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궈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자칭궈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대학원) 자칭궈(賈慶國·61) 원장은 중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다. 자칭궈 원장은 중국공산당이 비(非)공산당 계열의 정치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통일전선 조직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으로 비공산당 계열의 중국민주동맹의 중앙상무위원이기도 하다. 주로 중·미 관계와 대만 문제, 주변국 관계 등 중국의 대외정책에 관해 많은 글과 저서를 낸 학자이자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양심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바이두(百度)와 신랑(新浪) 등 중국의 대표 검색엔진들도 그의 말을 퍼나르기 시작해 중국 내에서 북한 문제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조선(북한)의 앞날과 관련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국제정치 영문잡지 ‘동아논단’ 기고. 9월 13일 블로그 sinovision에 뜸)

“조선 핵은 우리 중국에도 위협이다.”(서울안보대화에서 한 발언. 9월 10일 온라인 네트워크 중평망(中評網)에 게재)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조선에 관한 세 가지 착오.”(2016년 8월 28일 www.360doc.com 웹페이지에 게재)

지난해 8월 온라인에 떠오른 자칭궈의 ‘조선에 관한 세 가지 착오’의 첫 번째는 “중국인이 북한을 미국, 일본과의 군사력 ‘완충지대(buffer zone)’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적시했다. “이는 일종의 전통적 관점이며, 현재는 비행기와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시대다. 외국 세력이 만약 중국을 침공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일본처럼 조선을 통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중국인은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은 사회주의 국가로, 우리와 공동의 의식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조선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주체사상 국가다. 주체사상이란 김일성이 제기한 ‘조선 위주의 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주체사상과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조선에 관한 세 번째 인식 오류는 중국과 조선이 선혈이 뭉쳐서 생긴 우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쌍방 모두 이런 관계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은데, 현실은 우리 중국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조선은 별로 그런 생각을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는 그런 표현을 한다. 예를 들어 조선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이야기하면서는 우리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몇 마디 한다. 그러나 뭔가 필요한 것을 챙겨가고 나면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린다.”

자칭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와 미국 사이의 공동이익이 더 크며, 중국과 미국은 핵 불확산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에 사드(THAAD)를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사드 문제는 미국과 한국 때문에 생긴 문제이지만 문제의 근원은 조선에 있다. 조선이 더 이상 핵을 개발하지 않으면 미국도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사드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 지도자나 중국인들과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는 점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잦은 중국에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칭궈 원장은 최근 발행된 영문 국제정치 잡지 ‘동아논단’에 발표한 ‘조선의 최악의 결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때(Time to prepare the worst in North Korea)’라는 기고문에서는 여섯 가지 상황을 제시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이 갈수록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상황에서 만약 미군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여전히 미국 군대가 북위 38도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중국의 입장을 미국에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 핵무기의 처리 문제에 있어 비록 북한 핵폭탄이 어떤 기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군이 38도선을 넘지 않게 하려면 미리 미국과 협상을 통해 중국군이 북한 핵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한다. 또 유사시 북한 난민들이 대량으로 중국에 유입될 경우 중국이 안게 될 어려움을 고려해 미리 북한 내로 중국군이 진입해 난민촌을 북한 내에 구축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경우 미국과 한국이 주도해서 북한에 새 정부를 구성하게 하는 것보다는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 북한 새 정부가 구성되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사드 문제는 미국도 한국도 북한 핵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만큼 북한 핵이 제거된 이후에는 사드를 한반도에서 철거하도록 미리 미국과 한국의 양해를 받아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정부는 현재 ‘중국은 중국 대륙의 입구인 조선반도에서 어떤 전란도 발생하는 것을 윤허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밝히고 있지만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미국과 한국의 공격으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고 철저히 파괴된 뒤에도 우리 중국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될까.”

자칭궈 원장은 최근 서울에서 발언해 중국의 온라인 ‘중평사(中評社)’ 웹페이지에 전재된 “조선 핵은 우리 중국에도 위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핵무기가 중국에도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조선의 핵은 동아시아와 전 세계 평화 유지에도 문제를 던지고 있다. 다른 나라와 협력해서 북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조선 핵 문제는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문제이고,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자칭궈 원장의 요즘 발언을 듣고 있자면 지난해 6월 지방 특강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우젠민(吳建民) 전 외교학원 총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민족주의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는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環球時報) 주필을 향해 “환구시보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전쟁과 혁명에 대한 습관적 사고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질타하다가 세상을 떠난 진정한 지식인이자 평화주의자였다. 우젠민 전 총장의 ‘불운’에 자칭궈 원장이 결코 가까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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