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 20일자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photo 뉴시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 20일자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7일 오후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 A씨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 내용은 “하루 뒤인 7월 18일 오후 2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좌관을 상대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장이 직접 긴급 설명회를 갖는다”는 공지사항이었다. 당초 이 문자 메시지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에게만 보내기로 되어 있었는데 공정위 직원의 실수로 A 보좌관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전송된 것이다. 이 일로 비공개리에 진행하려던 ‘김상조-민주당 보좌진’ 간 설명회가 야당에 노출됐다.

실제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7월 18일 공정위 경쟁정책국장, 기획조정관, 경쟁정책과장, 기획재정담당관 등과 함께 여당 보좌관들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여당 보좌진을 위한’ 설명회에 참석한 김상조 위원장은 ‘법집행체계 개선 TF(태스크포스) 관련 설명 및 협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이 주요 간부들을 대동하고 국회의원이 아닌 10여명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김 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이날 설명회는 공정거래법 개정과 법집행 혁신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법집행체계 개선 TF’에 관해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부과, 시정명령 등 행정적 조치에 주력해왔던 점을 개선하고 국민이 직접 불공정 피해를 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혀왔다. 김상조 위원장도 국민 개개인의 권리구제를 확대하는 이른바 ‘민사적 수단’의 강화에 방점을 찍고 공정위 혁신을 주도해 왔다. 이날 공정위가 국회에서 가진 설명회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됐다.

시민단체 이름을 지운 문건

공정위 직원의 문자 메시지 실수는 비공개 설명회를 노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해당 문자 메시지를 받은 A 보좌관은 “김상조 위원장이 여당 보좌관만을 상대로 설명회를 갖는다면 중요한 내용이 다뤄질 것”이라고 판단해 설명회 당시 여당 보좌관들에게 배포된 자료를 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다. A 보좌관의 말이다. “처음 자료를 받아 내용을 검토했을 때 TF 민간위원에 시민단체 인사들을 넣으려 한다는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왜 야당에 알리지 않고 여당 보좌관을 상대로만 설명회를 열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후 A 보좌관은 정무위원회 소속 다른 야당 의원 보좌관들을 사석에서 만나 ‘의문의 설명회’가 야당 모르게 개최된 사실을 전달했다. 참고로 공정위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피감기관 중 하나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공정위가 여당 보좌진만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다른 야당 국회의원 B 보좌관도 공정위 측에 요청해 관련 자료를 받았는데 B 보좌관이 받은 문건이 당초 여당 보좌관들에게 제공됐던 것과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실은 B 보좌관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A 보좌관이 사전에 확보했던 자료와 비교하면서 드러났다. A 보좌관이 갖고 있던 문건은 당초 여당 보좌관들에게 제공됐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두 문건의 어떤 부분이 달랐던 걸까. 이해를 돕기 위해 A 보좌관이 받은 자료를 1차, B보좌관이 받은 자료를 2차 문건으로 구분한다.

가장 크게 달라진 내용은 TF 민간위원 위촉에 관한 건이다. TF 민간위원은 각계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되는데 1차 문건에는 ‘대한상의 및 중기중앙회 각 1명씩 추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및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각 1명 추천’으로 적혀 있던 부분이 2차 문건에서는 아예 사라졌다. 1차 문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경제단체 추천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기업 입장을 대변해온 단체를 사전 배제하고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인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명기했다는 점이다. 또 민간위원 추천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001년 설립된 전국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조직으로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이 소속돼 있음’이 명시돼 있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대해서는 ‘1976년 설립됐고 공정위에 등록된 소비자단체협의체로 YWCA와 소비자시민모임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점’이 설명돼 있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민간위원 위촉에 공정성을 강조했으나 사실상 자신의 입맛에 맞는 TF 민간위원을 사전에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당 보좌진과는 이런 부분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야당에는 고의로 숨겼다”고 비판했다. 실제 B 보좌관에게 제공된 2차 문건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삭제된 채 ‘경제단체 2~3명, 소비자단체 2~3명을 각각 추천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김상조 위원장이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경제개혁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참여연대 등 특정단체가 언급된 공정위 자료가 야당에 전달될 경우 “코드가 맞는 시민단체를 동원해서 공정거래법 집행체계를 개선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을 의식해 자료의 일부 내용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

1차와 2차 문건에 다른 부분이 또 있다. 1차 문건의 ‘협조요청 사항’에는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안 심사 시 TF에서 논의 중인 점을 감안 요청’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는 공정위가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춘 법집행체계 개선안을 마련할 때까지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를 사실상 중단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공정위가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인 입법활동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런데 2차 문건에는 이 내용이 삭제돼 있다.

공정위 고병희 경쟁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여당 설명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자료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을 상대로 김상조 위원장이 직접 설명회를 개최한 후에도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야당에는 법집행체계 개선 TF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 측은 “야당에도 법집행체계 개선 TF 활동에 대해 설명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으나 실제 야당 국회의원들을 접촉한 결과 공정위의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공정위 측은 정무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국회의원실에 2차 문건을 전달하고 실무자가 의원실을 방문해 설명했다고 했지만 일부 야당 의원 측은 “공정위가 야당에도 설명을 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우리는 공정위로부터 법집행체계 개선 관련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고병희 경쟁정책과장은 “김상조 위원장님이 보좌관님들을 직접 만나 설명한 것은 국회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의사소통을 더 잘하자는 차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 측과 접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실무자들이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만 했다.

공정위가 여당에 제공한 1차 문건(왼쪽)과 야당에 건넨 2차 문건.
공정위가 여당에 제공한 1차 문건(왼쪽)과 야당에 건넨 2차 문건.

