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75호] 2017.09.18

IAEA 국장 출신 김병구 사우디 원자력청 기술고문의 경고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hanal@chosun.com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10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탈(脫)원전 정책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40년간 가장 값싸게 전기를 공급하며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원전을 사실상 ‘악(惡)’으로 규정했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연설을 들은 수많은 원전 관련 기술자들은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해 지난 50년간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원자력계 원로 인사들이 직접 나섰다. 이들 원자력계 원로들은 지난 8월 11일 ‘원자력살리기 국민연대’를 발족하고, 원자력살리기 범국민운동에 들어갔다. 김병구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청(K.A.CARE) 기술고문(자문관)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미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 박사는 1975년 귀국 후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로계통설계 사업책임자와 선임연구부장, 원자력통제기술 센터장 등을 거쳐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IAEA(국제원자력기구) 고위직인 기술협력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국가 에너지정책을 왜 이렇게 조급하게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며 “우선 당장은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결정이라도 막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범원자력계 인사들이 모여서 ‘원자력살리기 국민연대’를 출범했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 건설까지 중단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인데, 그렇게 되면 지난 50년간 애써 쌓아올린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기반이 통째로 무너집니다. 몇 년만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700개에 이르는 원전 관련 산업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술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중국이 지금 우리나라 원전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공론화위원회에서 신고리 5·6호기의 공사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는데요. “지금 수립된 국가 에너지정책은 몇 년에 걸쳐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듣고, 수없이 수정해서 만든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대통령 공약이라고 해도 그것이 신성불가침한 것은 아니잖아요. 공약이라는 것은 실제 정책화될 때는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되기도 하고, 때로는 폐기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 원전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하겠다고 했는데요. “선진국의 경우 특정 에너지원을 타깃 삼아서 ‘이것은 나쁜 것이니 죽이고, 저것은 좋은 것이니 살리자’는 식으로 에너지정책을 펴는 경우는 없습니다. 에너지원을 선(善)과 악(惡)으로 구분해서 접근하면 안 됩니다. 필요한 전기량을 산출한 후 그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환경기준을 만족시키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최적의 상태로 조합하고, 상호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의 에너지정책입니다.”
   
   - 그래도 원전보다는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 있다면 확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나요. “저는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들 에너지원이 발전에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한데, 점점 늘려가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자연조건 상태에서는 이런 신재생에너지가 현재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LNG는 전량 수입해야 하는 비싼 에너지원입니다. 풍력과 태양력은 소규모 가정용으로는 적합할 수 있지만, 원전의 대안으로는 맞지 않는 에너지원입니다.”
   
   - 탈원전을 이야기할 때 독일의 사례를 많이 드는데요. “나라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에너지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은 나라가 크고, 천연자원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탈원전에 대한 대안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대안이 없어서 원전을 더 짓겠다는 나라도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비교·검토하면서 에너지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탈원전 정책은 현 정부 5년 동안 충분히 토론하고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 결국 안전 문제 때문에 탈원전 이야기가 나온 것 아닐까요. “솔직히 원전의 안전성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고 상식 이하입니다. 원전의 안전성에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미국이 왜 원전을 새로 짓고, 일본이 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죽였던 원전을 재가동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큰 원전 사고가 세 건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두 건인 미국의 스리마일섬(TMI) 원전사고와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에서 방사능으로 사망한 경우가 없습니다. 더구나 TMI 원전 사고는 나란히 이웃한 2기 중 한 기에서 발생했는데, 나머지 한 기는 여전히 운영 중입니다.”
   
   
   원전 기술 자립을 향한 노력
   
   김병구 박사는 1975년 무렵 원자력 분야에 발을 들였다. 그는 스스로를 원자력계 1.5세대로 분류했다. 원래 김 박사의 전공은 원자력 분야가 아니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응용역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미 항공우주국(NASA)에 취업했다. 1973년에 1차 석유파동으로 하루아침에 석유값이 4배로 뛰어올랐다. 석유파동을 겪은 우리나라는 주력 에너지원을 원자력으로 가기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김 박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모국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1975년 귀국을 결정했고, 미국 시민권도 포기했다.
   
