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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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경제 살리니 출산율·인구증가 푸틴의 ‘박정희 따라하기’ 통했나

우태영  인터넷뉴스부장  

▲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월 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 극동- 새로운 현실 창조’란 제목으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일본 등 세계의 많은 나라가 출산율이 줄어들어 고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핵폭탄보다 무서운 것이 인구절벽이라며 젊은 세대의 출산율 감소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인구 격감으로 고심하던 러시아의 경우는 최근 들어 출산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좋아진 경제 때문이다. 푸틴이 서방 언론들로부터는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인색한 평가를 받지만, 인구증가 등 경제호황을 이끌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
   
   소련 붕괴 직후 1억5000만명에 달했던 러시아 인구는 그후 매년 100만명씩 감소하였다. 감소의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젊은 남성들의 사망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러시아의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국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러시아의 인구는 1억4600만명으로 2008년의 1억4200만명보다 400만명이나 증가하였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여 얻은 인구 220만명을 더하면 증가폭은 더욱 늘어난다.
   
   인구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푸틴 집권 기간 동안 경제가 호조를 띠면서 러시아인들은 비로소 아기를 갖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러시아 주요 도시의 공원에 가 보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가 좋아진 원인은 물론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주 수출품인 원유와 가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석유회사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수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푸틴이 1999년 처음 총리에 취임할 당시 60억달러도 안 되던 국가 세입은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800억달러나 되었다. 옐친 대통령 시절에도 석유와 가스를 수출했지만 국부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수입의 대부분을 부패한 정치인이나 이들과 결탁한 ‘올리가르히’가 챙겼기 때문이다. 푸틴이 집권하여 국가 기능이 강화되고 법질서가 회복되면서 국부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푸틴의 개혁조치들도 러시아의 경제회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취임 직후 단일소득세를 도입하여 개인소득세는 13%로 정했다. 법인세는 35%에서 24%로 낮추었다. 그는 낮은 세율을 고수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일반 국민과 기업 모두 반드시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 토지거래법도 만들어 토지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하였다. 유가 회복과 푸틴의 친기업적인 경제정책 덕분에 러시아 경제는 2000년대에는 연평균 7%씩 착실한 성장세를 보였다. 서방 언론들은 이러한 성장은 오로지 원유와 가스 수출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포템킨미라지’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석유 수출로 인한 과실을 푸틴이 독식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층의 출산율 증가 등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 경제는 2014년부터 국제적인 유가 하락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측의 경제보복으로 정체 상태에 빠져들긴 했지만 외환보유고는 5000억달러 수준을 넘는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데에는 푸틴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해온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푸틴의 리더십은 소련을 해체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나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과는 사뭇 다르다. 고르바초프나 옐친은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반면 푸틴은 서구적이라기보다는 아시아의 개발독재자들의 리더십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상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공주의자 푸틴
   
   첫째,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國是)로 했듯, 푸틴도 반공주의자에 가깝다.
   
   푸틴은 2016년 1월 스타브로폴에서 가진 지지자들과의 모임에서 과거 소련과 공산주의 정권, 그리고 레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공산주의를 성실하게 믿었다고 말했다. 푸틴은 KGB 중령으로 동독에서 근무하다 베를린장벽 붕괴 사건을 겪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하는 것은 “성경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덧붙이면서도, “실상은 달랐다”고 말했다. 사회주의가 약속하던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푸틴은 특히 공산혁명의 지도자였던 레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레닌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일가와 그 신하들, 그리고 성직자 등 수천 명을 무참하게 살육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소련 내 경계선을 인종을 기준으로 정한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장래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행위나 다름없었다고 맹비난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분쟁도 결국은 레닌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비판은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푸틴은 또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자이다. 푸틴은 집권하면서도 전임 옐친 대통령 시절 국민들이 취득한 사유재산은 존중한다고 발표하였다.
   
   아직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앞에 레닌의 묘가 있고, 그 안에 레닌 미라가 엄숙하게 전시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대통령이 레닌과 공산주의를 비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소련 시절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소련 붕괴를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고, 소련을 옛날 모습 그대로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뇌가 없다.”
   
   둘째, 박정희 대통령이 서구와 다른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면, 푸틴은 러시아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푸틴이 ‘러시아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옐친이 추구하던 서구적 민주주의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러시아 국민도 옐친 시절 겪었던 무질서와 범죄, 부정부패, 그리고 민주세력의 지원을 받은 올리가르히들이 국가재산을 마음대로 해외로 빼돌려 축재를 일삼는 행위 등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옐친 대통령 집권 시절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의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7% 수준이었다. 러시아 국민은 국가권력 강화를 통한 질서회복, 군사력 강화를 통한 국가적 위상제고 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푸틴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푸틴은 러시아의 민주주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는 국민의 뜻에 의해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지정학적 고려 및, 다른 여러 특성을 고려하고, 우리의 기본적인 민주규범을 존중하면서 어떤 길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 정해 나가야 합니다.”
   
