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마라라고 리조트 골프 코스를 함께 걷고 있다. ⓒphoto 일본 총리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마라라고 리조트 골프 코스를 함께 걷고 있다. ⓒphoto 일본 총리실

지난해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과는 달리 힐러리 클린턴 전 상원의원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각국 정상들은 생소한 트럼프 당선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연줄을 대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선 결과가 나온 지 9일 만인 11월 17일 트럼프 당선인과 외국 정상으론 처음으로 만났다. 아베 총리는 미국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의 맨 위층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방문해 트럼프 당선인과 반갑게 악수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장녀 이방카와 ‘막후 실세’로 불리는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함께 아베 총리와 환담했다. 당초 45분으로 예정됐던 만남은 90분간 이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건물 아래 차량 대기 장소까지 내려가 아베 총리를 배웅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베 총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아베 총리가 내 집을 찾아와 위대한 우정을 시작하게 돼 기쁘다”라는 소감을 올렸다. 숙소로 돌아온 아베 총리는 측근인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자문역)와 하세가와 에이치 총리 보좌관과 함께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지난 4월 초 이방카와 자녀들이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피카추 인형을 보고 있다. ⓒphoto 주미 일본대사관
지난 4월 초 이방카와 자녀들이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피카추 인형을 보고 있다. ⓒphoto 주미 일본대사관

트럼프 당선되자마자 ‘플랜B’ 가동

당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과 회동했던 것은 일본 정부의 주도면밀한 외교력과 로비 때문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대사에게 ‘플랜B’를 가동할 것을 지시하는 긴급 전문을 보냈다. 플랜B는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총리의 만남이었다. 사사에 대사는 대선운동 때 클린턴 캠프뿐만 아니라 트럼프 캠프에도 집요하게 접근해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특히 사사에 대사는 쿠슈너와 법무장관으로 발탁된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을 꾸준히 접촉했다. 쿠슈너와 사사에 대사가 연줄을 맺게 된 것은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정·재계에 인맥을 구축하면서 핵심 세력인 유대계 인맥과도 두터운 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이었다. 쿠슈너는 정통 유대교 신자로 결혼 직전 아내 이방카를 개종시킬 정도로 신앙이 두텁다. 쿠슈너의 아버지 찰스 쿠슈너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트럼프에 버금가는 유명한 부동산 사업가다. 쿠슈너의 삼촌인 머리 쿠슈너 KRE그룹 회장도 부동산 사업가다. 일본 기업들은 1980~2000년대 뉴욕 등 미국 대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왔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출신 부동산 사업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다. 사사에 대사는 일본 기업의 소개로 머리 쿠슈너와 접촉했다. 이후 사사에 대사는 쿠슈너와 만나 아베와 트럼프의 회동을 부탁했다. 쿠슈너는 며칠 후 회동 날짜와 장소를 통보했다. 사사에 대사는 지금도 쿠슈너에게 직접 전화할 정도로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사에 대사는 미국대사관 1등서기관, 외무성 북미국 북미 제2 과장 등을 거쳐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외무 차관까지 지냈다. 사사에 대사는 미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인맥이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테랑 외교관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첫 회동 이후 오래된 동맹국 지도자들 간의 전형적인 파트너십을 넘어서면서 ‘절친’이 됐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고 전화로는 14번이나 대화를 나눴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기 임기 4년간 아베 총리와 가졌던 전화통화 횟수보다 많다. 야부나카 미토지 전 6자회담 일본 수석대표는 “아베와 트럼프의 잦은 소통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과거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일본 전문가인 실라 스미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를 단짝친구(a buddy and a friend)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두 사람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결정 등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다소 껄끄러웠지만,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외교·안보정책에서 핵심적 동반자가 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월 22일 실시된 총선에 앞서 유세에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는 필요할 때 항상 전화 회담을 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왔다”고 남다른 밀월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에서 일했던 일본계 미국인 로비스트 아도 마치다. ⓒphoto 닛케이 아시안 리뷰
트럼프 정권인수위에서 일했던 일본계 미국인 로비스트 아도 마치다. ⓒphoto 닛케이 아시안 리뷰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 외교’

