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러지(趙樂際) 신임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에 신규 진입한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진입을 사실상 확정했다. 지난 10월 24일 19차 당대회 폐막과 함께 공개된 133명의 19기 중앙기율검사위원 명단에 포함되면서다. 덩샤오핑 집권 이래 중앙조직부장을 지낸 후야오방, 차오스, 웨이젠싱, 쑹핑, 쩡칭훙, 허궈창 등은 대부분 상무위에 입성했다. 특히 차오스, 웨이젠싱, 허궈창은 상무위 입성과 함께 감찰을 책임지는 기율위 서기로 영전했다. 중앙조직부장 출신 자오러지 역시 기율위 서기로 상무위에 입성했다.

자오러지는 1957년생으로 원적은 산시성 시안(西安)이다. 태어난 곳은 칭하이성(靑海省) 시닝(西寧)으로, 칭하이성 지방간부로 일한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때는 지식청년들을 시골로 보내 육체노동을 시키는 ‘상산하향’ 정책에 따라 칭하이성의 깡촌에서 1년간 근무를 했다. 이후 공농병대학생 자격으로 베이징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공농병대학생은 문화대혁명 때 대학의 선발기능이 마비되면서 생긴 일종의 특별전형이다.

이후 칭하이성 상업청 근무를 시작으로 줄곧 칭하이성에서 근무한 자오러지는 1997년 40세에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시 서기, 1999년 칭하이성 성장, 2003년에는 칭하이성의 1인자인 성서기로 줄곧 변경에서 승승장구했다. 칭하이성 성장과 성서기 취임 당시 나이가 42세, 46세로 가장 젊은 성장, 당 서기였다. 자오러지가 칭하이성에서 줄곧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칭하이성 주석과 산시성장을 지낸 그의 당조부(堂祖父) 자오서우산(趙壽山)의 음덕 덕분이란 얘기도 있다.

칭하이성 서기를 지낸 자오러지는 2007년 산시성 서기로 영전했다. 칭하이성 재임 기간 중 소수민족 폭동이 없었다는 것이 승진 요인이었다고 한다. 산시성 서기 재임 때는 산시성 푸핑(富平)에 있는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 묘소와 옛집을 성역화하는 공을 들었다. 이후 2012년 시진핑 집권과 함께 정치국에 입성하면서 당의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장에 발탁됐다. 후진타오 집권 2기 중앙조직부장을 지낸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의 후임이었다.

시진핑은 부친 시중쉰이 1962년 ‘소설 류즈단(劉志丹) 필화사건’에 휘말려 ‘반당(反黨)집단’으로 몰렸을 때 수차례 구명에 나섰던 자오러지의 당조부 자오서우산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자오서우산(1894년생)과 시중쉰(1913년생)은 국공내전 때 서북야전군에서 각각 부사령관, 부정치위원으로 근무했고 산시성 동향이다. 자오러지의 동생인 자오러친(趙樂秦)도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시 서기로 있다. 시진핑으로서는 ‘산시방(陝西幇)’ 좌장 격인 자오러지를 상무위에 진입시켜 사정작업을 맡기면서 집권기반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됐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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