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헌법개정 특위 공청회. ⓒphoto 뉴시스
지난 1월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헌법개정 특위 공청회. ⓒphoto 뉴시스

#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 개정특위 자문위원회 전체 회의. 대학교수·법조인·시민단체 등 40여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의 주제는 ‘통치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였다.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의 용어를 정리하는 것부터 이견이 속출했다. 지난 1월에 논의했던 내용이 그대로 재연되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헌법 개정특위 실무자는 다음과 같은 관전평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소신에 따라 견해를 내놓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날 논의 내용은 사실 개헌특위가 가동되기 시작한 올 초에 나눴던 얘기와 비슷했다. 논쟁만 있을 뿐 합의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 지난 10월 10일 이주영 헌법 개정특위 위원장은 특위 실무를 담당하는 한공식 수석 전문위원 등으로부터 예정에 없던 보고를 받았다. “국회사무처 홍보기획관실이 예비비 41억원을 받아 대국민 개헌 홍보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알려왔습니다. 홍보기획관실에서 정부에 요청해 이미 예산을 받았고 제일기획을 대행업체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주영 위원장은 보고 내용을 듣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헌법 개정특위와 상의하지 않고 별도로 홍보캠페인을 하겠다는 것이냐” “예산을 그렇게 많이 책정한 이유가 뭐냐” “대행업체 선정을 끝냈다는 거냐”면서 실무자들을 추궁했다. 그는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구성된 개헌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국회의장실 주도의 개헌 홍보가 진행되는 것을 사후에 보고받았다. 이주영 의원실 측은 “정세균 의장이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이해하지만 특위와 한마디 상의 없이 별도 예산을 투입해 캠페인을 하는 건 자칫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월 1일 출범한 국회 헌법 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의 활동이 지지부진하다. 개헌특위가 가동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를 겪으며 대통령에게 부여된 제왕적 권한의 폐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가 가장 큰 명분이었다. 그러나 특위 활동은 일반 국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야 국회의원 3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전체회의를 여는 데 그쳤다. 특위 산하에 5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특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회의를 많이 열었다. 하지만 정부형태를 대통령중임제로 할지, 아니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꿀지에 대한 의견 접근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부형태에 대한 개념 정의를 두고 10개월째 혼선이 이어졌다.

개헌특위가 국회 내에서조차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 논의가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개헌특위와 별도로 대국민 개헌 홍보캠페인을 추진키로 했다. 개헌특위 활동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 맞춰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개헌특위 실무진은 적어도 내년 2월 말까지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 헌법 개정안 발의 후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공고 및 실시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적어도 내년 5월 24일 이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헌특위는 국정감사와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이 끝나는 대로 특위를 본격 가동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바른정당 탈당 등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예고돼 있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용어 정의도 합의 못한 자문위

헌법 개정을 위한 논의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야 정치권이 개헌보다 지방선거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경우 어느 정당이 유리할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을 감안, 가급적 개헌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이다. “개헌은 지방선거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을 보면 여야 모두 개헌을 어떻게 관철하고 성공시킬지에 대한 관심보다 지방선거 유불리에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헌법 개정특위 자문위원인 장영수 교수는 정부형태를 어떻게 바꿀지를 논의하는 ‘정부형태’ 분과에 참여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개헌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헌에 대한 국회의원 개개인의 견해 차가 커 조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헌법 개정 절차가 부진한 책임을 여야가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비협조를, 야당은 여당의 의지 부족을 그 이유로 거론한다. 여기에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개헌 논의를 미루자”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주영 개헌특위 위원장 측은 “홍 대표의 발언은 특위와 전혀 조율되지 않은 발언”이라면서도 “야당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 전략 차원에서 사견을 밝히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개헌특위 여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실 보좌진은 “특위 회의가 계속 열리고 있고 그 속에서 순차적으로 개헌안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헌특위 구성원들은 개헌 성공 여부를 떠나 적어도 합의된 개헌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현재는 개헌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지 않은 채 개헌 홍보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특위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개헌특위는 최근까지 개헌을 위한 대국민토론회를 광역 시도에서 실시했다. 그런데 이 토론회는 안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일반 토론회와 달리 지역사회에서 제기되는 지방분권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선에 그쳤다는 평가다. 야당 측 개헌특위 관계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국민의견을 수렴한다는 미명하에 여당에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토론해야 할 주제도 정하지 않고 대국민 홍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플레이만 하는 셈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개헌안 성안(成案)을 만들자고 여당에 여러 차례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은 야당 요구에 수긍하면서도 이를 실행할 소위 구성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는 자문위원회 정부형태 분과에서도 헌법 개정에 대한 조문화 작업을 시작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 오래지만 소위 구성에 관한 진전은 없었다. 소위 구성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문위 소속 한 인사는 “개헌을 위한 시간이 1~2년 정도 주어진다면 토론회를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해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기본안을 만들고 조문화를 해가며 의견을 듣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국민투표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내년에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위헌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 측은 “재외국민의 투표 참여를 제한하는 현행 국민투표법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개헌특위 간사들을 만나 이런 문제점을 줄기차게 제기했으나 여당은 별다른 대응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의 정종섭 의원은 헌법 전문가로 통한다. 학계 일각에서도 “조금 더 깔끔하게 국민투표를 치르려면 헌재 결정에 따라 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 측은 “솔직히 여당은 관심도 없는 것 같다. 30년간 국민투표를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 수반되는 절차의 문제를 짚어야 하지만 그런 논의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1948년 7월 17일 헌법이 제정된 이후 개헌 국민투표는 총 6차례 실시됐고 1987년 실시된 6공화국 헌법 개정이 가장 최근의 개헌이다.

