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의 핵무기연구소 현지 지도. ⓒphoto 연합
지난 9월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의 핵무기연구소 현지 지도. ⓒphoto 연합

“핵폭탄이 높은 고도에서 폭발하면 강한 에너지가 발생해 통신시설과 전력계통을 파괴한다.”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6차 핵실험에 맞춰 지난 9월 3~4일 잇따라 EMP에 대해 언급해 핵무기를 활용한 EMP 공격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자기 펄스를 의미하는 EMP(Electromagnetic Pulse)는 전자 장비를 파괴하거나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전자기장을 순간적으로 내뿜는 것이다. 핵폭발 시 강한 X선, 감마선 등이 발생하는데 지상에서보다 고도 30~수백㎞ 고공에서 폭발할 때 훨씬 더 큰 EMP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핵폭발에 의한 EMP 효과는 1960년대 초반 미국 핵실험 중 발견됐다. 1962년 7월 태평양 존스턴섬 상공 400㎞에서 미국이 핵실험을 위해 수백㏏(1㏏은 TNT 폭약 1000t 위력)의 핵무기를 공중 폭발시켰다. 그러자 1445㎞나 떨어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교통 신호등 비정상 작동, 통신망 두절, 전력회로 차단 등 이상한 사건이 속출했다. 700여㎞ 떨어진 곳에선 지하 케이블 같은 것도 손상됐다. 핵폭발 시 폭풍, 열, 방사능 피해만 생기는 걸로 알고 있던 과학자들은 당황했다. 그 원인이 EMP였음이 뒤에 밝혀졌다.

1990년대 이후 전자기기 사용이 크게 늘면서 고공 핵폭발 시 생기는 EMP의 파괴력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커지게 됐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북한에 비해 EMP 공격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핵무기를 지상에서 폭발시켰을 때에 비해 고공 핵폭발은 폭풍, 열, 방사능 등에 의한 인명 살상 피해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에 따른 비난을 덜 받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쓰기 매우 어려웠던 핵무기가 ‘쓸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김정은과 북한군 입장에서 핵 EMP 공격이 매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의 ‘눈’인 레이더도 먹통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5월 발간한 ‘고고도 핵폭발에 의한 피해 유형과 방호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핵 EMP에 의해 현대 정보통신사회의 기반이 송두리째 파괴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

우선 전류로 가동하는 모든 전자기기와 부품들은 EMP에 의해 유입되는 강한 전류와 전압에 의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특히 현대 정보화사회에서 나노 수준으로 회로 선폭이 미세화되고 활용범위도 넓어지고 있는 초고집적 반도체들이 더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들 시스템 모두를 EMP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고 한다. 컴퓨터,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 등 가전기기와 휴대폰, 항공기와 자동차, 선박 등의 전자장치와 항법장비 등도 피해를 입게 된다. 은행 등 금융 전산망과 전철 시스템 등이 파괴돼 엄청난 사회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발전소와 송전 케이블에도 과전류가 유입돼 광범위한 시스템 교란과 기기 파손이 일어날 수 있다. 인공위성, 특히 저궤도 위성도 피해를 입게 된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핵 EMP 무기가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한 대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에 따르면 서울 상공 100㎞에서 이번 핵실험 핵무기의 위력과 비슷한 100㏏급의 핵폭탄이 터지면 그 피해는 말굽 형태로 남부로 확산돼 서울에서 계룡대까지의 모든 전력망과 통신망이 파괴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은 20㏏의 핵무기 한 발로 북한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의 전자 장비를 탑재한 무기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 핵미사일 발사를 탐지할 이지스함 레이더, 그린파인 탄도탄조기경보 레이더 등 우리의 ‘눈’인 레이더도 먹통이 될 수 있다. 한국군의 두뇌이자 중추신경인 지휘통제(C4I) 시스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핵 EMP 공격은 미국에도 큰 위협이 된다. 미국 중북부 400㎞ 상공에서 메가톤급 수소폭탄이 폭발하면 미 본토 대부분이 EMP 피해를 입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수백㏏급 핵무기라도 미 상당수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EMP 무기 개발에 대한 경고와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있어왔다. 제임스 울시 전 미 CIA 국장은 2014년 미 의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러시아인들이 2004년 ‘두뇌 유출’로 북한의 EMP 무기 개발을 도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EMP 공격에 필요한 주요 구성요소를 확보하는 데 러시아와 중국을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 EMP 이미 실험 가능성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500㎞ 떨어진 곳으로 기습 발사한 뒤 “특정 고도에서 핵탄두를 폭발시키는 사격 방법을 썼다”며 핵 EMP 실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발사 후 공중폭발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던 북 미사일 발사 중 일부는 북한이 EMP 공격 시험을 위해 일부러 일정 고도에서 폭발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남한에 대한 EMP 공격의 경우 30~100㎞ 상공에서 터뜨려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한다. 요격고도가 40~150㎞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소 위력이 줄어들더라도 북한이 150㎞ 이상의 고공에서 핵무기를 터뜨리면 사드로도 요격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우리도 북한에 대해 EMP 무기를 쓰면 북한 핵·미사일의 아킬레스건인 지휘통제 시스템 등을 마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핵 EMP 무기는 파괴범위가 넓어야 수㎞ 수준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핵 EMP 공격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EMP 방호기술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 군의 최신 핵심 지휘통제시설은 EMP 방호장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장비와 시설에 대해 EMP 방호능력을 갖추기는 어렵다는 게 문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북한 핵 EMP 공격에 대한 대책으로 미사일 방어능력 강화, EMP 방호시설 확보 등을 제시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북한 핵탄두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제타격 능력을 필사적으로 갖춰야 하는 이유가 더 생겼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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