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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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가져올 결과는 참혹(慘酷)할 겁니다. 내용 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취지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한국 현실에 비춰보면 황당한 정책이 많습니다.”

한때 좌파(左派) 정치인의 ‘과외교사’로 활동했던 김대호(54)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말이다. 김대호 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단기 정책으로는 유용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느 정부나 단기 수요확대 정책은 쓸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국내·외 사례도 많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일시적인 게 아니다. 예컨대 공공부문 일자리의 경우 재직기간 30년, 연금기간 30년을 합쳐 60년짜리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이 사업을 접거나 한국을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82학번인 김 소장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두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구로공단 내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다 1995년 대우그룹에 입사해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일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되는 상황을 겪고 난 뒤 사회운동가로 돌아왔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 세계적으로 실용적 중도노선인 ‘제3의 길’이 유행할 때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설립, 11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문재인 대통령, 송영길 의원, 유종필 관악구청장, 강운태 전 광주광역시장 등 현 여당 인사들의 정책을 가다듬고 국가경영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야당인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이 주도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집권여당에 대해 각을 세웠다. 김 소장은 지난 9월 5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정책으로 꼽힐 만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최악의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뭔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은 국가 울타리에 들어가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조선시대적 부조리를 연상케 한다. 민간에서 창의와 열정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을 공공(公共)이 빨아들이는 건데, 그럼 민간에 남은 사람은 2등 국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회발전의 기본 동력인 인센티브 구조를 왜곡하는 거다. 재정압박도 점차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인상 등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정책으로 손꼽히게 될 것이다.”

- 과외교사로 활동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난 적이 있나. “문 대통령이 2012년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직후 만났다. 이미 대선후보로 부상한 상황에서, 문 의원 주변 인사들이 나를 정책전문가로 추천해 2시간30분 동안 미팅을 가졌다. 주로 고용과 노동문제에 대해 내 생각을 전달했고 그때 나눈 대화 중 ‘공평’ 같은 키워드는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 당시 본 문재인 의원은 어떤 정치인이었나. “좌파적 멘탈리티가 강한 사람이었다. 학문적 개념은 별로 없어 보였다. 노무현 정부 안에서도 문 대통령은 김병준·변양균 정책실장과는 달리 노동세력과 함께했다. 노 대통령이 김병준·변양균 실장에게 힘을 실어주던 때라서 문 대통령 측은 세력이 강하지 않았다. 이제 그가 대통령이 됐고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서에 반하는 사람에게 18원 후원금과 문자폭탄을 보낸다. 그런 형태로 해서 특정 인사를 정치적으로 매장해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제가 가진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 소장은 문 대통령에 대해 “혜안은 부족하지만 부지런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책 추진이 과감하다. 회사를 예로 들면 최악의 상사일지도 모른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참모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을 꼽았다.

- 왜 김수현 사회수석을 현 정부 정책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하나. “문 대통령과 김 수석은 인연이 각별하다. 2012년 대선 때도 김 수석이 정책 쪽을 맡았다. 현 정부의 인사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안다. 그때 내가 느끼기로는 김 수석은 좀 답답한 면이 있었다.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김 수석이 주도했다. 임금이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늘고 결국 소비를 촉진하는 선순환구조가 된다는 건 너무나 피상적인 얘기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든다. 정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해야 하는데, 단선적이고 일면만 보고 내놓은 것 같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을 하지 않은 결과다.”

김 소장은 김 수석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2010년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김 수석과 함께 정책을 가다듬는 일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산하 연구원에서 일자리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할 때 김 수석, 황수경 현 통계청장, 황덕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했다. 당시 김 수석은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 소장은 “문재인 정부에는 경쟁이 치열한 민간기업에서 근무한 사람이 별로 없고, 작은 기업이라도 창업해 사람을 고용해본 경험자가 없다”면서 “일자리나 비정규직 문제를 기업의 탐욕 때문이라고 보는 건 대한민국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도 했다.

- 현 정부 정책이 반기업정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건가. “기업의 국내 투자와 고용에는 여러 리스크가 있다. 규제와 고용부담, 금융, 기술, 중국 리스크까지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현 정부는 정책을 만들면서 이런 리스크에 대해 무감각한 것 같다. 기업의 불법적 탐욕이 불평등의 근원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렇게 문제를 단순하게 진단하니까 해법도 단선적일 수밖에 없다.”

