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시진핑’ 자리를 두고 정치국 상무위 입성 관측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와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가 각각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직계라면, 리잔수(栗戰書) 신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시진핑과 동지적 관계에 가깝다. 리잔수는 중남해의 살림살이를 총괄해 ‘대내총관(大內總管)’으로 불리는 중앙판공청 주임을 역임한 터라 상무위 입성은 무난해 보였다. 덩샤오핑 집권 후 야오이린, 후치리, 차오스, 원자바오, 쩡칭훙 등 역대 중앙판공청 주임은 상당수가 상무위에 입성했다.

리잔수는 1950년생으로 허베이성 핑산(平山) 사람이다. ‘잔수(戰書)’라는 이름은 ‘선전포고서’란 뜻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런 호전적인 이름이 많다. 허베이성에서 공직을 시작하고 허베이사범대를 야간으로 졸업한 리잔수는 허베이성 성도 스자좡(石家庄)시 산하 우지(無極)현의 현서기(군수에 해당)를 지냈다. 같은 기간 스자좡시 산하 정딩(正定)현 현서기로 있던 사람이 시진핑이다. 현서기로 근무하던 시진핑과 리잔수는 당시부터 교류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시진핑과 리잔수는 각각 1953년생, 1950년생으로 연배도 비슷하다.

리잔수와 시진핑의 동지적 유대관계는 시진핑의 고향인 산시성(陝西省)에서도 이어진다. 시진핑의 원적이 있는 산시성은 시진핑의 부친이자 서북국 서기를 지내며 한때 ‘서북왕’으로 불린 시중쉰(習仲勳)의 근거지였다. 공청단 허베이성 서기를 지내고 산시성으로 옮긴 리잔수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산시성에서 줄곧 근무했다. 산시성 성도인 시안(西安)시 당 서기를 지낼 적에는 시진핑의 일가친척들을 잘 돌봐줬다고 한다.

이후 헤이룽장성 성장(2008년), 구이저우성 서기(2010년)로 지방근무를 계속한 리잔수는 2012년 시진핑 집권을 앞두고 중남해의 안살림을 관장하는 중앙판공청으로 전격 발탁된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최고권력자의 최측근이 도맡아온 자리다. 리잔수의 전임 중앙판공청 주임은 후진타오 전 총서기의 최측근이었던 링지화(令計劃)였다. 하지만 링지화가 아들 링구의 페라리 나체음주운전 사망사고에 휘말려 한직인 통일전선부장으로 좌천되면서 당시 중앙판공청 부(副)주임으로 있던 리잔수가 한 계단 승진해 주임 자리를 꿰찼다.

시진핑의 해외순방 때 가장 많이 배석한 사람도 중앙판공청 주임인 리잔수와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인 왕후닝(王滬寧)이었다. 결국 두 명 모두 상무위에 입성하면서 충성 경쟁을 이어가게 됐다. 다만 리잔수의 경우 상무위에서 전인대 위원장을 맡을 것이냐, 기율위 서기를 맡을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결국 전인대 위원장으로 최종 낙찰됐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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