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8일 열린 69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열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8일 열린 69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열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방개혁은, 더는 지체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입니다.… 나는 국방개혁의 성공을 위해 군 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조치를 다할 것입니다.”

지난 9월 28일 제69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강력한 국방개혁 추진 의지를 다시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국방개혁을 강조해 국방개혁은 현 정부의 핵심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됐다.

송영무 국방장관도 국방개혁을 계속 강조하긴 마찬가지다. 송 장관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이유로도 국방개혁을 늦춰서는 안 된다”며 “우리 군을 새롭게 건설한다는 각오로 국방개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 ‘군복을 입은 자는 전투부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일하겠다”며 “공룡같이 살찐 군을 표범같이 강하고 날씬한 부대로 바꾸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방개혁자문위 명단 유포 논란

국방부는 지난 10월 12일 시작된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서도 국방개혁 추진 계획을 밝혔다. 지난 9월 국방부 기존 조직을 중심으로 국방개혁 추진단을 구성했고, 내년 3월 말까지 ‘국방개혁 2.0’ 계획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방개혁 추진단은 군구조개혁반, 국방운영개혁반, 방위사업개혁반 등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관심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국방장관 직속으로 설치되는 국방개혁자문위다. 국방부는 아직 국방개혁자문위 구성과 위원 명단 등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부터 일부 언론에 명단이 보도되고 군 안팎에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국방개혁자문단 추천 현황에 따르면 총 38명(예비 3명 포함)의 추천인사 중 예비역 준장 출신 단장을 포함, 34명이 군 출신이다. 특히 명단에서 일부 인사를 제외하곤 모두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속했던 인사로 나타나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단장으로 알려진 이선희 전 방사청장은 문재인 캠프 단체 중의 하나였던 국방안보포럼 소속이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개혁자문단 추천 현황은 어디까지나 추천 현황일 뿐 최종 편성은 아니다”라며 “10월까지 청와대 국방개혁위원 구성에 맞춰 여러 의견을 종합해 보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명단이 보도된 뒤 한 달이 지나도록 국방개혁자문단이 공식 발족되지 못하고 있다. 공식적인 자문단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자문단 명단에 포함된 한 인사는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을 뿐 자문단에 포함됐다는 통보도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국방개혁자문단이 아직 정식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데엔 청와대와의 ‘교통정리’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방부 외에 청와대에도 국방개혁 관련 조직을 만들어 쌍두마차 체제로 국방개혁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청와대는 지난 8월 말 국방부 업무보고 직후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방개혁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8월 28일 국방부 업무보고 때 문 대통령이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고도화하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하지만 그 많은 돈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며 질타한 직후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도 국방개혁을 진두지휘할 조직이 아직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엔 핵심 비서관인 국방개혁비서관이 아직까지 임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국방개혁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임종득 육군소장이 최근까지 맡고 있었다. 후임자가 정부 출범 5개월이 넘도록 임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방개혁비서관도 계속 공석

국방개혁비서관은 원래 준장~소장급 현역장성이 임명되던 국방비서관 자리였는데 현 정부 들어 명칭이 바뀌었다. 한때 모 예비역 공군소장이 내정됐다는 설이 돌았지만 임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이 예비역 장성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상품권을 받아 비서관으로 임명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장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언론중재위 제소하는 한편 소송도 제기했고 중재위 결정에 따라 해당 언론은 “사실로 확인된 바 없다”며 정정보도를 했다.

일각에선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근무 중인 육사 출신 모 대령을 10월 말 장성인사 때 준장으로 진급시켜 임명할 가능성과 모 해병대 예비역 대령이 임명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군내에선 북한이 잇단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 가운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이 코앞에 다가온 현 시점에서 국방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보고 있다. 군의 힘을 빼고 군기를 잡는 정치적인 국방개혁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강한 군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국방개혁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마다 시도됐던 국방개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이뤄진 ‘8·18 계획’을 시작으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방개혁은 단골 이슈로 등장했고 비슷한 해결 방안들이 제시됐다.

하지만 20년이 훨씬 넘도록 국방개혁이 제대로 실천이 안 되고 같은 이슈가 반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어느 나라든 국방개혁이 실현되려면 일정 기간 안정적인 예산 확보, 상층부 경량화에 따라 조기 전역하는 직업군인에 대한 일자리 마련, 군 내 공감대 확보 등이 꼭 필요한데 이것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 한 번도 주도적으로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어 직업군인들이 일반 공무원처럼 관료화했고 미군 등 선진국 군과 같은 전문 직업군인 의식이 없다시피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또 국방개혁은 기본적으로 군에 맡겨야 하지만 범정부,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국방개혁을 독려하고 지원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정치·경제·사회·종교·언론 등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로 국방개혁특별위를 구성, 각계 의견을 수렴해 국방개혁법안을 만들었다. 미국은 의회가 주도적으로 만든 ‘골드워터-니콜스 법안’(1986)이 미 국방개혁의 근간이 됐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추진도 청와대 개혁기구는 큰 틀을 잡고 개혁 추진을 감시·지원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세부 개혁과제 선정 및 추진은 국방부 개혁기구가 맡도록 역할 분담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현재의 국방부 개혁자문단은 철저하게 예비역 장교 중심으로 돼있는데 예비역 외에 민간 전문가, NGO, 언론 등 여론 수렴과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대폭적인 조직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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