뒤바뀐 여야의 권력구조 인식

개헌 의제 가운데 가장 첨예한 쟁점은 정부형태, 즉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의 문제다. 승자독식의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게 이번 개헌의 핵심 사안이었다.

그러나 지난 5·9대선으로 여야가 바뀐 뒤 정치권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대통령제의 폐단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오·남용의 문제였다”면서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국민 다수는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내심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바라는 눈치다. 지난 6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바라는 정부형태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1%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분권형 대통령제는 19.8%, 의원내각제는 12.8%로 각각 조사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민주당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형태의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대통령제 폐단을 막기 위한 개헌에 동조했던 여당이 최근에는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개헌특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야당 성향의 시민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분산의 원칙과 대통령을 견제하는 방향의 개헌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 분단 상황에서 주도적 리더십도 필요하다. 국민 다수가 대통령 중임제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국민의 요구를 담아내는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해당 지역구나 국회 앞에서 큰 집회를 열어 여론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조정하고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으로 새로운 국가의 틀이 완성되길 기대하며 정부도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개헌은 국민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에 방점이 찍혀 있을 뿐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권력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개헌특위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한 법률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 폐단을 없애자는 데 있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바지저고리나 얼굴마담 노릇 하는 걸 없애고 실권을 주자는 것이다. 지금 여당은 박근혜 정부 때 제왕적 대통령제를 앞장서서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나서 이런 부분을 수용하지 않는 여당을 보면 답답하다.” 이 법률가는 또 “국회의원 중에 총리를 선출함으로써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헌법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개악될까 걱정이 앞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은 분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은 여당 입장에서 ‘권력구조에 관한 논의를 자제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이 원치 않는 권한 내려놓기를 여당에서 꺼내들기는 어렵다. 유력 정치인들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현실적인 이유다. 현재 여야 정치권 주류는 지난 5·9대선에서 패배한 홍준표·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차기 대선주자들이다. 이들이 내심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원하지 않는다면 개헌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권력형 비리나 측근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정부형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통령 중임제보다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을 바라고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개헌의 핵심을 지방분권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지방선거를 위한 전략 차원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측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분권에 관한 화두는 여야 모두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여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부각시키고 권력구조 개편은 뒤로 미루고 싶은 것 같다. 지방분권은 이번 개헌의 메인 이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야가 합의 도출에 실패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안을 낸다 해도 국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국회 전체 의석 수의 3분의 1 이상인 107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정하면 개헌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1987년 이후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된 적이 없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을 의지가 없기도 했지만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확보할 정치적 여건이 조성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국민 다수가 개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야가 국민적 여론을 의식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개헌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집권당이 바라는 대통령 중임제와 지방분권용 개헌이 성사될 경우 권력의 집중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서는 집권여당이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고 이후 의회의 절대다수를 확보한다면 일종의 전제정(專制政)이 출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제정은 지배자가 모든 권력을 장악해 견제받지 않는 상황에 놓인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야당, 전제정 출현 우려

야당 성향의 한 정세 분석가의 설명이다. “여권이 지방분권을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야당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지방권력까지 가져가게 되고 그 토대 위에서 치러질 다음 총선도 과반 이상을 얻는 게 유리해진다. 특정 정당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야당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의회 권력을 상원과 하원으로 양분하고 사법부 독립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패키지 개헌안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

개헌특위가 지난 9월 작성한 ‘헌법 개정 주요 의제’에 따르면 개헌 관련 주요 쟁점은 총 11개 분야로 62개 세부항목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제왕적 대통령제 출현을 막기 위한 정부형태 개편, 국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는 양원제 도입, 지방분권 강화, 생명권 등 기본권 신설, 사법부 독립 강화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선거구제 개편안은 개헌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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