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홍준표. 서청원. 최경환.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홍준표. 서청원. 최경환.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친박(親朴) 핵심 인사에 대한 인적 청산의 칼을 빼들었다. 홍 대표가 청산 대상으로 삼은 표적은 친박 핵심 서청원·최경환 의원이다. 홍 대표가 지난 정부에서 ‘친박계의 맏형’ ‘친박 실세’로 꼽혔던 서·최 의원에 대한 출당 조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서·최 의원은 “퇴진해야 할 사람은 홍 대표”라며 곧바로 반격을 가하고 나섰다. 두 사람은 “동지들과 함께 홍 대표 퇴진을 추진하겠다”며 친박계 규합을 통한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당을 나가야 끝날 이번 싸움의 결과는 한국당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한국당이 다시 내분에 들어가든, 홍 대표가 이들을 진압함으로써 보수 통합의 돌파구를 마련하든 한국당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홍 대표는 지난 10월 20일 ‘1호 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절연(絶緣)을 결정했다. 홍 대표 요구로 이날 소집된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탈당 권유’ 징계안을 의결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0월 16일 법정 발언을 통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지 나흘 만에 출당(黜黨)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윤리위에서 ‘탈당 권유’ 징계를 받고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 제명된다. 이로써 현재 일반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은 조만간 소속 정당에서 출당되는 첫 전직 대통령이 될 운명 앞에 서게 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출당보다 정치권이 더 주목한 것은 친박 좌장으로 꼽혀온 서청원·최경환 의원 징계다. 박 전 대통령 제명 방침은 그동안 홍 대표가 여러 차례 시사해온 데다, 박 전 대통령과 달리 현역 의원인 서·최 의원 출당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 출당은 그만큼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선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 제명에 주력하고 서·최 의원에 대한 출당 계획을 뒤로 미루거나 철회할 가능성도 거론해왔다.

출당되는 첫 전직 대통령

하지만 한국당 윤리위는 박 전 대통령을 징계한 그날 서·최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 징계도 함께 의결했다. 당 윤리위원 9명 중 8명이 출석한 가운데 7명이 서·최 의원 ‘탈당 권유’에 찬성했고 1명이 반대했다. 서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당(黨)을, 최 의원은 경제부총리를 맡는 등 정부를 주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홍 대표는 주변에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분열된 보수 진영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과 서·최 의원을 당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윤리위가 ‘탈당 권유’ 징계를 의결한 당일 서·최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재외 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하지만 징계 소식을 들은 최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당의 민주적 절차와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독재적 행태이며 정치 보복행위로 부당한 징계 결정에 절대 승복할 수 없다”며 홍 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서 의원도 징계 결정 소식을 듣고 일시 귀국해 10월 22일 기자회견을 열며 반격에 나섰다. 서 의원은 특히 홍 대표의 과거 ‘성완종 전 의원 비리 연루 의혹’을 거론하며 “혹세무민 말고 대표직에서 사퇴하라”고 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둔 홍 대표가 당대표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홍 대표가 여전히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헌·당규에 따라 ‘당원권 정지’를 해야 한다는 징계 요청을 당 윤리위에 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대표는 특히 이날 “성완종 사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나에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고 했다. 홍 대표는 윤모씨를 통해 성 전 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015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윤씨는 서 의원의 대학 후배이자 측근이기도 했는데, 홍 대표가 서 의원에게 전화해 윤씨 회유를 요청했다는 게 서 의원 측 주장이다. 다만 서 의원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홍 대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때는 제가 진실을 증거로 내겠다”고 했다.

서 의원의 회유 의혹 제기에 대해 홍 대표는 “2015년 4월 18일 오후 (내가) 서 의원에게 전화해 ‘윤씨는 서 대표 사람 아니냐? 그런데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키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며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서 의원과 만난 일이나 전화 통화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당시 홍 대표가 윤씨 회유를 요청한 게 아니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란 것이다. 홍 대표는 그러면서 “서 의원 측근들이 찾아와 (서 의원을) 출당시키면 (당시 통화 사실을) 폭로할 듯 협박하고, 검찰총장·대법원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해 매장시키겠다고 했다”며 “전화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하라”고 했다. 홍 대표는 나아가 서 의원이 이명박 정부 당시 ‘친박연대’ 공천헌금 사건으로 복역한 사실을 거론하며 “(서 의원이) 감옥에 있을 때 이 전 대통령에게 요구하여 사면해준 사람(자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적반하장으로 달려드느냐”고 했다. “불법자금은 먹어본 사람이 늘 먹는다”고도 했다.