김 소장은 현 정부의 정책이 조선시대 폐단을 닮았다고도 했다. “조선의 핵심은 왕도정치, 즉 국가주의였다. 예치와 덕치를 표방해 사생활 깊숙한 곳까지 국가가 개입했다. 양반관료가 곧 공공(부문)이었다. 국가에 의한 약탈과 재분배가 어떤 측면에서 좌파적 멘탈리티와 싱크로율이 높다.”

- 문 대통령의 참모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 있나. “문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낡은 진보이거나 낡은 노동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 자본의 우위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거나 신자유주의로 인해 비정규직 문제가 생겼다고 그들은 말한다. 노동조합은 진보와 개혁의 견인차로 인식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 고용노동 전문가라는 청와대 은수미 여성비서관 등 운동권 인사들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김 소장은 대우그룹 해체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와 그 반대 정치세력 모두 당시 지적(知的) 축적이 부족했다. 그래서 오히려 행동은 과감했다. 나는 사상과 이념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고 경세담론을 주도할 사회디자인연구소를 만들었다.” 사회디자인연구소가 등장한 2006년에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 희망제작소 등이 설립됐다. 2000년대 초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제3의 길을 주장했고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신(新)중도를 주창하며 새로운 정치바람이 불었던 게 앞서 언급한 연구소들의 등장 배경이다.

- 지대추구와 약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무슨 말인가. “대한민국 갈등의 핵심은 지대추구(地代追求)에 있다. 지대추구는 불로소득과는 다른 개념이다. 예컨대 하나도 기여하지 않고 100의 수입을 거두면 이건 불로소득이다. 이와 달리 만약 10을 투입해 100을 가져간다면 90은 지대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에 들어가는 게 지상과제가 된 요즘 3000만원의 임금을 받을 사람이 현대차와 공기업에 입사하면 6000만원을 받는다. 이것의 본질이 바로 변형된 약탈주의다. 자신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과도한 국가의 관여와 개입에 있다.”

김 소장은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면 기여와 이익이 균형을 잡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규제, 독과점(공기업) 등에 의해 우월적 지위에 놓인 집단 또는 개인은 기여한 것보다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장자율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국가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관료 중심에서 일반 사회로 기능을 분권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했다.

- 문재인 정부가 선악 프레임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적폐세력이 있고 그걸 청산하는 세력이 있다. 한쪽이 악이면 다른 쪽은 선이고, 한쪽이 부도덕하면 다른 쪽은 도덕적이라는 선악 프레임이 설정된다. 현 정권에서 적폐청산은 그동안 억눌려온 부분을 바로잡는 정상화로 간주한다. 그걸 달성하기 위해 힘을 숭상하고 지성은 외면한다. 선악이 명백하기 때문에 적폐청산을 위한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한다. 현 정부는 이걸 촛불민심이라고 말하는 반면 야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 야당은 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계속 지지부진한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해서다. 이승만·박정희·군사정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항한 이념이 ‘1987체제’를 만들었다. 일종의 안티(Anti) 담론이었다. 헤겔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현재 ‘안티테제’를 주도한 쪽이 정권을 잡았다. 지금 보수정당은 현 정권의 또 다른 안티테제를 만들려고 한다. 그건 올바른 길이 아니다. 1987체제가 만들어낸 지난 세월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보수정당이 살아날 수 있다. 이를테면 MBC가 파업을 하는 데 있어서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구조를 공정·신뢰·전문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바꾸는 신테제를 제시해야 한다.”

-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는 책을 낸 적이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평가한다면. “그가 말하는 중도개혁의 방향은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내용이 문제다. 그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말하는데 기존 보수식 안보와 진보식 경제로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다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걸 익혀야 한다. 자기 부하 몇 명과 상의하는 건 정치리더로서 부적합하다. 혼자서 고민해서 낙점하고 통보하는 건 CEO 스타일이다. 스스로 미숙함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경험, 지식, 지혜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앙과 지방의 문제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의문을 갖는 게 정치인의 본분인데 그걸 하지 않는다. 교육감을 광역단체장의 러닝메이트로 해야 지방자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는 거부하고, 무엇이든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식하게 접근한다. 다양한 정보를 가진 정치인들이지만 정작 종합적 판단을 통해 정책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자기 임무를 망각한다. 어느 당 대표는 놀랍도록 개념이 없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정치가와 경세가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치개혁은 개혁 중의 개혁이다.”

-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1심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대한민국의 문제는 삼성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10대 수출품목이 모두 위태롭다. 4차 산업혁명에 앞서 주력산업의 사양(斜陽)화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너의 부재로, 비일상적 경영변수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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