   푸틴은 2004년 베슬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로 385명이 사망한 사건 직후 외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민은 후진적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나라에서 하는 식의 민주주의에는 적응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좌) 이반 일린. (우) 푸틴이 그려진 T셔츠. 경제 호조로 러시아에서 푸틴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반공 철학자 이반 일린의 복권
   
   푸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반공 정치철학자 이반 일린(1883~1954)이 각광받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러시아 공산혁명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the most terrible catsatroph)”이라고 평가한다. 혁명 이후 반공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수차례 투옥되다가 1920년에 마침내 독일로 추방되었다. 일린은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보수적인 정치철학자로 러시아를 공산혁명이라는 비극으로 이끈 요인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일린은 러시아인들의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존감”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 간에 상호불신이 발생하였다고 본다. 권력자들은 늘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단결을 해쳤다. 일린은 어느 나라에나 국민들 사이에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교육받은 상위계층이 교육받지 못한 하위계층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이것이 잘 안 됐다는 것이다. 일린은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한 또 하나의 원인을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재산은 부정직한 행동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러시아인들 가운데 만연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존감”과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러시아를 평등주의와 공산혁명으로 이끌었다고 일린은 분석했다. 일린은 대안으로 러시아인들이 종교와 도덕성에 바탕을 둔 법치와 양심을 회복할 것을 제시하였다. 전체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 모두에 반대하는 제3의 길을 추구한 것이었다. 러시아정교, 애국주의, 법치주의, 사유재산제 등이 일린이 제시한 대안이었다.
   
   이러한 일린의 생각은 소련 시절 반체제 작가인 솔제니친과 민족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솔제니친은 옐친 시절 추진된 민주화 조치들이 러시아를 파괴하는 재앙이라고 비판하였다. 푸틴의 배려로 2005년에는 일린의 저작집이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다. 일린의 유해는 2009년 제네바에서 모스크바로 귀환되어 돈스코이 수도원에 다시 매장되었다.
   
   셋째, 박정희처럼 푸틴도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소련 말기와 옐친 대통령 시절 러시아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생하였다. 일상생활에 위협이 되는 크고 작은 범죄뿐만 아니라 국유재산의 매각 과정에도 모두 범죄조직이 개입하였다. 러시아인들은 국가를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체첸 마피아는 도난차량의 밀수출입, 그루지아 마피아는 무역, 농산물 거래는 중앙아시아 마피아가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유재산의 매각 등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에는 전직 공산당원, 옐친 대통령의 후원을 받는 민주세력, 유대인 등이 국제적인 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른바 올리가르히들의 세상이었다. 1990년에는 정부가 “경제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수감하기 위하여 비폭력사범 9만4000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푸틴은 집권하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늘어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연방보안국(FSB), 경찰 등 공안기관과 군의 인력과 장비를 크게 개선하였다.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다니다 보면 과거에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제복경찰들이 도처에서 검문을 하는 모습을 쉽게 대할 수 있다.
   
   옐친의 지원을 받던 올리가르히와의 전쟁도 푸틴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이는 정적 제거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 2000년 푸틴은 대통령 취임 직후 미디어모스트그룹을 운영하던 유대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를 전격 체포하였다. 그리고 “특권계층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39세였던 석유재벌 유코스오일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차례로 제거한다. 호도르코프스키도 유대인이었다. 유코스오일은 사실상 국유화하기에 이른다. 호도르코프스키는 10년형을 살다가 국외로 추방되었다. 호도르코프스키 제거는 국제적으로는 비난을 받았지만,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를 선물하는 푸틴.

   20년 대통령 되나
   
   넷째, 박정희에게 군이 있었다면, 푸틴에게는 실로비키가 있다.
   
   박정희는 5·16군사정변 이후에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푸틴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권력의 핵심부는 자신의 출신 부서인 FSB와 군 출신 등 이른바 ‘실로비키’들이 장악하고 있다. 실로비키는 군이나 보안기관 출신들이라는 말이다. 푸틴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다. 당초 옐친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요구한 것은 바로 “신뢰, 권위, 그리고 국민이 갈망하는 군인다운 태도”였다.
   
   다섯째,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다.
   
   푸틴은 베슬란사태 직후 러시아연방 내 자치지역과 공화국들에서 실시되었던 대통령, 주지사, 시장 선출을 위한 지방선거를 모두 폐지하였다. 지방 대표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지역의회에서 임명동의를 받도록 하였다. 전임자인 옐친이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한다“며 반발할 정도로 충격적인 조치였다.
   
   2012년 대통령직에 다시 복귀하는 선거를 치를 때도 반대파들의 시위가 빈발했다. 푸틴은 이를 단호히 진압했다. 푸틴 취임 직후 의회는 불법시위 참가자에 부과하는 벌금을 5000루블에서 30만루블(600만원)로 인상하였다.
   
   푸틴은 러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여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닥친 고유가 시대를 맞아 주로 유럽 수출을 통해 러시아 경제의 활황을 이끌었다. 푸틴은 수출다변화, 즉 한국·중국·일본으로의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에 미래 러시아 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다.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러시아는 안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유가하락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측의 제재가 쉽게 풀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푸틴은 2018년까지 재임하고 한 번 더 연임하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20년 대통령이 된다. 그보다 더 오래 권좌에 머물렀던 인물은 스탈린뿐이다. 하지만 20년 대통령을 해도 푸틴의 나이는 72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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