양측이 서로 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는 폭로전을 동반한 전면전을 벌이면서 이번 싸움은 퇴로가 없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홍 대표는 서 의원 등을 겨냥해 “노욕·노추 부리지 말고 당을 떠나라”고 하고, 서·최 의원 역시 “추가 대응을 준비 중”이라며 확전(擴戰)을 예고한 상태다. 이 때문에 10월 23~28일 미국을 방문한 홍 대표 등 세 사람 모두가 귀국하는 10월 말 한 차례 큰 싸움이 예상된다. 서·최 의원은 해외 국감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친박계 의원들을 규합해 홍 대표에 집단 대항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도 애초 서·최 의원의 ‘탈당 권유’를 당 지도부에 권고했던 당 혁신위원회 등과 함께 서·최 의원 퇴출을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싸움의 1차 관건은 서·최 의원의 집단행동에 친박 의원들이 어느 정도 동조할 것이냐다. 홍 대표의 이번 친박 인적 청산 작업에 직간접으로 반발하는 입장을 나타낸 친박 의원은 김태흠·김진태·이장우·박대출·추경호 의원 등 5명 안팎 정도다. 친박계 인사는 “서·최 의원으로선 ‘우리가 당에서 쫓겨나면 다음은 당신들 차례’란 메시지를 통해 친박계 규합의 세(勢)를 불리려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친박 인적 청산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친박 인사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위축된 규모다. 또 이들이 막상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집단행동에 가세할지도 불투명하다.

승부 결과 따라 보수통합 향방 갈릴 듯

최대 변수는 한국당 다수 의원들의 향방이다. 홍 대표 측은 “한국당 다수 의원들은 친박 핵심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당내 여론이 홍 대표 지지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의원 다수가 국정 파탄 세력으로 낙인찍힌 친박 인사를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기대다. 반면 서·최 의원 측은 “친박계가 일단 뭉치면 홍 대표가 강제로 우리를 당에서 쫓아낼 수단은 없다”고 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일단 10월 28일 귀국해 당내 여론을 살피면서 추가 행동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지난 10월 20일 ‘탈당 권유’ 징계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을 확정하는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당원의 경우 당 윤리위의 탈당 권유 결정에 불복하면 10일 뒤 자동 제명된다. 다만 제명 최종 확정을 위해 당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추인)이 필요하느냐를 놓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일부 친박계에선 “최고위 의결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홍 대표 측은 “윤리위 결정만 있으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입장 차이는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놓고 최고위 의결이 벌어질 경우, 어느 쪽이든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운 세력 분포 때문이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최고위원 가운데 홍 대표가 과반을 장악할 수 있느냐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최고위에서 박 전 대통령 등 출당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것도 당으로선 부담”이라고 했다.

친박 인적 청산을 전제로 한국당과 통합을 모색해온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의 움직임도 변수로 꼽힌다. 애초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은 한국당의 박 전 대통령 제명 조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11·13 바른정당 전당대회 이전에 한국당과의 통합을 결행할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내심 홍 대표가 벌이는 친박 인적 청산 작업을 응원하고 있다. 다만 통합파의 한 의원은 “일단 홍 대표의 친박 청산 작업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하지만 홍 대표와 친박 세력 간의 싸움이 본격화할 경우 통합파 의원들이 집단 의사 표시에 나서는 등 홍 대표 지원사격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 바른정당 자강파 대표 인물로 꼽혀온 남경필 경기지사가 최근 홍 대표를 응원하고 나선 것도 주목된다. 그는 10월 23일 이후 “홍 대표가 대표직을 걸고 국정농단 세력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는데, 어렵게 디딘 첫걸음을 응원하며 주시한다”고 했다. 그는 “(홍 지사의 인적 청산 작업은) 단순한 당내 권력투쟁이 아니다. 낡은 보수와의 절연이며, 새로운 보수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남 지사는 앞서 한 강연에서 “한국당이 과거의 국정농단 세력과 절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협력도 앞으로 배제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홍 대표의 친박 청산 작업이 성공할 경우 바른정당 통합파뿐 아니라 관망파도 보수 통합 쪽으로 마음을 굳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반면 홍 대표가 친박 청산에 실패할 경우 통합 흐름이 사그라지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했다.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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