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당내 서열순) 장쩌민. 후진타오. 리펑. 주룽지. 리루이환.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쑹핑. 리란칭. 쩡칭훙. 우관정. 리창춘. 허궈창.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당내 서열순) 장쩌민. 후진타오. 리펑. 주룽지. 리루이환.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쑹핑. 리란칭. 쩡칭훙. 우관정. 리창춘. 허궈창.

지난 10월 18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잿빛 인민복을 입은 쑹핑(宋平)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입장했다. 올해 나이 75세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벌떡 일어났다. 허리를 굽여 인사한 원자바오는 쑹핑이 앉을 의자를 직접 뒤로 빼주면서 자리를 권했다.

쑹핑은 1917년생으로 올해 100세다. 지난 4월 100세 생일잔치를 했다. 한국 나이로 따지면 101세다. 1916년생으로 쑹핑보다 한 살 많았던 완리(萬里)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2015년 99세의 나이로 작고하면서, 쑹핑은 중국공산당의 생존 당 원로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노(老)동지’가 됐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비서 출신으로 당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장을 지내며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각각 총서기, 총리로 키워낸 쑹핑의 별명은 ‘백락(伯樂)’이다. 주(周)나라 때 사람인 백락은 좋은 말을 감별해내기로 유명했다. 5년 전인 18차 당대회 때도 쑹핑은 95세로 최고령 참석자였다. 당시도 쑹핑은 트레이드마크인 목 아래까지 단추를 채우는 인민복을 입고 당대회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5년 전인 18차 때나 올해 19차 때나 ‘백락’의 형형한 눈빛만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지난 10월 24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는 중국식 원로정치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모두 14명의 상무위원급 원로가 직접 참석해 건재를 과시한 당대회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류사오치, 주더, 덩샤오핑, 천윈 순으로 호명한 6명의 작고한 당 원로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생존해 있는 14명의 상무위원급 원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100세의 쑹핑이었고 가장 막내가 1944년생으로 올해 73세인 리창춘 전 상무위원이었다. 지난해 기준 중국 남성의 평균 수명(74.6세)보다 7살이나 많은 평균 나이 81.7세의 생존 당 원로 대다수는 시진핑이 당대회 개막연설을 하는 약 3시간30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앉아 현역 때와 다름없는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시진핑 현 총서기 다음, 당 원로 중 첫 번째로 소개된 장쩌민(江澤民) 전 총서기 역시 수차례의 ‘사망설’을 비웃듯 건강을 과시했다. 1926년생으로 올해 나이 91세인 장쩌민의 건강관리법은 ‘음악’이다. 장쩌민은 상하이 자택에 머물면서 악기를 연주하며 퇴임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차 당대회 직전에는 장쩌민이 연주자들과 함께 중국 전통악기인 ‘얼후(二胡)’를 능숙하게 켜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장쩌민은 현역 시절부터 음악애호가로 ‘뮤지션’급의 악기 연주 실력을 뽐낸 바 있다. 총서기 재임 중인 1996년에는 필리핀을 방문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직접 불렀고, 1997년에는 미국 하와이를 국빈방문해 하와이 전통기타인 ‘우쿨렐레’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장쩌민을 인터뷰한 후 ‘장쩌민 평전’을 낸 로버트 로렌스 쿤은 “장쩌민의 한마디에 CCTV의 음악전문채널(CCTV15)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부총리를 지낸 리란칭과 함께 세계 각국의 유명 가곡 45개를 선별해 ‘세계유명가곡 45선(選)’이란 책을 펴내고 직접 서문을 쓸 정도였다.

당 원로 중 4번째로 소개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역시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장쩌민보다 두 살 아래인 주룽지는 1928년생으로 올해 나이 89세다. 다만 보청기를 낀 듯 오른쪽 귀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국유기업 개혁을 주도하며 ‘철혈재상’으로 불린 주룽지는 장쩌민과 필적할 정도의 문화적 소양으로 유명하다.

주룽지의 퇴임 후 건강 비결 역시 음악이다. 경극 애호가인 주룽지는 재임 중인 200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도쿄 TV 토크쇼에 출연해 즉석에서 ‘호금(胡琴)’을 연주하기도 했다. 퇴임 후에도 그는 허름한 평상복을 입은 채 연주자들과 함께 호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수차례 선보인 바 있다.

원로들의 건강 비결은?

당 원로 중 5번째로 소개된 리루이환(李瑞環)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역시 풍성한 모발과 정정함이 나이를 무색게 했다. 1934년생 83세의 리루이환의 건강 비결은 ‘목공’이다. 목수 출신으로 청년 시절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목공작업을 지휘한 리루이환은 현역 시절 직접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당 원로들에게 선물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지금도 취미 삼아 목공을 하는 그는 퇴임 후인 2013년에는 다루기 어렵다는 붉은빛이 감도는 자단목을 이용해 17점의 가구를 만들어 광저우에서 열린 가구전시회에 출품할 정도였다.

당 원로 중 7번째로 소개된 원자바오 전 총리 역시 현역 시절과 다름없는 안광을 과시했다. 1942년생으로 후진타오 전 총서기와 동갑인 올해 75세다. 원자바오는 ‘태극권’으로 건강을 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바오는 현역 시절에도 승마, 사격, 오토바이에 능한 만능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재임 중에는 농구, 야구, 배드민턴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요즘은 태극권에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접목한 ‘태극유력구(柔力球)’란 운동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극유력구는 1991년 중국의 한 체육교사가 창안한 운동이다. 태극마크가 있는 채 위에서 둥근 공을 빙빙 돌리는 운동으로 노년층에서 인기가 높다.

10번째로 소개된 리란칭(李嵐淸) 전 부총리의 취미는 ‘전각(篆刻)’이다. 1932년생으로 올해 85세인 그는 역대 지도자 중에서 장쩌민, 주룽지와 함께 ‘시서화악가무’에 가장 조예가 깊은 당 원로로 꼽힌다. 2013년에는 직접 만든 도장들을 모아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기념전을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념전을 갖고 ‘리란칭 전각 서예 예술전 작품집’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에는 장쩌민 전 총서기와 함께 ‘세계유명가곡 45선’을 펴내기도 했다.

14명의 원로 중 13번째로 소개된 리창춘(李長春) 전 상무위원은 사진 찍기가 취미로 알려져 있다. 1944년생으로 올해 73세. 그는 14명 당 원로 중 나이로는 가장 막내다. 리창춘은 2015년 천안문 대열병식에서 성루 주석단의 일원으로 섰을 때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DSLR카메라를 들고 나와 주목을 끌었다. 당시 “리창춘이 천안문에 고사포를 들고 나왔다”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였다. 2013년에는 한겨울 헤이룽장성을 방문해 개털모자를 눌러쓴 채 역시 DSLR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2014년에는 주하이(珠海)에어쇼에서 주석단에 앉아 커다란 DSLR카메라를 꺼내는 등 카메라에 무한애정을 드러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국에서도 정치인은 장수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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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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