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보수대통합 추진 자유한국당-바른정당 3선 의원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정당 김용태·이종구·황영철 의원, 자유한국당 김성태·이철우·홍문표 의원.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0일 보수대통합 추진 자유한국당-바른정당 3선 의원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정당 김용태·이종구·황영철 의원, 자유한국당 김성태·이철우·홍문표 의원. ⓒphoto 뉴시스

바른정당발(發) 정계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무성·이종구·김용태·황영철·김영우 의원 등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0여명은 국정감사가 종료되는 10월 31일을 전후해 탈당을 결행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던 보수 정치인들 대부분이 1년여 만에 친정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김무성 의원 측은 “국감이 끝나면 적어도 9명, 많게는 12명의 국회의원이 바른정당을 탈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된다. 원내교섭단체가 되려면 국회법상 현역 국회의원 2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바른정당 잔류파는 10여명 선이다. 문제는 바른정당이 쪼개지는 선에서 정치권 지각변동이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 정치권은 이를 계기로 몸집을 키우거나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합종연횡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빅뱅’의 동력은 내년 지방선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70%에 육박하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0%가 넘는 정당 지지율을 얻는 상황을 감안하면 내년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압승구도가 예상된다. 이를 상대해야 할 야권지형은 분열된 상태다. 특히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경우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다수의 현역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두 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진 채로 지방선거에 임할 경우 영남권에서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바른정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 측은 “이대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면 어느 정당으로 출마해도 민주당 후보를 이기기 어렵다. 지역에서는 전멸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내에서 유승민 의원과 함께 자강파로 분류되던 남 지사도 최근 “통합은 시간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며 통합 행보로 선회했다.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추진 세력은 자유한국당과 당 대 당 통합을 위해 유승민 의원 등 당내 자강파와 대화를 나눠왔다. 유승민 의원은 역으로 ‘선(先) 자강, 후(後) 통합’ 기조를 밝히며 통합파를 설득해왔다. 결론적으로 양측은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통합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대표 격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탈당조치를 취한 것은 통합의 명분이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그 정도로는 통합의 명분이 부족하다. 자유한국당이 보다 근본적인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맞섰다. 자강파는 특히 11월 1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유승민·하태경·정운천·박인숙 의원 등은 모두 친유승민계로 분류된다.

바른정당 자강파는 김무성 의원 등이 탈당하면 전당대회를 포기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의 한 측근은 “만약 전당대회 전에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면 곧바로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현재 당에 잔류하게 될 국회의원은 최대 13명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분열의 원인으로 통합파는 지방선거가 아니라 유승민 의원의 리더십 부재를 먼저 손꼽는다. 최근 유승민 의원과 만난 통합파 의원들은 모두 유 의원의 소통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복수의 바른정당 주요 인사들은 유 의원과 만난 이후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만 옳고 나머지는 잘못됐다는 식으로는 얘기한다”고 전했다. 특히 자강파로 분류됐던 익명의 인사는 “통합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얼 원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아 대화하는 2시간 내내 답답했다”고도 했다.

