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영국 런던 내셔널리버럴클럽에서 열린 중국어본과 영어본 ‘시진핑 사상’ 출판기념회에 주영 중국대사관 직원들과 일부 국가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지난 3월 28일 영국 런던 내셔널리버럴클럽에서 열린 중국어본과 영어본 ‘시진핑 사상’ 출판기념회에 주영 중국대사관 직원들과 일부 국가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수립됐고, 헌법은 5년 후인 1954년에 제정됐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1983년에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 헌법 전문(前文)은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국가 중의 하나다.… 1911년 쑨중산(孫中山) 선생이 이끄는 신해혁명이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화민국을 창립했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을 영수(領袖)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했다.… 중국의 각족 인민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과 ‘3개 대표’의 중요 사상 인도 아래…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스러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왔다.”

중국공산당 당장(黨章·당 강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과 ‘3개 대표’의 중요 사상에다가 ‘과학발전관’을 지도사상으로 추가해놓았다. ‘3개 대표’ 이론이란 덩샤오핑이 발탁한 장쩌민(江澤民) 총서기가 주도하는 당 중앙이 ‘중국공산당이 생산력과 문화, 전 인민을 대표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결과 생겨난 부유층 부르주아들도 당에 입당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이론이다. 즉 중국공산당이 더 이상 계급투쟁을 목표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아니라 전 인민의 대표라고 규정한 것이다. ‘과학발전관’은 장쩌민의 후임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가 주도한 당 중앙이 ‘중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방침을 확립한 이론이다.

중국의 정치 이론은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마오쩌둥의 ‘사상’, 덩샤오핑의 ‘이론’, 그리고 과학발전 ‘관’이라고 지도사상의 등급을 구분해놓았다. ‘주의’는 국가를 초월해서 적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라는 뜻이고, ‘사상’은 중국 내에서 시대를 초월해서 적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말하고, ‘이론’은 특정 시대에만 적용 가능한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관’은 특정 지도자가 제시한 이데올로기라는 뜻이다.

요즘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진핑(習近平) 사상’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를 높이고 있다. 개혁개방 시대를 이끌어온 당의 지도사상이 그동안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세 가지였으나 여기에다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중진국을 달성하고 중화인민공화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는 선진국을 건설한다는 시진핑의 민족부흥 이론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 청년단의 온라인 뉴스 ‘중청재선(中靑在線)’은 지난 3월 28일 “중국어본과 영어본 책자 ‘시진핑 사상(習近平思想·Xi Jinping Thought)’이 영국에서 출판됐다”고 타전했다. 이 책자는 시진핑이 당서기를 지낸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의 구시원(求是園) 문화전파공사가 출판해서 영국으로 수출한 것으로, 런던의 내셔널리버럴클럽에서 열린 출판기념 행사에는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원들과 일부 국가 외교관들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중청재선은 중국어본 ‘시진핑 사상’과 영어본 ‘Xi Jinping Thought’의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8월 27일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 말에 열릴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이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사상에 이어 세 번째 중국공산당의 지도사상으로 당 강령에 삽입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민족부흥을 골자로 하는 ‘시진핑 사상’이 장쩌민 이론과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을 제치고 마오쩌둥·덩샤오핑의 지도사상급으로 격상되어 ‘사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당 강령에 등장하게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아주주간은 지난 3월 영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시진핑 사상’이라는 책의 내용 중에 “마오쩌둥 사상은 20세기 전반부 전쟁과 혁명 시대의 지도사상이었고, 덩샤오핑 사상은 20세기 후반부의 평화와 발전 시대 지도사상이었으며, 시진핑 사상은 21세기 전반부 개혁과 창조의 시대에 지도사상이 될 것”이라는 서술도 있었다는 점을 소개했다. 시진핑 사상이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 이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에 이어 네 번째 지도사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사상에 이은 세 번째 지도사상으로 격상돼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영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시진핑 사상의 저자로 중국 국방대학 교수인 류밍푸(劉明福)는 “1945년 중국공산당이 ‘마오쩌둥 사상’을 당 강령에 써넣을 때 마오는 ‘당 활동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며, 나는 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대표해서, 아울러 당의 이익을 고려해서, 마오쩌둥 사상이 당 강령에 삽입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사상이라는 말 역시 시진핑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당 집단지도체제를 대표한 용어라는 주장이다.

아주주간은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이 오는 19차 당 대회에서 그동안 7인으로 구성돼 있던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5인 위원회로 축소하면서 시진핑 시대의 국가전략 수립을 주도해온 왕후닝(王滬寧·62)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을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할 것이라는 예상도 곁들였다.

아울러 시진핑의 오른팔로 그동안 반(反)부패 활동을 주도해온 왕치산(王岐山·69)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임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유임할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왕치산의 유임은 당 간부의 연경화(年輕化)를 위해 67세까지는 당 간부에 임명 가능하지만 68세부터는 불가라는 덩샤오핑 개혁개방 시대에 수립된 중국공산당의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을 무너뜨리는 모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려 70여년 전인 1945년 제7차 당 대회에서 있었던 마오의 언급까지 되살려가며 ‘시진핑 사상’을 당 강령에 써넣으려는 시도는 중국공산당 내에서는 이해가 될 일일지 모르지만 미국과 유럽 등 외국의 시각으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지 궁금하다. 70여년 전의 중국과 21세기에 G2로 자라난 중국은 국가의 위상이 너무나 달라졌는데 중국공산당 내에서 시대착오적인 일이 벌어진다면, 분위기에 따라서는 중국공산당 내부에 이번 제19차 당 대회를 치르면서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불지도 모를 일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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