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6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적(黨籍) 정리 문제에 시동을 걸었다. 박 전 대통령을 한국당에서 내보내는 출당(黜黨)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당의 전신인 옛 새누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2012년 새누리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서 당선됐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돼 구속수감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지금도 당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1호 당원’이란 상징적 존재였던 박 전 대통령을 출당하는 건 박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 선언이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형사재판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출당에 유보적이었던 홍 대표가 대표 취임 한 달 반 만에 생각을 바꾼 배경을 두고 ‘보수 재건’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은 무한책임 지는 자리”

홍 대표는 지난 8월 16일 대구를 찾아 “박 전 대통령 출당 논의가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출당 문제를 처음 언급했다. 그가 전국 민심 투어 첫 방문지로 찾은 대구 두류공원에서 연 토크콘서트에서 ‘박 전 대통령 석방에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 시민의 물음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는 박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가 있던 곳이고, 탄핵 국면에서 그에 대한 동정론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곳이다. 그런 대구에서 작심한 듯 홍 대표가 ‘박근혜 출당’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20일에는 더 나아가 페이스북에서 “보수·우파가 더는 실패한 구(舊)체제를 안고 갈 수 없다.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 대표는 애초 대구에서 출당 발언을 하면서 당내 파장을 예상했던 듯하다. 당장 이 발언 이후 류여해 최고위원 등 일부 당내 인사가 “출당 발언은 부적절하다”며 반발하자 측근들을 통해 “출당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해 보자는 뜻”이라며 수위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나흘 만에 페이스북을 통해 출당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하며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 당내 친박계의 반발 수위가 강하지 않은 반면, 박 전 대통령 출당이 필요하다는 찬성 여론도 당내에 만만치 않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 홍 대표의 연이은 출당 발언에 대부분의 친박계 인사는 일단 ‘침묵’하고 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 추진 이유로 ‘대통령 무한책임론’을 들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6일 대구 토크콘서트에서 “대통령은 결과에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박 전 대통령은 죄가 된다 안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정을 잘못 운영한 벌을 받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1심 재판에서 검찰과 특검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다투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적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출당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홍 대표의 이런 생각에는 박 전 대통령이 현재의 보수 정치권에 ‘자산’이기보다는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실제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 과정은 물론 이후 재판 과정에서 보인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기보다) ‘정치적으로 내가 책임을 지겠다. (대신) 내 새끼(부하)들은 풀어달라’는 식으로 대처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 등이 이런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홍 대표 측근은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과거 부하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듯한 모습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보수층 안에서도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자세로 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정치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형사적 유·무죄를 다투는 데 치중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정치지도자로서 품위를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실망이 출당 추진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 재건 위해 넘어야 할 산”

홍 대표는 한국당 대선후보로 나선 지난 대선 때나 한국당 7·3 전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집권하면 박 전 대통령이 여론재판이 아닌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이 나올 때마다 “시체에 칼질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었다. 보수층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그런 점에서 홍 대표가 출당 추진을 공식화하며 방향을 전환하고 나온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오히려 보수 진영 재건에 한계로 작용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홍 대표는 한국당이 대선 이후 1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관계자는 “결국 한국당 외연 확장에 한계선이 있다는 뜻이고 홍 대표는 그 원인이 박 전 대통령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내년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하는 홍 대표로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24%의 득표율로 2위를 한 데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 등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80% 안팎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지방선거에서 대결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최근 주변에 “박 전 대통령은 보수 재건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출당 추진은 보수 통합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 지난 대선 때 홍 대표 지지를 선언하며 한국당에 복당한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은 최근 공개적으로 홍 대표에게 “바른정당과의 보수 통합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진 가장 큰 원인은 탄핵 찬반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한 만큼, 박 전 대통령의 존재는 두 당의 통합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가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에게 보수 통합의 명분을 주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꺼냈다는 것이다.

출당이 현실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변수는 일부 친박 성향 보수 지지층과 당내 친박 핵심 인사들의 반발이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은 친박 핵심 인사 청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런 만큼 이들의 발발 강도가 거셀 경우 홍 대표가 꺼낸 박 전 대통령 출당 카드는 새로운 당 내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또 10월 중으로 예상되는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 선고 결과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밀어붙일 기세다. 한국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명예를 회복해 보수 진영의 자산이 되기를 기다리기엔 최순실 사태의 여파가 워낙 크다”며 “홍 대표는 이제는 박근혜 없는 보수 진영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했다.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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