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간 송유관 가압시설. ⓒphoto 조선일보
북·중 간 송유관 가압시설. ⓒphoto 조선일보

9월 3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은 북한과 가까운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 동북 3성 주민들의 신변에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환경 안전에도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북한이 5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불안감에 대해 언급을 않던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6차 핵실험 직후에는 공개적으로 걱정스럽다는 말을 했다. 겅솽(耿爽) 대변인은 핵실험 다음 날인 9월 4일 브리핑에 나와 처음으로 상세하게 불안감을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을 보호하는 데 고도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관련 부문은 앞으로 이 실험이 중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면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중국 경내의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다 취할 것이다.”

겅솽 대변인은 북한이 하필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관하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 때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한 데 대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은 브릭스 정상들이 중국 남부 항구도시 샤먼(厦門)에 모여 개막식을 하고 있던 시간에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조선(북한)이 언제 하더라도 핵실험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희망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확고히 반대한다. 내가 방금 설명했듯이 중국 외교부는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는 조선대사관의 책임자에게 엄정한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원유의 90% 이상을 중국이 공급하기 때문에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너무도 간단히 북한의 핵실험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 중국은 국제사회에 얼굴을 돌린 채 파이프 잠그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중국 외교부나 중국의 지도층들은 그동안 마치 벙어리나 된 듯 이에 대한 설명을 기피해왔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9월 3일 오후 4시쯤 온라인에 올린 사설을 통해 비교적 상세한 속내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우리 중국이 일단 조선에 대한 석유 공급을 완전히 단절하거나 중·조(中朝) 국경을 봉쇄한다고 해서 조선의 핵 활동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정적이다. 오히려 중·조 관계가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대립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중·조 간의 대립은 일정한 기간 동안 조선반도를 둘러싼 최고의 모순을 돌출하게 될 것이다. 중·조 간의 대립이 발생할 경우 현재 미·조 대립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고도의 긴장 국면을 조성할 것이다. 워싱턴과 서울은 그동안 조선 핵 문제의 외연을 중국으로 확대하려는 기도를 해왔다. 그런 상황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될 것이다.”

환구시보의 사설은 중국의 국익에 관해 이런 속내도 보여주었다.

“조선 핵 문제의 근원은 한·미 동맹의 군사적 압력이 평양에 엄중한 불안감을 조성한 것이다. 평양은 핵을 보유하는 것을 정권 생존의 유일한 보장책으로 보는 착오를 범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자기 안전의 관건으로 생각하는 착오도 범했다. 중국은 이런 복잡하고 첨예한 도박 속에서 언제든 함정에 빠져들 위험을 안고 있다.… 중국은 대국(大國)이다. 중국의 어젠다와 이익은 글로벌한 것이어야 한다. 조선반도의 문제는 중국 주의력의 전부가 될 수는 영원히 없는 일이다.…”

환구시보의 논리는 중국 지도층과 지식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연결되는 석유 파이프를 잠그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해서 결론지었다.

“조선의 새로운 핵 활동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국 사회는 조선의 핵 활동에 대해 엄청나게 화가 나더라도 절대로 충동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중국은 결코 조선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금지나 극단적인 제재 수단에 가벼이 동의해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환구시보의 사설은 그동안 잘 드러내 보이지 않던 두 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나 원유공급 중단을 늘 흐지부지해오던 이유가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한국전쟁 참전이나 그 무슨 혈맹(血盟)이라는 용어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냉철한 국익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이라는 결정에 대해 북한이 보여줄 반응을 중국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1992년 한국과 수교를 하자 북한이 이후 8년 동안 모든 고위층 교류와 경제 교류를 끊었고, 한국과의 수교 직후인 1993~1994년에 닥친 홍수와 가뭄의 자연재해 때문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었는데도 북한이 중국에 식량원조 한번 요청하지 않으면서 김정일의 지도로 ‘고난의 행군’을 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김정은은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이후 권력을 잡자 김정일을 가장 측근에서 보좌하던 대표적인 친중파(親中派)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흔적도 없이 사살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것을 보고 중국 지도자들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한마디로 발끈하는 북한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비교적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기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심성에 그런 북한은 마치 목을 줄로 묶어놓으면 제 성질을 못 이겨 죽어버리는 살쾡이로 비친 것이다.

그런 반면 한국의 지도자들은 귀여운 강아지 시추 정도로 비쳤을 것이다. 주권 사항에 속하는 사드 배치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정간섭적 발언을 해도 공개적인 국제회담장에서 화 한번 내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와 정계 지도자들이 “한국인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는 귀신, 외부의 적과 싸우는 데는 등신”이라고 자조하는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외교부 사람들은 자기네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해도 화를 내는 한국인을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신기해하고 있다. 우리는 왜 북한과 한민족인데 북한처럼 중국에 살쾡이로 비치지 않는 것일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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