패배 이후 보수 야당으로서 제자리를 잡았을까. 보수진영 안팎에서는 소위 “보수가 궤멸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당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공동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과정이 상세하게 보도될 때마다 한국당도 비난의 화살을 함께 받으며 ‘탄핵 프레임’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한국당 내부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기용됐던 인사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또 일부 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은 친박 실세로 불리며 당 사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 일각에서 “친박세력의 인적청산 없이는 당 쇄신이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때마다 홍준표 대표는 인적청산보다 ‘통합’을 선택했다. 홍 대표는 7월 3일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에도 친박인사들을 끌어안으며 어정쩡한 상태로 당을 이끌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지금 우리 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김관옥 계명대 교수의 평가를 들어보자. “탄핵정국을 거친 뒤 자유한국당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탄핵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차례 기회를 놓쳤다. 107명의 국회의원들은 홍 대표를 내세워 소수 지지층이라도 결집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걸 선택했다. 홍 대표도 정치자금법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당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한국당 혁신위원회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 7월 10일 혁신위원장에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임명했다. 류 위원장은 보수색채가 강한 인사다. 홍 대표가 당을 쇄신하기 위해 중도성향의 인물을 영입할 것이라는 당내 소신파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한국당이 보수색채가 강한 류 교수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이념적 유연성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의 분석이다. “홍준표 대표와 류석춘 혁신위원장의 코드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쇄신을 바라는 민심의 방향성과는 어긋나는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춘 혁신보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대로 다소 안이하게 혁신의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유권자들은 보고 있다.”

국회 의석수 107석을 보유한 한국당은 야당생활 100일이 지난 지금도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채 문재인 정권이 주도하는 정국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말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10% 수준으로, 바른정당(8%)과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50%로 나타났다.

신율 명지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은 한국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민정계, 민주계 그리고 공화계열이 하나로 묶였다가 신민주공화당이 떨어져 나가면서 민정계와 민주계가 보수정당의 큰 축을 이뤘다. 민정·민주, 두 계파는 당의 혁신이 필요할 때 바통을 주고받으며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당은 이런 균형이 무너진 채 이념적 유연성을 상실했다. 한국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함으로써 한국당의 이념적 경직성이 커졌다.”

보수진영의 권위가 붕괴된 상황을 한국당이 봉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오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보수는 적어도 경제와 안보에 있어서 진보세력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런 상식이 탄핵을 거치며 무너졌다. 보수의 표상으로 인식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실정에 국민이 등을 돌렸다. 단순히 지지율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다. 보수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공유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우파 진영 논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한국 정치가 결국 좌·우·중도의 4:4:2 분할구도로 회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정치 상황은 불과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등장하며 보수 대 진보의 1 대 1 구도가 깨졌다. 탄핵으로 인해 보수정당이 분열해 현재는 5당 체제의 다당제 구도가 됐다. 집권 민주당의 실정이 한국당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 아니다.

김관옥 교수의 말이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양당제 구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판이다. 국민은 다당제 구도를 선택했다. 상대의 실수가 아니라 각 정당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가결될 경우 다당제 구도는 더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오섭 전 선임행정관은 “양당 구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배경에는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단임제 같은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헌이 이뤄질 것이다. 정당이 자기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어부지리’로 정권을 가져오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보수정당이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역량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진영 전략가의 조언이다. “한국당은 보수의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탄핵은 광장의 혁명적 움직임을 제도 속에서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코리아 패싱’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어떤 방향을 주문하고 그렇게 문재인 정부가 나아가겠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관행적으로 비판만 한다거나, 그마저도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비쳐진다면 국민은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보수정당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대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보수세력은 대선보다 더 참혹한 성적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준한 교수는 “비주류 중심의 정당 운영이 갖는 역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야당으로서 능력을 보여줄 새로운 리더십을 보강해야 한다”면서 “콘텐츠도 강화해 야당다운 전투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바른정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수진영만을 상대로 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을 표방하고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신율 교수 역시 바른정당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는 데 동의한다. “홍 대표는 원래 이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정치인이었다. 대선을 치르면서 어쩔 수 없이 오른쪽으로 갔던 것인데, 아직은 이게 회복이 안 되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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