통합파 탈당 이후 바른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지방선거 전 자유한국당에 합류하거나 국민의당과 연대를 모색하는 정도로 모아진다.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전자보다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부분적으로나마 보수통합을 성사시킨 자유한국당은 유승민 의원 중심의 미니정당인 바른정당을 끌어안아야 할 당위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바른정당의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 등이 자유한국당에 합류할 때 지방조직도 상당부분 흡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른정당 소속 광역단체장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 또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보수통합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바른정당 현역 국회의원이 10명 미만이 되면 그 위상도 급격하게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정당보조금도 크게 줄어든다. 지방선거에 나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의 이탈도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바른정당 내 자강파인 하태경·정운천 의원 등이 국민의당과 통합 또는 선거연대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을 감안한 행보로 보인다. 바른정당 잔류파가 국민의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거나 내년 지방선거 연대를 추진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국민의당도 내년 지방선거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에서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호남지역 국회의원 28석 가운데 23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호남지역 정당 지지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65.9%를 얻어 압도적 우세를 보인 반면 국민의당은 3.7%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국민의당 내 비호남권 인사들은 안철수 대표의 자강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지난 9월부터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과 연대를 모의하는 국민통합포럼을 출범시켰다. 언론에서는 바른정당의 분열을 전제로, 바른정당 잔류파와 국민의당이 통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앞다퉈 내놓았다. 안 대표도 호남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전국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영남권에 지분을 가진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의미를 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로 선출될 당시 화두로 ‘극중(極中)주의’를 언급한 적이 있다. 바른정당과 통합을 논의한 것도 중도통합론을 내세워 내년 지방선거에 임한다는 전략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측근인 송기석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30명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히며 통합에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최근 당내 호남권 중진 인사들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나섬에 따라 양당 간 통합 논의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월 25일 최고위원과 국회의원 연석회의를 마친 국민의당 안 대표는 통합 대신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통합에서 한발 물러섰다. 정동영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은 정리됐고 선거 연대도 앞서 나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에는 국민의당 내 호남권 의원들이 바른정당보다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최근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를 만나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에 정치적 기반을 둔 국민의당에서 동교동계의 파워는 아직도 막강하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기반을 버릴 것을 요구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호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의당의 세력구도는 안철수 대표 중심의 비호남권과 호남 기반의 의원들로 양분된 구조다. 과거 당 원내대표 선거와 당대표 선거 때 친안철수계와 비안철수계로 나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호남지역에서 워낙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호남권 의원들은 민주당과의 통합에 보다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반면 친안철수계 인사들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려는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당내 긴장이 이어져왔다.

국민의당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친안(親安)과 비안(非安) 세력으로 갈라설 수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마찬가지로 독자적 생존을 통해 차기주자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한다. 호남 기득권이 된 정치인들과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정치를 표방해온 안 대표 입장에서도 딜레마다. 그럴 경우 비안 세력은 민주당으로 합류하고 친안철수계는 바른정당 잔류파와 제3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진행된 ‘국민통합포럼’ 출범식에 참석한 신용현·정인화·박준영·이언주·정운천·강길부·하태경·김세연 의원.(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진행된 ‘국민통합포럼’ 출범식에 참석한 신용현·정인화·박준영·이언주·정운천·강길부·하태경·김세연 의원.(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입법전쟁 앞둔 민주당의 고민

민주당은 국민의당 이탈세력의 합류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현 정국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 만약 국민의당과 통합에 성공할 경우 원내 과반을 달성하고 입법 활동도 수월해진다.

다만 민주당은 국민의당과의 통합 또는 일부 의원 합류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행동은 매우 조심스럽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문재인 대통령이 원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원 빼가기’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의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국민의당 의원 일부가 민주당으로 온다면 우리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민주당이 주도할 수 없다.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바른정당발 정계개편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은 양당체제로의 복귀다.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의 선도 탈당 이후 잔류파가 국민의당과 연대에 실패할 경우 궁극적으로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에 흡수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자력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원내 1당은 자유한국당이 된다. 그러면 입법전쟁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밀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집권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내줄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민주당도 국민의당과의 연정 또는 그 이상의 정계개편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다시 양당체제로 돌아간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1 대 1 구도로 치러지게 되고 개헌과 같은 이슈는 정쟁에 밀려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도 독자적인 제3당 길을 걷다 사라진 정당 사례가 있다. 1990년 노무현·이기택 등이 주도했던 이른바 ‘꼬마민주당’은 1995년 지방선거 직후 일부는 김대중 총재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의로, 일부는 신한국당에 합류하며 소멸됐다.

야권 일부 유력인사들은 바른정당발 정계개편의 핵심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여부로 보고 있다. 익명의 바른정당 관계자의 말이다.

“바른정당 유승민계와 국민의당 안철수계가 결국 손을 잡는 구도로 정당구도가 바뀌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의 몸집이 커지면 민주당도 그에 따른 대응에 나설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야 양측의 통합 움직임 속에서 유승민과 안철수가 연대를 통해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신 3당 체제의 등장을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바른정당 일부와 국민의당 일부가 합쳐진다면 시너지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중순 국민의당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할 경우 지지율이 20%에 육박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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