1차 문건(왼쪽)에 있던 협조요청 사항이 2차 문건에서는 빠졌다.
1차 문건(왼쪽)에 있던 협조요청 사항이 2차 문건에서는 빠졌다.

야당 “TF 민간위원 추천한 적 없다”

공정위는 TF 민간위원 추천과 관련해서도 야당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1차 문건에서 ‘TF는 국회, 경제단체, 시민·소비자단체 및 관계부처의 참여’로 위원을 구성한다고 명시했고, 이 내용은 야당에 제공한 2차 문건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공정위는 또 지난 8월 30일자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TF 민간위원 10명의 이름과 경력을 공개하면서 원내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에서도 민간위원을 추천한 것처럼 부연설명을 달았다. 공정위 고병희 과장은 “국회에서 TF 관련 설명회를 가진 건 민간위원 추천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에 확인해본 결과 국회, 즉 각 정당은 TF 민간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지난 2월 국회 정무위원회가 개최한 전속고발권 공청회 당시 각 정당의 추천 발제자로 참여했던 인사들을 TF 민간위원으로 위촉했는데, 이에 대해 야당 측은 “정무위 간사들이 TF 민간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나중에 공정위가 인위적으로 구성한 TF 민간위원은 공정위 전속고발권 관련 공청회에 왔던 법률가들이다. 공정위 업무 전반에 대한 전문가가 아님에도 이들을 끼워넣은 것은 공정위가 TF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국회 협의가 필요한 점을 고려해 지난 2월 공청회에 참여했던 외부 전문가 4인을 TF 민간위원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TF의 회의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1·2차 문건에 따르면 TF 회의는 “발제 자체를 공정위 소관국에서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야당은 “TF 위원장을 포함, 총 14명의 TF 위원 가운데 정부 여당 측은 최소 8명 이상이다. 이들이 모여 공정위 발제에 따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논의한다면 문재인 정부 입맛에 맞는 안건을 맞춤형으로 내놓게 될 것이고 나머지 위원들은 들러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TF 위원장을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이 맡고 있고 공정위 국장과 관계부처 인사들도 TF에 동석한다는 점을 거론하며 TF 구성 자체가 친(親)정부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앞으로 TF팀이 논의하게 될 법집행체계 개선 주요 내용도 문제다. 공정위가 여당과 야당에 제공한 TF 관련 문건에는 총 22건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의 현황이 담겨 있는데, 모두 더불어민주당 또는 구(舊) 민주당 시절 국회의원들이 냈던 법안이다. 특히 전해철 의원이 낸 징벌적손해배상제, 이학영 의원이 낸 사인금지청구제, 박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집단소송제, 박용진 의원이 낸 과징금 부과수준 상향 등은 그동안 기업들이 개정을 반대해온 대표적 법안들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관련 개정 법률안은 총 113건인데 이번 TF 논의 대상에는 야당에서 발의한 법안들은 아예 제외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김상조 위원장이 주도하는 법집행체계 개선 TF의 효용성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야당 보좌관의 주장이다. “어차피 여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려면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TF는 시작부터 야당을 패싱(Passing)하고 공정위와 여당 중심으로 가고 있다. TF 구성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꾸려졌기 때문에 공정위가 아무리 공정성을 주장한다 해도 TF에서 마련된 개선안을 야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도 굳이 TF를 구성해 개선안을 마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TF의 논의 주제에는 법개정이 필요치 않은 검찰과의 협력 방안, 과징금 수준 상향 검토 등의 안건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 일부 국회의원 측은 “법개정을 위한 중지를 모으는 게 아니라 현재 공정거래법 안에서 어떤 조항을 강화할지, 또는 재량권을 어느 선까지 가져갈지를 논의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각계 전문가를 통해 마련한 대안인 양 언론플레이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현재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징벌적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전속고발제 개편 등 대부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사안들이다. 공정위는 “법안을 심의할 때 참고자료로 쓰일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 TF를 구성했다”고 말하지만 과거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될 때마다 공정위는 국회에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해왔다. 그럼에도 TF까지 구성한 것은 김 위원장이 기존 공정위의 개혁 의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하면서 공정위 자체의 개혁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이와 관련 “공정위가 법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논의한다고는 하지만 키(key)를 쥐고 있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모두 헛일이다. 결과적으로 현행 공정거래법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수순으로 논의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출신 위원장 ‘잦은 구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번 TF 구성과 활동에 대해 보안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TF에 대해 아는 사람도, 알려고 하는 직원도 없다”고 말했다. 실무자와 국·과장 라인만이 김 위원장과 해당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내부가 이처럼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 6월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대기업조사국 신설 등 조직개편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새어나간 적이 있다. 당시 공정위 수뇌부는 해당 사안을 기자에게 흘린 내부 인사를 색출하기 위해 국·과장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제출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공정위 내부에서는 윗선에서 보안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업무 자체를 기피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고 한다.

김상조 위원장은 최근 잦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9월 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네이버 이해진 전 의장이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가 다음 창업자 이재웅씨로부터 “정부 도움 없이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군 사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비난을 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 “3류 정치가 1류 기업을 깔보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에도 기자간담회에서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봤을 때 나쁜 짓은 금융위원회가 더 많이 했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먹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왔다.

한편 대기업들은 공정위의 TF 개선안이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불공정거래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충분히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가 행정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민사적 규율 수단도 대폭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위 조사를 받은 기업 가운데 행정조치를 받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라는 얘기가 시중에 파다하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 때문에 해외 공장 증설 등에 대한 언론 보도자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토로도 했다. 이 관계자는 “혹시나 정권에 밉보일 경우 공정위나 국세청 조사를 받게 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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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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