트럼프와 아베가 ‘찰떡궁합’을 보이는 이면에는 또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외교’가 숨어 있다. 오모테나시는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모신다는 말이다. 오모테나시 외교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아베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고가의 골프채를 선물한 것도 트럼프의 취미가 골프라는 점을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이 골프채는 혼마사의 최고급 드라이버로 50만엔(550만원)이나 한다. 트럼프는 영국과 두바이 등 20여곳의 골프장을 경영해온 골프광이다. 아베의 취미도 골프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골프 이야기로 회담을 풀어나갔고 회동시간이 45분을 훌쩍 넘겨 90분으로 늘어났다. 트럼프가 지난 2월 자신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1박2일간 아베와 골프를 치며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이런 인연에서 비롯됐다. 아베는 마라라고를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자 트럼프와 골프를 함께한 첫 외국 정상이 됐다. 당시 아베가 트럼프와 오랜 시간 라운딩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이 현재의 친밀한 관계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도 1957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하며 친분을 쌓았다. 당시 골프 회동은 미·일 안보조약 개정의 계기가 됐다. 아베는 오는 11월 5일 트럼프의 일본 방문 첫날 2020년 도쿄올림픽 골프 종목 경기가 열리는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을 함께할 예정이다. 트럼프가 외국 방문 중 골프를 치는 것은 처음이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몇 번씩 골프장으로 가는 트럼프를 배려하면서도 친분을 더욱 다져 동맹관계를 강화하려는 아베의 ‘심모원려(深謀遠慮)’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퍼스트 도터’인 이방카의 마음도 얻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지난 4월 초 벚꽃축제에 이방카와 자녀들을 초청했다. 일본대사관은 이방카의 장녀 아라벨라와 장남 조지프가 좋아한다는 일본인 유튜브 스타의 피코타로가 “미국과 일본은 베스트프렌드”를 외치는 영상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피코타로는 45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인 ‘PPAP(Pen Pineapple Apple Pen)’를 발표해 세계적 인기를 얻은 일본 코미디언 고사카 가즈히토의 예명이다. 일본대사관은 지난해 11월 아라벨라가 피코타로의 PPAP 노래를 따라하는 모습을 이방카가 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것에 착안해 피코타로의 특별 영상메시지를 만들었다. 이방카와 두 자녀는 피코타로의 축하공연 영상을 감상했다. 이후 이방카는 지난 5월 초 인스타그램에 피코타로의 신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자녀들의 영상을 올렸다. 일본대사관의 노력이 이방카의 환심을 산 것이었다. 트럼프는 아베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방카가 자신에게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잘 지내라”는 충고까지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방카가 총리를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아베 총리에게 전했다. 트럼프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 정부는 이방카가 오는 11월 3일 도쿄를 방문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국제여성회의(WAW) 2017’의 기간을 하루 연장했다. 이 회의는 당초 11월 1일과 2일 이틀간 열릴 예정이었다. 2014년부터 매년 열리는 이 회의는 여성 분야에 대한 일본 정부의 관심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행사다. 아베도 매년 참석해 축사를 해왔다. 이방카도 이번 회의에 특별게스트로 참석한다. 이방카는 이 회의에 참석한 후 트럼프의 일본 방문에 합류한다. 이방카가 운영해온 의류 브랜드 ‘이방카 트럼프’는 지난 2년간 일본 의류업체 산에이 인터내셔널과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 등에 관한 협상을 벌여왔다. 산에이 인터내셔널의 모회사인 TSI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일본 정부가 소유한 일본정책투자은행이다. 이방카가 트럼프와 아베의 첫 회동에 배석했을 때 양사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였다.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장녀 이방카와 맏사위 쿠슈너의 입지는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다. 이방카를 통하면 뭐든지 가능해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 정부가 이방카를 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베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와 남편 쿠슈너. ⓒphoto 일본 총리실
아베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와 남편 쿠슈너. ⓒphoto 일본 총리실

대미 로비단체의 활약

일본 정부는 또 워싱턴의 정부와 의회 및 학계, 싱크탱크 등을 상대로 체계적인 로비에 공을 들여왔다. 일본 정부를 사실상 대변하고 있는 사사카와(笹川) 평화재단이 대표적인 대미 로비단체이다.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인 니폰재단(Nippon Foundation)의 워싱턴 사무소 격이다. 사사카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 개념의 창안자인데, 패전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투옥되었다가 불기소처분 후 석방된 극우 인사다. 일본경정(競艇)협회를 만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사사카와는 사회봉사 명목으로 자금을 투자하며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높이는 활동을 해왔다. 니폰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런 목적의 일환이었다. 니폰재단은 자선단체이지만 사상적으로 기시 전 총리의 이념을 추종해왔다.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워싱턴에서 일본 관련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직접 주관하거나 후원하는 등 미국 내에서 친일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해왔다. 특히 사사카와 재단은 미국 주요 싱크탱크 등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해왔다. 사사카와 재단 이사장은 데니스 블레어다. 블레어 이사장은 해군 대장 출신으로 1999년부터 3년간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했고, 전역한 후 민간단체인 국방분석연구소(IDA) 소장을 역임했으며, 오바마 정부에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DNI 국장을 지냈다. 블레어 이사장은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물론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 현역 육군 중장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는 막역한 사이다. 블레어 이사장은 그동안 워싱턴 정가에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왔다.

미국 내에는 이른바 ‘국화클럽’으로 불리는 일본 우호세력이 탄탄하다. 국화클럽은 미국의 지일파(知日派) 인사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일본 정부의 로비를 연구한 팻 코에이트 전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영향력의 요원들(Agents of Influence)’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이 워싱턴을 매수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이 1단계는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 관리들, 2단계는 워싱턴 로비스트들과 고문들, 3단계로 의원들과 보좌관들을 구워삶는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트럼프 정부에 대한 로비를 위해 비밀리에 활용해온 ‘카드’도 있다. 아도 마치다라는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다. 아도 마치다는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에서 통상·에너지·규제개혁 등 14개 분야 정책 청사진 마련을 총괄한 책임자였다. 컬럼비아대와 교토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과 뉴욕대 로스쿨을 나온 아도는 법률회사 에이킨 검프에서 일했던 로비스트다. 그는 밥 돌 상원의원의 경제정책 보좌관과 딕 체니 부통령의 국내 보좌관을 각각 지냈다. 그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계 로비회사 ‘더 카이젠’(‘개선’이란 뜻의 일본어)에서 일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정책이행팀장으로 일했던 그는 일본대사관 및 기업들과 물밑에서 협력해왔다고 한다. 그는 또 국방·안보 분야 인수위 담당자에 아예 일본계 후배를 배치했다. 그는 정권인수위원회의 실세였던 쿠슈너와도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 아베가 트럼프와 밀월관계를 맺은 것은 이런 인맥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베의 목표는 과거 1980년대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때의 ‘론-야스’ 관계처럼 트럼프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론-야스 관계 덕분에 미국과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긴밀한 동맹이란 말을 들었다. 특히 아베는 이런 관계를 이용해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개헌하는 것을 트럼프가 적극 지지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희망하는 트럼프의 의도로 볼 때 아베의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제2의 ‘론-야스’ 시대가 도래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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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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