   - 기술이나 인력,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원전산업이 꽃피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그 씨앗은 이승만 대통령이 뿌렸습니다. 이 대통령은 6·25 참화로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 당시 이미 80대의 고령이 되셨지만 용단을 내렸습니다. 지하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잘사는 길은 두뇌자원을 극대화하는 길뿐이고, 원자력 기술이 바로 그 지름길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서울대 공대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했습니다. 단돈 100달러가 귀하던 시절에 수백 명의 원자력 공학도들을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결국 이 대통령의 혜안이 결실을 맺은 겁니다.”
   
   - 그렇다고 해도 원전 기술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1970년 고리 1호기를 지을 때만 해도 우리는 자체기술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100% 턴키계약으로 미국에서 원전을 들여왔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원자력 기술자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무렵인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가 나면서 미국의 원전산업이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1986년에 소련 체르노빌 사고로 유럽의 원전산업이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앞서가던 선진국들이 다 주저앉은 사이, 우리나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악착같이 파고들어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 그래도 원전 선진국들이 애써 쌓은 기술을 다른 나라에 쉽게 내주지 않을 텐데요. “당시 원전은 이제 끝난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우리는 세계 원전 선진국 중에 기술 이전을 가장 완벽하게 해줄 파트너를 골랐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회사가 바로 미국의 CE(Combustion Engineering·컴버스천 엔지니어링)였습니다. 1986년부터 3년간 우리 에너지연구소(KAERI) 연구원 200여명이 원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원자력 핵심기술의 최종보루인 NSSS(핵증기공급) 계통설계를 습득하기 위한 인원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출정식을 할 때 한필순 소장은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니 최선을 다하자’고 했습니다. 참석자 전원은 ‘필(必)핵증기공급계통, 설계기술자립’을 외치고 한 소장의 제안에 따라 만세삼창을 하며 성공을 다짐했습니다. 사기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태평양에 다 빠져죽겠다는 각오로 미국에 갔습니다.”
   
   김병구 박사는 이렇게 건너간 한국의 KAERI 연구원과 가족 200여명이 CE사가 있는 미국 동북부의 작은 마을(윈저·Winsor)에 코리안빌리지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의 직책은 발전로설계사업 부장이었다.
   
   “사업착수 3년 만인 1989년, 미국에 파견된 우리 기술진들이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일정대로 귀국했습니다. 미국에 있던 원전 디자인센터도 계획대로 대전의 대덕연구소로 이전되었고, 귀국한 기술진들은 속속 영광 3·4호기 건설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광 3·4호기 설계를 명실공히 우리 기술로, 우리 체제하에서, 우리 주도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세계적으로 지난 40년 동안 한 나라가 우리처럼 많은 원전을 성공적으로 지어서 운영한 사례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원전기술을 표준화했는데, 원전을 지을수록 설계·제작·건설·운영·유지 기술이 발전했고, 1995년에 이르러서 이미 원전의 95% 국산화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하나의 산업이 이처럼 높은 국산화율을 달성한 분야가 없습니다. 이제는 기술자립을 넘어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 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김 박사는 “우리가 탈원전 정책을 펴면 60년간 천신만고의 기술자립 노력 끝에 이루어낸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고, 향후 수백조원의 원전시장을 중국과 러시아에 자진양도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원전을 중단하면, 그 빈자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메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우리만큼 국제기준에 맞는 안전성을 토대로 싸고 질 좋은 원전을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중국과 러시아의 안전기준이 국제수준에는 미달이거든요. 그래서 미국·유럽 등의 국제사회는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장 UAE에 수출한 4기의 원전 중 1호기가 금년부터 가동되는데, 수백 명의 기술자가 붙어서 60년간 운영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위험하다며 내팽개친 원전을 어떻게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가 있겠습니까?”
   
   - 원전은 에너지 확보뿐 아니라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일본이 저렇게 불리한 여건(지진대, 쓰나미, 원폭 피해국,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원전을 계속 운영하는 것은 안보적인 측면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사시를 대비해서 원자력의 기술력과 기반을 계속 확보하고 있겠다는 것이죠. 원전과 핵무기 기술은 둘 다 핵분열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뿌리는 같습니다. 원전은 연료를 천천히 태워서 에너지로 만드는 기술인데, 이는 핵폭탄 제조보다 난이도가 수백 배 높은 기술입니다. 핵무기만을 개발한 나라가 원전기술을 마스터하려면 수십 년의 기간을 요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용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양의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 중이기 때문에 이 자원을 재활용하는 사업이 국가적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원전 기술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원자력 안전성, 차세대 원전, 폐기물 처리, 폐로 기술 등의 연구개발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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