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패배한 지 3개월여 만에 다시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끌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선 패배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 취업특혜 의혹 제보조작 파문으로 당 안팎의 책임론은 더욱 거세진 상황이었지만 안 전 대표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당대표 경선의 상대자가 호남에 기반을 둔 천정배(광주 서구을)·정동영(전북 전주병) 의원이라는 점에서 안 전 대표의 부담은 더 크다.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23명은 호남이 지역구다. 호남 민심의 선택이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호남 출신 중량급 정치인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친안(親安) 성향 의원이었던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을)까지 당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안 전 대표는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됐다.
안철수 집중 공격하는 세 후보
8월 27일 치러지는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은 안 전 대표에 대한 나머지 세 후보의 집중 공세로 달궈지고 있다. 지난 8월 14일 시작된 첫 TV토론에서 정동영 의원은 “안 후보가 ‘당이 소멸 위기라서 나왔다’는 말을 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라며 “출마하려 할 때 당내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는데, 좀 더 열어놓고 듣고 결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그동안 이 당이 시스템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소수 측근에 의해 움직여졌다”고도 했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가 중도 하차했고, 이번 선거는 그 대표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보궐선거”라며 “그 자리를 패배의 장본인일 뿐 아니라 패배의 책임이 더 큰 안 전 대표가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고 했다. 천 의원은 “안 전 대표가 할 일은 지난 대선 때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뛴 천정배, 정동영, 이언주를 꺾고 명분 없는 당대표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언주 의원도 “본인만이 당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마음에 안 들지만 존중했다”며 “이분들이 다 반대하고 뒤돌아 서 있는 상황에서 저 같으면 삼고초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밤늦게 집 앞에 찾아가서라도 울면서 설득할 텐데 안 전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토론 과정에서 햇볕정책 등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지지자들이 헷갈린 적이 있다”고 했다.
이날 후보들은 호남 민심을 겨냥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관련 논란을 거듭하기도 했다. 천 의원이 “안 전 대표가 대선 당시 ‘햇볕정책에 공과 과가 모두 있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진보와 보수 모두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하자, 안 전 대표는 “그 발언은 한계 또는 아쉬움에 대한 표현이었다”며 “햇볕정책이란 아시다시피 정말 튼튼한 안보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전쟁을 방지하고 북한과 교류를 통해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냐”고 했다. 정 의원이 다시 “햇볕정책에 공과 과가 있다고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하자, 안 전 대표는 “정책은 선택하는 거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라며 “정책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서도 “옳지 않았던,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던 부분”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국민의당 대표 경선의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 전 대표는 중도층을 겨냥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입장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는 현 상황에서 대북 유화정책을 적극 옹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 민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중시하기 때문에 안 전 대표로서는 이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천정배·정동영 의원은 대북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 대화파인 데다가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햇볕정책을 통해 안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안 전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당원 24만 중 호남이 절반 넘어
안 전 대표가 당 안팎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출마했지만 여전히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핵심은 호남 민심의 선택이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는 국민의당 당원 24만여명이 참여한다. 이 중 전남의 당원이 가장 많다. 5만여명이다. 전북은 4만3000여명, 광주는 3만여명이다. 세 지역을 합하면 국민의당 전체 당원의 50%를 넘는다. 서울은 3만3000여명, 경기는 3만여명이고 다른 지역은 1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영남 지역은 다 합쳐도 2만명이 되지 않는다. 부산 출신 안 전 대표가 영남 지역에서 몰표를 얻는다고 해도 호남 표심을 잡지 못하면 당대표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안 전 대표 측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영남 지역 등에서 상당히 유리한 구도”라고 하면서도 “역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호남 당원들의 표심”이라고 했다.
호남의 당심에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이 안 전 대표의 출마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에 앞장서기도 했다. 또 현실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직계로 여겨지는 동교동계 인사들도 안 전 대표의 출마에 ‘탈당’ ‘출당’까지 언급하며 격렬하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안 전 대표가 막상 출마를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당원들을 만나면서 반안(反安) 정서는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자숙해야 할 시점에 갑자기 당대표 경선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당혹스러워하던 당원들 중 일부가 인지도나 전국적 지지율을 생각하면 안 전 대표에게 한 번 더 정치적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문제는 안 전 대표가 그런 기대에 부응할 만한 비전과 감동을 경선 기간 중에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다”고 했다.
양날의 검 서울시장 출마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8월 16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천정배 의원이 거론한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론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겠다”고 했다. “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여건이 될 때 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 그 당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도 했다. 안 전 대표는 8월 14일 TV토론회에서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일은 뭐든지 하겠다는 각오다. 당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했었다.
당내에서는 안 전 대표가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해 차기 대권 도전을 향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총지휘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에도 도전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론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